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인 원장의 사람사는 이야기

2015.06.15 16:05:09 제640호

충북 다섯 하천을 따라

상주-충주 구간을 라이딩한 우리팀은 이번에 이화령을 넘어 충주로 가는 길에 잠깐 지나쳤던 연풍에서 청주까지 34번 국도를 따라 흐르는 다섯 개의 하천을 종주하는 계획을 세웠다. 청주에서 증평, 괴산, 연풍에 이르는 코스다. 충청북도 북부의 산천을 따라 70㎞를 달리게 된다. 증평과 괴산 사이에 남북으로 연결된 산맥, 북에서 남으로 이어진 백마산, 보광산, 칠보산의 능선인 백두대간의 한남 금북정맥에 의해 금강지류와 한강의 지류가 나눠진다. 서쪽의 금강지류는 보강천, 미호천이고 동쪽의 남한강지류는 쌍천, 달천, 성황천이다. 우리는 한꺼번에 이 하천들을 따라 달리며 청주, 증평, 괴산, 연풍의 도시 이야기를 듣고 배울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대곡천이라고 부르는 미호천은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호수를 이루면서 흐르는 하천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미호천은 89㎞의 길이로 음성군 부용산(644m) 남쪽에서 발원해 남으로 흐른다. 미호천은 미호종개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보강산에서 발원해 붙은 이름인 보강천은 충북 괴산군 청안면과 사리면의 보강산에서 발원해 진천군 초평면에서 미호천으로 흘러든다. 원풍천, 삼풍천이 합쳐져 이뤄진 쌍천은 괴산연풍면과 문경의 경계에서 발원해 원풍천이라 부르는 쌍천상류를 거쳐 남서쪽으로 흐른다. 행촌리에서 남동쪽으로 흘러온 삼풍천과 합쳐지는 하천이며 도정리에서 달천과 합류한다. 연풍일대를 흐르기에 연풍천이라고도 한다.


달천은 충북 보은 속리산에서 발원해 괴산을 거쳐 충주시로 흘러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달천은 물맛이 좋아 ‘단냇물’이라 불렀던 것이 변해 ‘달냇물’로 다시 ‘달천’으로 변했다는 지명유래가 있으며 한 남자가 돌다리를 놓았는데 위급한 사람이 이 돌다리 때문에 생명을 건졌다고 덕을 입은 강이라 해 덕천이라는 이름도 있다.


성황천은 충북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 보광산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른다. 보광산 아래 성황당이 있다해 성황천이란 이름이 붙게 됐다고 한다. 성황천은 괴산 동부리에서 동진천과 합류한 뒤 달천으로 흘러든다.
2013년 4월 28일 일요일 새벽 6시. 여명에 바이콜릭스 대원 10명은 2대의 밴에 몸을 실었다. 하루만에 5개의 하천을 달릴 생각을 하니 가보지 않은 충북의 북부지역이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코스의 구성 90%가 포장도로이므로 나는 하드테일(앞쇼바만 장착된 자전거) 라이트스피드를 선택했고 이날의 라이딩을 이 자전거에 의지하기로 했다. 가볍고, 순발력이 좋은 쾌속의 자전거다. 대원들을 실은 두 대의 밴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안성IC에서 평택제천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중부고속도로로 달려 오창IC로 나왔다. 금강과 합치는 미호천은 이곳에서 보강천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청주국제공항근처에서 라이딩을 시작했다. 미호천의 본색을 보기 위해서였다. 천변 수양버들이 늘어진 강 그늘에는 주민들이 옹기종기 앉아 봄을 만끽하고 개발이 되지 않는 미호천은 때로는 좁게, 때로는 넓게 강폭을 형성하며 온갖 생물들을 품고 갖가지 봄꽃들이 순수하게 천변을 수놓고 있었다. 청원군을 벗어날 즈음 미호천과 합류하는 보강천을 만났다.


보강천을 따라가다 우리는 손병희 선생 유허지(遺虛地)에 들렀다. 충북 청원군 금암리에 있는 의암 손병희 선생의 유허지는 3·1운동을 주도했던 민족 대표 33인의 대표로 독립선언식을 이끌어 냈던 손병희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유허지엔 유적과 유물은 없었으나 옛날 그대로 재현시키려 애쓴 모습들이 보였다.


손병희 선생 생가 옆에는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의암정이 있었으며 바로 앞에 태극문양의 연못과 손병희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도 건립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손병희 선생의 동상에서 3·1운동 때의 모습을 그리며 유허지를 떠났다. 곧바로 증평으로 들어와 다시 보강천을 따라 달렸다.


천변의 자전거 길은 잘 정비되지 않아 자전거 길이 끊겨 국도와 자전거 길을 번갈아 타고 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34번 국도를 타고 달리는데 서서히 길이 경사각을 높인다. 이 길로 이어지는 재가 바로 백두대간의 한남금북정맥이다. 북으로 한남정맥은 김포의 문수산까지 이어지고 남서쪽으로는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금북정맥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금강수계와 한강수계를 갈라놓는 고개 백두대간의 한남금북정맥의 능선을 넘었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을 세며 페달을 밟는데 자전거 경사계는 9%를 가리킨다. 서서히 다리에 고통이 오며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무릎과 엉덩이에 극한의 통증이 엄습한다. 2㎞의 오르막에 올라서야 멀리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모래재, 같이 서있는 괴산군이란 표시, 앞의 길이 보이지 않으면 그 곳이 정상이다. 성공과 성취를 위해 반드시 희생과 고통을 내줘야 얻을 수 있다는 세상의 진리, 오얏나무가 복숭아 나무를 얻기 위해 말라죽는 이치 바로 이대도강이다.


우리는 업힐라이딩으로 재를 오르며 이 진리를 수없이 겪고 마음에 담았다. 지나가는 차에서 사람들이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고통 속에 오르는 그 눈물만 볼 수 있지 정상에 우뚝 섰을 때 느끼는 희열을 모를 것이다.


모래재에 올라 자전거를 뉘이고 털썩 주저앉았다. 주저앉아 고생한 허벅지와 장딴지를 풀어줬다. 우리는 휴식 후 심기일전으로 다운힐에 도전했다. 피로가 풀린 장딴지는 몸에 페달을 지탱하는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40~50㎞/h 속도로 바람처럼 괴산으로 달려 내려갔다. 옛길이라 차가 별로 없어 한 시간도 채 못돼 괴산 시내에 도착했다.


성황천을 만나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쌍곡계곡으로 달렸다. 우뚝 솟은 기암괴석의 절벽은 마치 금강산 같았다. 우리는 흐르는 차고 맑은 물에 탁족을 하며 피로를 풀었다. 쌍천을 따라 연풍으로 달려 천주교가 박해 받은 연풍성지를 들렀다. 연풍성지에는 갈매못에서 순교한 103 성인 중 한 명인 루까 황석두 성인의 입상과 묘가 있었다. 왼쪽에는 순교현양비와 처형석 전시가 돼 있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성지를 돌아봤다.


마음속에 고을의 역사와 자연을 배우며 연풍을 떠났다. 해는 서산으로 지는데 쌍천에 비친 저녁노을은 강을 붉게 물들였다. 이날 달려온 5개의 하천을 기억하며 우리를 태웠던 두 대의 밴 위로 밤이 내리고 있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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