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와 한파

2023.04.27 11:47:11 제1014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611)

어제 저녁 모임을 가는데 가벼운 옷차림 탓에 한기가 스며들었다. 최근 일교차가 10도를 넘고 오전엔 3~7도에서 오후엔 17~21도를 넘나든다. 이런 기온 탓에 4월 말인 지금에도 옷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거리에는 가볍게 봄옷을 입은 사람부터 겨울옷을 입은 사람들이 혼재되어있다.

 

4월 말인데 지금도 추운 것은 문제가 있다. 사람이야 옷을 벗고 입을 수 있으나 식물은 다르다. 특히 기온에 예민한 꽃은 문제가 크다. 올해 더위가 일찍 찾아온 탓에 예년보다 과수나무들이 꽃을 일찍 피웠는데 최근 한파로 냉해를 입어 펴보지도 못한 꽃들이 시들었다. 이런 꽃에서 과실이 열릴지 알 수 없다. 추석 때 수확되는 대표적인 과일인 배와 사과가 가장 큰 냉해를 입었다. 이상고온 이후에 온 한파로 배꽃이 90% 정도 피해를 입은 곳이 있다. 과수농가 중에 일찌감치 포기한 곳도 있다.

 

이상기온은 옷을 고르는 실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단계를 넘어 먹거리까지 침범했다. 이제 이상기온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우리들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수많은 학자들이 주장해온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실제로 체감되는 레벨에 올랐다.

 

최근에 출간된 <호모 히브리스>에서 작가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20세기를 지나면서 호모 히브리스로 변했다고 했다. 히브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내로 오만과 방종, 불손, 교만의 개념이 의인화된 여신이다. 지구 역사관점에서 보면 현생인류는 아주 짧은 순간에 지구를 정복하고 이젠 파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간은 지구가 배출한 가장 지적인 존재이지만, 자기 파괴적으로 끊임없이 팽창하고, 소비하고, 정복하여 고갈시키려는 충동을 지녔다.

 

인간의 탐욕은 파괴적 속도로 진화하여 정점을 향해 끝없이 달려왔고 이제 극복하든가 파멸하든가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도달했다. 현생인류는 순응하지 않고 극복하는 존재였고 수많은 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지금 극단에 처한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돌파구를 찾을 것이란 희망을 제시했다. 다만 인간 유전자에 새겨진 자기 파괴의 충동을 자극하면 안 된다고 전제했다.

 

인류 파멸을 예측하는 과학자나 예언가들은 많았다. 유전자조작으로 탄생하는 슈퍼인류에게 현생인류가 소멸당한다고 주장한 호킹 박사는 기후 온난화로 인류가 지구를 포기하고 화성으로 이주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하였다. 거침없이 오만하고 교만한 존재인 인류가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낸 환경파괴에 의한 기후위기는 이제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 2월 여수 양식장에서 한파로 냉해를 입은 물고기 290만 마리가 폐사했다. 4월 들어 진주와 하동군의 배꽃은 90% 정도 피해를 입었고, 세종 복숭아는 75% 정도가 냉해를 입었다. 어제 태국과 인도 등 아시아 일부에서 체감온도 54도의 역사상 최악의 폭염이었다. 태국에서는 당분간 40도가 넘는 이상 고온이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스페인도 이번 주에 40도까지 오르는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지금 냉해를 입고 있는 한국은 올여름에 폭염이 예고돼 있다. 이제 지구온난화는 이상기온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상기온이란 예측불가하단 의미다.

 

그동안 기온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예측이 가능했고 그렇게 만든 것이 24절기다. 24절기에 맞춰 농사를 짓던 농부들은 이제 예측 불가한 이상기후로 인해 혼란스러워졌다. 인류가 입힌 피해가 이젠 지구 자정능력을 초과하여 이상기온으로 나타났다. 혹자는 자연의 역습이라고 말하지만 한마디로 정의하면 인류가 지구의 항상성을 파괴한 것이다.

 

농부는 씨를 심고 땅속에서 싹이 올라올 때까지 땅과 그동안 흘린 땀을 믿어야 한다. 또 싹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열심히 가꾸면 되었다. 물론 장마로 인한 침수나 태풍으로 유실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른 더위와 한파로 인한 냉해는 예측 불가하다. 이제 농민은 예측할 수 없는 대상과 씨름해야 한다. 인간의 오만이 만든 결과다. ‘히브리스’는 더 이상 신에게 도전하는 오만을 버리지 않으면 파멸되니 늘 경계하라는 의미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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