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시계를 읽지 못하는 시대에

2023.03.16 11:03:39 제1008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605)

TV 채널을 돌리다가 교육방송에서 중학교 수학 문제 풀이를 보았다. 수학을 잘했던 학창시절이 생각나서 조금 들어보는데 도통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순간 미적분을 잘 풀었던 것이 사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대학입시와 대학 수학시험을 보는 것 외에는 쓸 일이 없었다. 더구나 이제는 중학 수학도 이해하지 못한다. 수학자들은 멍청한 이야기라고 할 말이지만, 아직도 중고생들이 학교에서 학원으로 인생사는 데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수학을 배우기 위해 왜 그렇게 노력을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영어는 여행을 할 때라도 사용하고, 국어는 모든 문장을 읽고 쓰기 위해 사용하지만 미적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하지만 생각을 하나 바꾸면 개인이 아닌 세상은 수학이 아닌 것이 없다. 건물을 하나 짓고, 비행기가 날고, 자동차가 달리는 것 모두가 수학이다. 실생활 모든 것에 수학이니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 필요와 불필요 사이에서 학교는 어느 수준까지 가르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학창 시절 미적분을 잘 풀었다는 것이 시험 보는 것 외에 삶에 어떤 가치가 있었을까.

 

몇 년 전 미국 한 방송국에서 방청객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아날로그 시계 읽기를 하였는데 15명 중 1명만이 성공한 일이 있었다. 미국 초등학생의 80%는 아날로그 시계를 읽지 못한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교실 시계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시계 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이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모든 곳에 숫자로 된 디지털 시계인 세상에서 오로지 아날로그 시계만을 읽기 위한 교육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교육의 확장성에 대한 의문이다.

 

하나의 지식은 또 다른 지식의 기반이 될 때 확장성이 있고 고립될 때는 소멸하는 경향이 있다. 연필이 없던 조선시대에는 붓글씨가 기본이었고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붓글씨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취미나 교양 과목이 아니고서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붓글씨를 가르치는 학교는 없다. 시대 필요성과 확장성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최근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인 챗GPT가 출시되면서 이제 AI 시대가 시작되었다. 물론 아직은 오류가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습되며 점점 완벽해져 갈 것이다. 덧셈 뺄셈을 계산기가 하듯이 논문이나 소설 등 글로 쓰는 모든 것은 AI가 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언젠가는 논문 쓴 것을 본인 검증하기 위해 직접 필기하는 시험을 보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조만간 구글이나 네이버에게 하던 질문을 챗봇이 대체하는 시대로 바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중고생들은 아직도 50년 전에 하던 공부 방식대로 학원을 가고 잠을 못 자가면서 입시공부를 하고 있다. 그들이 하고있는 공부가 아날로그 시계를 읽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

 

시대 흐름을 보지 못한 교육 시스템이 시대에 뒤떨어진 붓글씨를 가르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교육계가 죽은 아날로그 시계를 붙들고 있으면서 살아있어야 할 교육의 기본인 인성교육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인성교육이 사라지면 마음 깊은 곳에서 인지하는 행복을 못 찾고 삶이 무미건조해지기 쉽다. 미적분이 개인 삶에 필요 없는 지식인 듯 보이는 착각이 인성교육도 나타난 것이다. 인성은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가치다. 입시로 고통받는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에게는 입시가 모든 것처럼 인식되겠지만, 오래 사는 시대에 긴 인생 여정을 놓고 보면 좀 더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것이 행복이란 관점에서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지금은 아날로그 시계를 읽는 것이 서예를 잘하는 취미나 특기와 다르지 않다. 인성교육이 입시 위주에 밀려난 교육현장은 컴퓨터 시대에 서예가를 대량 배출하는 시대착오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애벌레들은 다들 하기 때문에 그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른다. 지금 입시교육 현장은 아파트 광풍처럼 시대착오적인 학부모들이 만들어낸 집단광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희 기자 news001@s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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