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술 권하는 사회인가

2023.04.14 11:08:32 제1012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609)

마이크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벌금과 요금에 대한 의제를 주었다. 핀란드에서 수입에 비례해 벌금이 부과되는 것을 소개하며, 대기업 상속자가 2003년에 시속 40㎞구간을 80㎞로 달려서 21만7,000달러(2억8,000만원)를 벌금으로 물었다고 했다. 북유럽에서는 핀란드뿐만 아니라 스웨덴, 덴마크 등 국가에서도 음주운전, 과속운전 등 교통법규를 위반할 경우 운전자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을 부과하는 누진 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법규 위반자의 하루 평균 소득 절반을 기준으로 위반 내용에 따라 각각 벌금을 곱해서 계산한다. 한 스웨덴 사업가가 스위스에서 과속으로 12억4,000만원을 낸 것이 최고 기록이다. 샌델 교수는 일률적인 벌금은 부자에게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적어서 요금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북유럽국가의 누진벌금제를 소개했다.

 

지난주 대전 스쿨존에서 친구들과 길을 걷던 아홉 살 초등학생이 만취한 음주운전자로 인해 숨진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운전자는 점심을 먹으며 소주 1병을 마시고 운전을 했으며, 사고 당시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교통전문 변호사의 의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음주운전 사망사고 시에 합의가 안 되어도 통상 징역 4년 정도로 형량이 아주 약하다고 한다. 일본은 음주운전 가해자에게 최고 30년까지 유기징역의 형량을 올리고 음주 사망사고 건수가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한다. 한국법원이 유독 음주에 대해 관대하다는 이야기는 늘 해오던 말이다. 9세 어린아이가 만취 음주운전이라는 어이없는 몰지각한 어른의 행동으로 펴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갔다. 게다가 음주 사고가 평균 4년 형량이라고 하니 사람 목숨의 값어치가 어의없는 수준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제 우리나라 법원도 시대가 바뀐 것을 이해하고 일본처럼 형량을 현실적으로 올리거나 북유럽처럼 합리적 벌금제를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현진건이 ‘술 권하는 사회’를 집필하던 식민지 시대가 아니다. 또 술 마시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던 군사독재 시대도 아니다. 현대는 술을 마시고 타인에게 위해를 가한 것을 용서해줘야 할 그런 시대가 아니건만, 사법부 법원 시계는 느리게 가는 것인지 멈추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판결을 일삼는 법원은 현재 국민들의 인식과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물론 법이 국민의 정서와 인식을 따라가는 것도 위험하다. 국민의 인식과 정서가 정의로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고 객관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의 대부분이 과거 수십 년 전에 만들어져 현대 감각이 상실된 법 조항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특히 음주운전은 사회정의나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재판부의 관대함이 비현실적이다.

 

이젠 바뀌어야 한다. 물론 법이 강하다고 범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음주운전 사망사고만큼은 흉기로 살인한 것에 준하는 특수 살인으로 처벌해야 한다. 특가법 제5조 11(위험운전 등 치사상)에 의하면 음주운전에 의한 상해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고, 사망 시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있다. 형량으로 충분히 예방적 처벌이 가능하다. 이제 재판부가 현실에 맞고 더이상 음주운전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형량을 준비해야한다. 법은 처벌도 있지만 범죄 예방을 위한 목적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주운전 시에 핀란드는 한 달 월급을 몰수하고, 터키는 정신과 치료를 병행시키고, 싱가포르에서는 3번 걸리면 태형이다.

 

나라마다 음주운전을 막으려는 노력이 보이지만, 유독 한국 법원만이 관대하다. 2020년 7월부터 9월까지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 6건 중 징역형이 선고된 것은 단 1건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집행유예였다. 2019년에는 1심에서 76%가 집행유예였는데 2010년 52%보다 관대하여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사법부는 도로에 차가 적었던 60~70년대 낭만적 경범죄로 취급하던 음주운전을 이젠 현실을 직시해 흉기를 지닌 특수상해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홉 살 배양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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