아마도 10년 전 쯤 일이다. 기러기 아빠가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고등학생 아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엉덩이를 때리자 아들이 경찰에 신고를 한 사건이 있었다. 결국 체포된 아빠는 재판을 받고 강제 추방된 일이 한동안 문화적인 차이로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유사한 사건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며칠 전 아홉 살 난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컴퓨터게임을 하는데 밥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짜증을 내며 욕설을 한 일이 있었다. 이에 어머니는 아이의 뺨을 때렸고 아이는 어머니를 경찰에 폭행으로 신고를 하였다. 어머니는 경찰에 연행돼 가서 조사를 받고 아이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서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이 씁쓸한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10대 소녀가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48세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뺨을 맞은 17세 딸이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해서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일이다. 더욱이 딸은 강하게 아빠의 처벌을 원하고 있어 검찰로 송치 예정이라고 한다.
요즘 이런 일들을 보면 과거의 캐나다 기러기아빠의 아들 폭행사건이 한국과 캐나다의 국가적인 문화적 차이라고 보기보다는 국민소득과 사회제도의 발전단계 과정의 차이라 보는 것이 옳다. 즉 국민소득 100불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부모와 2만불 시대를 사는 자식들과 의식의 차이다.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은 인권에 대하여 배우고 있기에 체벌이 근본적으로 불법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인성이 완성되지 않아서 모든 귄리가 그렇듯이 인권 즉 인간적인 삶을 영유할 기본적 권리에도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맞지 않을 권리는 주장하면서 원천적인 원인에 대한 반성은 없다. 물론 감정적으로 뺨을 때린 부모에게 일차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부모의 인격이 자식에게 투영되기 때문에 결국 아이가 보이는 행동의 문제 뒤에는 문제의 부모가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 두 사건의 진정한 문제점은 부모가 격한 감정에 뺨을 때린 폭력도 자식이 부모를 신고한 패륜 행위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런 일을 경험한 이들이 치유되지 않은 채 장시간 시간이 경과하였을 때 발생되는 심리적인 문제점들이다. 이런 심리적으로 심한 trauma의 사건을 경험하고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지속적으로 가족이 한 공동체 생활을 영유한다는 것이다. 가족원 전체가 심리적인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고 결국은 개개인의 심리문제를 유발하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인생에 문제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작게는 개인적인 불행으로, 크게는 사회적인 불행으로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사회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과거에는 자식의 뺨을 때린 엄마가 다시 아이를 달랠 수 있는 사회적, 가족적인 시스템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사회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놓지 않은 채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엄마와 아이 간에 자연 감정 조절장치를 빼앗았다. 사회적인 시스템이 선진국형이 아닌데 흉내를 내면서 나타는 부작용이 가족 개개인들이 희생의 몫으로 돌아온 것이다. 후진국 시절에 먹을 것이 없어서 슬프던 것이나 어설피 선진국 흉내를 내면서 마음에 상처받는 모습이 매 마찬가지이다.
학생인권헌장을 채택하고 교사로부터 매를 빼앗았을 때 많은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반대하였다. 잘못된 매질을 하는 일부 교사의 행동 때문에 모든 교사를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시대와 정서에 맞지 않는 제도가 정치적으로 시행되었고 결국 이에 따른 부작용도 필연적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두 사건도 봄에 일찍 보인 제비처럼 전체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어른의 지위에 있어야하는 모든 부모들에게는 마음에 trauma를 주는 사건이다. 결코 선진국이 된다고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 국민소득 100불이어도, 엄마에게 매를 맞아도, 울다가 엄마의 밥 먹으라는 말에 화가 풀리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 때가 더 건강한 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