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현역 치과의사로서 대선배이자 원로라 불리는 김우종 원장은 국민구강보건 향상은 물론, 개인의 영달이 아닌 치과계 공적 발전을 위한 삶에 젊음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이번 서치 공로대상의 주인공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40년 넘게 한센인을 위한 진료봉사에 손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기 때문이다.
한국구라봉사회(이하 구라봉사회) 부회장으로, 지금까지 한센인 치과진료봉사에 나서고 있는 김우종 원장은 지난 1969년 당시 서울치대 본과 3학년으로, 서울치대 유동수 前교수가 일본 측 봉사단과 함께 소록도에서 첫 진료봉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했다. 서울치대 교수 및 학생들로 구성된 구라봉사회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소록도를 포함한 전국 나환자촌을 찾아 다녔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손이 녹아내리고, 얼굴이 흉측하기 짝이 없어 쳐다보는 것조차 마음이 아플 지경이던 환자가 처음으로 틀니를 입안에 장착했을 때 모습을 말이다. 잘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그는 입가에 분명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새파랗게 젊은 나에게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던 모습…”
6, 70년대 한센인에 대한 인식은 지금에 비할 바가 못 됐다. 한센인이 치과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만약 한센인이 치과를 방문했다면 그 치과는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다.
“우리가 한센인 대상 치과치료를 한다고 했을 때, 소록도 병원에 있는 일반 의사들은 모두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들조차 한센인과 직접 피부를 맞대는 것을 꺼려했을 정도였는데, 우리는 그들의 입을 벌리고, 거의 껴안다시피하면서 치료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한센인의 구강을 치료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세상의 잘못된 시선을 바로 잡아주는데도 일조했다고 본다.”
치과의사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김우종 원장. 그는 구라봉사회 활동을 평생 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봉사활동 외에 그가 남달리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치과계 발전이었다. 서울지부 재무이사 및 부회장 그리고 초대 SIDEX 조직위원장을 지낸 그는 서울지부의 역사를 꿰고 있다. 특히 치협 재무이사 경력은 그가 서울지부 부회장으로 돌아왔을 때, 지금까지 이어지는 서울지부의 회무 기틀을 잡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지부든 협회든 임원이라 함은 감투가 아니라 바라는 것 없이 행하는 진료봉사와 매한가지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회무는 치과계 발전을 위한 하나의 봉사활동이었다. 이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더욱 많은 젊은 회원이 회무에 관심을 가지고, 치과계 공공의 발전에 함께 참여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김우종 원장에게 치과계 발전에 대한 끝없는 염원과 치과치료에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는 은퇴가 없을 것이다.
신종학 기자 sjh@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