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단] 지금 성적표에 만족하십니까?

2012.05.07 10:42:41 제493호

박창진 논설위원

285위. 2012년 직업만족도 순위 중 치과의사의 위치이다. 백분위 점수로는 64점으로 간신히 낙제를 면하였다. 이비인후과의사는 90위, 성형외과의사는 20위, 한의사는 12위이다.

 

최근 모임에서 만난 이제 막 개원한 후배치과의사들은 임상치과의사이자 경영자인 원장으로서 첫걸음을 내딛으며 수많은 고민과 걱정거리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월급을 받으며 지내던 페이닥터 시절 자신의 모습과 원장으로서의 모습 사이에 괴리감을 느낀다는 소회부터, 어떤 치과의사가 될 것인가 하는 의미심장한 고민까지 앞을 다퉈 토로하던 그들. 경영과 인사관리, 환자와의 대인관계와 마케팅, 진료 분야의 임상적인 고민까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개원의로서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직업만족도 285위. 과연 만족이란 무엇일까? Satisfaction은 satis(충분한)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치과의사들은 무엇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 285위에 자리한 것일까? 그렇다면 어떤 것이 충족되었을 때 ‘만족한다’고 느끼게 될지, 자문해보자. 먼저 치과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고 한다.

 

경영자이자 인사책임자, 치과의사인 원장은 직원들의 근무만족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직원들의 잦은 이직과 구인난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즈음, 직원들이 직장을 선택하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최근, 치과에 근무하는 직원 중 절반이 이직을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즉, 현재 치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원장들은 급여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것과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직업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Job은 보수를 받고 하는 일자리를 말한다.

 

Occupation은 어떤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Vocation은 천직 혹은 소명이란 의미를 가진다. 같은 의미를 지닌 Calling이란 단어도 있다. 여러분 병원의 직원은 어떤 형태의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Job이란 의미만으로 일하고 있을 수도 있고 조금 더 나아가 병원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며 자존감과 성취감을 가지고 근무하고 있을 수도 있다. 보다 궁극적으로 병원 내에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직원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렇다면 원장인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것을 심어주고 있을까?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무엇이 충분치 못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 볼 때이다. 혹, 원장으로서 직원의 불만족 원인 중 급여가 최우선 순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스스로의 직업 만족도에 대해서도 수입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는 않았을까? 병원에서 환자를 만날 때 치아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썩어버린 치아에 주목하고 있다면 우리의 직업만족도는 결국 수입의 고저, 그 수치로 귀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치과의사로서 Job을 넘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병원에서 실천하며 Vocation, 그 소명을 일구어가는 삶에도 값진 행복이 있을 것이다. 행복인 Happy는 행운이라는 hap이 어원이라고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병원의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근무할 수 있는 것도, 나를 찾아와 믿고 치료를 맡기는 환자들과 함께하게 된 것도 행운이라고 여기며 고마운 마음으로 생활하자.

 

의료전문인이 아닌 서비스직처럼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은 의료인의 직업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내 환자로부터 존중과 존경을 받고 사회에서도 그렇게 인정받는 직업이 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보수는 저절로 따를 것이라고 믿는다. 모임에서 만난 그 후배에게는 지금 당장 어떻게 수입을 늘릴 것인가 보다는 어떤 치과의사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라는 고언을 남기며 자리를 마무리하였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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