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단]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2012.04.29 13:28:05 제492호

기태석 논설위원

지리산자락 구례에 가 보면 구름과 새가 머물다 간다는 운조루(雲鳥樓)라는 고택이 있다. 그곳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뒤주가 있는데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나무 독에 쌀을 채워 놓고 마을 사람들이 끼니를 이을 수 없을 때 타인능해라고 쓰여진 마개를 돌려 쌀을 빼내 밥을 지어먹을 수 있게 99칸 부자 주인이 잘 보이지 않는 장소에 이 뒤주를 놓았다.

 

현대사에 각종 민란과 동학, 여순사건, 6.25 전쟁 등 힘든 역사를 지내오면서 운조루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타인능해 정신 때문이었다고 한다. 계급투쟁 와중에 머슴이나 동네 소작인들이 빨치산이 되어 주인집을 노릴 만도 했을텐데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정신이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집안 곳곳에서 발견 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1m 남짓한 굴뚝이다.

 

밥 짓는 연기가 굶는 집에서 보이지 않도록 담장 위를 넘지 않거나 아예 집의 기단 밑으로 구멍을 내 바닥으로 연기가 빠져나가게 설계하였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였다. 1776년에 세워진 집이니까, 200년 이상 베푼 조상의 음덕이 쌓여 혜택받은 사람들이 나서서 파괴를 막아 준 것이다.

 

이러한 예는 빨치산 활동이 많았던 지리산 기슭이나 좌우익이 심하게 대립하였던 여수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구례 쌍산재(雙山齋)에는 붙박이 뒤주가 있어 20가마니를 저장해 놓고 보릿고개가 되면 빌리고 추수 때 갚았는데 이자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하인들의 임금을 양곡으로 주었는데 퍼가는 됫박을 하인에게 주고 더 가져 갈 수 있는 여지를 줌으로써 집안을 난리에서 구할 수 있었다.

 

여수 봉소당(鳳巢堂) 주인의 피화담은 더 드라마틱하다. 여순반란 사건 때 잡혀간 집주인은 좌익 대장이 주특기를 살려 경제적 독립을 시켜 주었던 소작농의 아들이었기에 도망칠 기회를 잡아 목숨과 집을 보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해남에는 윤선도를 배출한 녹우당(綠雨堂)이라는 윤씨 고택이 있다. 이 집안은 ‘삼개옥문 적선지가’라는 별호가 붙어 있는데 그 뜻은 가난으로 세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갇힌 백성의 세금을 대신 내줘 세 번이나 감옥 문을 열었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흉년이 들면 일거리 제공을 위해 350여년 전부터 간척사업을 해온 덕에 하루가 지나면 좌우익이 바뀌는 전란에도 살아남아 문화유산으로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사회지도층이나 가진 자들이 숨어서 도와주던 훌륭한 구휼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치과계에는 어르신을 위한 구도자를 자처하며 일간지 광고에 임플란트 가격까지 공개하면서 동료를 공격하고 자신들만이 도덕군자인 것처럼 시민을 호도하고 있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자신이나 같은 길을 가는 동료까지 속일 수 없다. 진정성 없이 남을 밟고 올라간 곳은 낭떠러지일 수밖에 없고 덕을 쌓지 못하면 어려울 때 도와줄 사람을 만들지 못해  매일 광고 한들 고독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짧은 생을 살아가는 우리 삶을 한발 뒤로 물러서서 보면 물질에 집착한다는 것이 얼마나 덧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련만 안타깝다.

 

법적으론 잘못이 없지만 재벌가 자녀들의 제과업계 진출이 여론의 뭇매를 받은 것을 보면서 술에 취하면 자신이 취한 줄 모르듯, 돈에 취해도 본인이 그것에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을 모르는 그들에게 최근 조계종 종정 추대법회에서  진제 스님이 하신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

 

“쟁즉부족(爭卽不足)이나, 양즉유여(讓卽有餘)로다.” 즉, “만 냥의 황금도 다투면 부족하지만 서 푼이라도 사양하면 남는 법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오히려 넉넉해진다는 뜻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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