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단] 오리무중 전문의 문제, 가닥을 잡나?

2014.02.10 15:24:56 제577호

박용호 논설위원

지난 연말, 서울지부 감사 자격으로 구 송년회에서 회장 대신 축사를 하였다. 직무상 어울리진 않지만 부회장들이 동시다발로 개최된 각 구회 송년회에 참석했으므로 도리가 없었다. 장소가 레스토랑을 빌린 탓에 음악이 흐르고 들뜬 분위기에 산만했다. 축사원고는 주로 전문의에 관련한 특위의 결정사항에 대한 것이었는데, 청중들의 지루한 표정이 역력했다. 40여년간 너무도 오래 끌어온 문제였고 자리가 자리인만큼 연목구어(緣木求魚)식의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동석한 서울지부 임원을 통해 그 야심한 시각에 서울지부 회장은 구 송년회에 이어 전문지 기자 송년회로 이어지는 숨찬 일정을 소화하고 있음을 들었다. 전문지 기자 송년회 참석은 한해를 수고한 기자들의 격려와 전문의 문제 홍보부탁 때문이었을까?

 

치협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이언주 의원 발의로 치과병원급 이상에서만 전문과목 표방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개원가의 분란의 소지를 없애기는 하겠지만 전문의의 활동반경을 줄이는 고육지책이며 권위적이다. 또한 작년의 다수개방안에서 급선회한 제한적 안이다. 우선 당장 실질적으로 개원가에서 전문의 역할을 하는 구강악안면외과, 교정과, 소아치과의 상실감이 클 것이다. 또 의과와의 형평성이 대두되어(77조3항이 악법이라고 복지부도 말하고 헌법소원도 진행 중인데 아예 삭제한다고 한다) 이 또한 헌법소원이 될 것이다. 이번 치협 집행부의 가장 큰 공헌이 불법네트워크의 척결이었는데 오히려 이들이 병원급으로 몸집을 키우도록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의료법 77조 3항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한때는 우리 치과계 현실에 딱 맞는 법이라고 개원의들이 반색을 하였건만, 그 빛을 발하기도 전에 말도 많고 탈도 많더니만 폐기될 상황에 처해 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발의 욕심과 치협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인가, 무슨 법이 이리 조령모개(朝令暮改)식으로 바뀌는가. 치협의 전문의에 대한 비장의 발표는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다(총회 의결상황을 보고 부결되면 그때 가서 추진해도 되는데). 언제는 특위에서 알아서 하라고 권한을 주었다가 특위에서 신통한 단일안 정답을 만들지 못했다고 야단치듯이 모범답안을 짠하고 내놓았으니 말이다. 평소 까다롭던 개원의협의회와 건치에서도 환영 일색인 것으로 보아 정답에 근접한 것인가? 

 

 특위의 3개 안이 총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단하고 이번 안을 발표한 것은 유감이다. 이것은 대의원을 무시하고 핫바지로 만든 처사이다. 치협 운영에서 제일 중요한 대의원총회 의결사항을 요식행위화한 절차적 하자다. 생뚱맞지만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변호인’에서 부림사건의 대학생 용의자들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다고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예단하고 검찰수사는 요식행위화하는 것과 비슷하다(물론 실제는 다르다).

 

복지부는 지난해 연말, 친절하게도 원론적 발표를 통해 “국민들은 치과의원에서부터 전문의를 선택해 진료를 받게 됨에 따라 치과진료의 전문성과 의료의 질이 더 향상될 것”이라고 했고, 연초에는 치과의원급 표방허용 안내에 대한 의견까지 냈었는데, 치협의 이번 발표로 스타일을 구기고 곤혹스러워하고 엇박자 중은 아닌지 모르겠다. 차라리 이번 안이 복지부나 새누리당 발의안이라면 통과도 추진도 쉬울 듯한데 치협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복지부는 항상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직역간의 형평성이 우선이지, 치과의사간의 특수성이나 이해관계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복지부는 치과의사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또 그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연관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치협의 이번 안은 과도기의 적절한 대안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꺼번에 다 풀면 혼란이 예상되니 ‘병원급’이란 첫 단추를 잘 채워야 할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이번 집행부에서 끝날 일도 아니니 차기 집행부의 실천이행을 관심 있게 지켜 볼 것이다. 그리고 향후 언젠가는 치과의원급에서도 전문의 표방이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전문의라는 타이틀을 정말 의술에만 사용할지, 아니면 마케팅에만 써먹을지가 염려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것은 결국 개개인의 양심과 시장논리에 맡겨야 할 것이다. 일일이 법만으로 규제할 수도 없고, 모를 것 같지만 이미 성숙한 국민들이 본능적으로 알아채기 때문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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