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인 원장의 사람사는 이야기

2013.05.13 10:59:49 제542호

대마도 자전거여행-1

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저녁, 그날 밤 대마도 원정을 떠나는탓인지 기타 교습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저녁 7시부터 시작한 기타 교습. 강사인 황선생은 나의 기타 연주가 계속 실수를 연발하니, 이상하다며 질책을 한다.

 

오늘따라 어려운 연주기법인 퍼커시브 기법이다. 기타 줄을 두드리며 부딪히는 메탈사운드가 찰싹찰싹 거리며, 아르페지오로 기타 줄을 뜯어야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할 수 없이 대마도 여행에 관해 얘기하였다. 그랬더니 황선생도 의문이 풀리는 듯 오히려 인생을 멋지게 산다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복습을 하기로 하고 부랴부랴 교습을 하는 둥 마는 둥 집 앞에서 기다리는 밴에 올랐다. 이미 짐은 밴에 실려 있다. 대원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나를 태운 밴은 서울역을 향했다. 밤 10시 서울역 대합실에 6명의 대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뜻한 유니폼에 자전거부대가 대합실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짐을 정리하고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밤 10시 50분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전거를 실으려고 하자 역무원들이 달려와 완강히 거절한다. 한참 사정도 해봤지만, 바윗돌에 계란 던지기였다. 할 수 없이 돌아서려는 순간 하늘이 도왔는지 지금까지는 기세가 등등했던 역무원들이 맨 앞 기관차의 한구석을 내어주었다. 자전거 손상에 책임을 질수 없다는 한마디에 그래도 좋다고 굽실거리며 자전거를 싣는다. 몸을 굽히면 하늘도 용서하는 걸까? 그들의 마음이 왜 바뀌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하튼 열차는 출발한다.

 

화장실 앞 공간에서 가지고 온 소주와 캔, 마른안주로 이튿날 라이딩에 대한 작전회의로 밤을 샌다. 잠깐 눈을 붙였는데 벌써 부산이 가까워져 온다. 다시 짐을 챙기고 하차 준비를 한다. 열차가 부산역에 멈추자 쏜살같이 기관차로 달려, 자전거를 내린다. 다행히 자전거 손상은 없었다. 대부분 티타늄 자전거라 가격이 만만치 않다. 장거리에 피로를 줄이는 방법은 트레블 진동이 없는 티타늄 프레임이 제일이기에 60세가 넘은 라이더들은 이 프레임을 즐겨 찾는다.

 

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새벽 4시에 부산역을 나선다. 모든 것이 잠든 4시! 가로등 불빛만 깜박거린다. 아무도 없는 길을 앞 자전거의 후미등만 보고 국제여객터미널로 향한다. 배가 고파 광복동에서 겨우 식당을 찾아 해장국을 한 사발 먹었다. 대마도 원정을 위한 체력을 보강한다. 터미널에는 여행사 직원이 나와 제반 출국서류를 챙겨주었다. 드디어 오션플라워호에 오른다.

 

지금까지 7년간 우리나라 국토 구석구석을 다녔지만 해외원정은 처음이다. 그동안 대마도 원정은 3년간 계획과 연기가 반복됐다. 날씨도 그랬고 한일 국제관계도 그랬다. 지금도 독도 문제로 양국 관계가 좋지 않다. 그러나 날씨가 좋아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나의 자전거 궤적이 처음으로 이국의 땅을 누빌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뛴다. 이국의 지형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분수처럼 자제할 수 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자전거를 화물칸에 옮기고, 좌석에 앉아 선창을 통해 현해탄을 본다. 잔잔하고 푸른 바다 저 멀리 오륙도가 우리의 원정을 응원하고 있는 듯 힘을 보낸다. 바다를 날듯이 발진하는 페리호는 흰 파도를 부산 쪽으로 내뿜으며 총알처럼 수면을 달린다. 한 시간 남짓 멀리 일본 대마도가 보인다. 자그마한 시골의 작은 포구 히타카츠항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히타카츠항은 항구라기보다 우리나라 조그만 어촌의 포구같이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우리나라 낚시꾼들이나 여행객들이 가끔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나 이 조그만 항구의 입국심사는 우리나라 공항 이상으로 엄격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일본이라는 나라의 성격을 파악하게 되었다. 배에 연결된 램프를 내려오는 순간 나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심사를 기다린다.

 

처음엔 왜 사람도 많지 않은데 이렇게 줄이 길까 하고 의아해했다. 자전거를 가지고 내리는 우리에게 입국관리소 직원이 따라오라고 한다. 이상해서 따라갔더니 직원 한 사람이 소독약과 걸레로 자전거 바퀴를 철저히 닦고 있었다. 외국의 오염물질이나 흙이 조금도 일본 땅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일본의 깔끔한 성격을 우리는 처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닦는 직원의 얼굴에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보았다. 이런 하찮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일본 사람의 특징을 보여준다. 입국심사로 하나하나 사진을 찍고 까다롭지만 친절하다. 철저하고, 친절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터미널을 빠져나오자 키가 작고 복어처럼 마른, 감색 싱글양복에 넥타이를 맨 사람이 90도로 인사를 한다. 우리를 밴으로 안내할 무라세토시야씨다. 가슴에는 대마도 관광청에서 임명한 사람이라는 마크를 붙이고 있다. 이 일이 그에게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일로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주문만 하면 “하이, 하이”하며 굽실거리는 것은 습관이 되어버린 그들의 본능인 것 같다. 이 사람에게는 ‘적당히’라는 것이 전혀 없다. 이런 태도는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나 싶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그렇듯이 거리는 휴지조각하나 없이 말끔하다.

 

배려와 도덕이 삶에 배여 있는 나라 그래서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물론 몇몇 군국주의자들이 이런 일본의 선진성에 먹칠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가까이 있어 마치 우리나라 섬을 방문하는 것 같은 대마도! 조선왕조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이 이 섬을 평정한 이래 그저 쓸모없는 섬으로 내팽겨졌던 대마도가 지금 해양지도를 바꿀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이제 대마도 북단 히타카츠항에서 남쪽 아즈하라까지 섬을 종주하는 150㎞ 대장정이 시작된다. 150㎞ 하루에도 달릴 수 있는 거리지만 30개가 넘는 고개와 터널이 있고 또 라이딩이 그들의 문화와 삶을 체험하는 목적도 있어 3일로 나눠 달리게 된다.

 

지금 시각이 12시! 우리는 산들바람이 부는 히타카츠항을 떠나 남쪽으로 페달을 밟는다. 거리는 한산하고 사람들은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에 열중이다. 대부분 어업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조선시대 왜구로 돌변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노략질하던 본거지가 이 섬이었지만 지금의 그들은 일본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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