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단] 치과의사, 그리고 노블리스 오블리주

2013.03.16 12:39:46 제534호

박창진 논설위원

인터넷에 각 나라의 중산층에 대한 정의를 소개한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중산층의 요건을 5가지를 요약하였는데, 대출 없는 30평 이상의 아파트에 살며 2,000cc급의 중형차를 몰고 월 급여 500만원 이상에 예금액 잔액이 1억원 이상이어야 하고 해외여행을 1년에 몇 차례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기준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의 삶에 부합할 수 있는 구성원이 얼마나 될까? 치과의사들의 사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다른 나라의 중산층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다를까? 일례로 유명한 퐁피두 센터를 건립한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은 삶의 질을 정의하며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제시하였다. 먼저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즐기는 스포츠가 있으며 악기를 하나 정도는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사회적 문제에 참여하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야만 중산층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다고 설파하였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도 중산층의 기준을 제시하였는데 다음의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둘째, 불법과 불의에 의연히 대처한다. 셋째, 약자를 돕고 강자에 대응한다. 미국의 경우, 공립학교에서는 중산층의 기준을 ‘자신의 주장이 뚜렷하고,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하고,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며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비평지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굳이 먼 나라의 요원하기만 한 정의들을 살펴보면서까지 우리가 고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의 부친은 은퇴한 치과의사다. 부친 시절의 치과의사는 분명 지금보다 환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직업이었던 것을 회고한다. 감사를 담아 고개 숙여 인사하고 감사의 마음으로 치료비를 내는 환자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치과의사가 마주하는 환자들은 과연 존경과 신뢰를 하고 치과 문을 열고 들어서며 또, 감사의 마음을 담은 채 병원 문을 나서고 있을까?, 아주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환자들이 달라진 것인가 하고 말이다.

 

‘국산은 얼마, 수입은 얼마’라는 임플란트 수가에서 치료행위는 과연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 친구를 데려오면 수술비를 깎아 준다며 양악수술이라는 상품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통한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다시 돌아와,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제시한 중산층의 정의와 우리나라 중산층의 요건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작금의 치과의사와 환자와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읽힌다. 치과의사 스스로 사회적 지위와 성공에 대해 또 직업적 보람에 관한 기준들이 우리의 중산층의 그것과 같이 물질적인 요건에 국한한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 환자들의 변화한 태도에 대하여 절로 수긍할 점이 생길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고등학교 졸업시험은 모두 6개의 부분으로 인간, 인문학, 예술, 과학, 정치와 권리, 윤리에 걸쳐 각 10여 개의 주관식 문제를 내는데 그 일부를 소개하자면, 꿈은 필요한가? 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말해주는 내 안의 결정요소는 무엇인가? 등이라고 한다. 그들이 기성세대로서 자라나는 후대에 물려주고자 하는 지식과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 치과의사들은 치과대학에 재학 중인 우리 후배들에게 또 치과의사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에게 유산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진료실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내 모습이 시험 문제가 되고 있을 것이라는 성찰이 필요하다. 백년전쟁 중 프랑스 칼레 시민을 대표해 죽음을 자처한 상류층 여섯 명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가지기는 어렵더라도 중산층의 모습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글을 맺는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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