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단] 위시리스트, 버킷리스트와 선거 공약

2014.03.03 11:35:02 제580호

기태석 논설위원

치과의사에게 열흘간의 여행이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이번만큼은 위시 리스트, 버킷 리스트를 나도 한번 쓰겠다는 다짐을 하고 떠났다. 더구나 아들을 만나러 가는 일정조절이 가능한 여행이었기에 기내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결심을 한데는 하루하루를 눈물 젖은 눈망울을 굴리며 달구지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축 처진 소처럼 살면서도 멍에를 벗어 버리지 못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최소한의 도전이었다.

 

내 나이 육십, 내년이면 환갑, 이루어 놓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펜을 들고 보니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많은 것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하는데 걷잡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하고 싶었던 게 많았는지 새삼 놀라며 이 많은 것들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까? 과연 할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여기서 위시 리스트와 버킷 리스트사이에 나이가 변수로 들어가야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었고, 하고 싶다고 다 이룰 수 없는 나이기에 많은 것들을 위시 리스트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경제적, 육체적, 가정적 요소들을 대입시켜보니 그 숫자는 족히 십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어느덧 이루고 싶은 위시 리스트에서 죽기 전에 꼭 해야 한다는 버킷 리스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치협이 협회장 선거에 접어들고 있다. 후보마다 정성 들여 만든 선거 공약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거기에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바라고 해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불가능한 것도 있고 3년 임기 동안 전혀 이룰 수 없는 것도 있을 것이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표를 의식한 헛된 공약은 당선된다 해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예산과 시간 낭비라는 대가를 회원의 몫으로 치를 것이다.

 

선거 공약을 만들 때는, 자신과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진정 이룰 수 있고 꼭 해야 할 것만을 위시 리스트에서 뽑아내 버킷 리스트를 만드는 것처럼 회원들이 원하고 이루고 싶은 것이 현실성이 있는지 아닌지를 생각하고, 솔직한 약속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고뇌가 없이 만들어진 공약(公約)은 바로 빈 공약(空約)이 될 것이고, 실천 방안이 아예 없거나 미래에 대한 타임 스케줄이 허술하다면, 급조하거나, 잘 못 판단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이 점을 철저히 검증해야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천 의지도, 방안도 없으면서 그저 하고 싶다고 제목만 나열하는 후보에게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진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앞당기려면 유권자가 가려낼 수 있는 식견을 가져야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행을 다녀 온 지 이십일이 되도록 아직 리스트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직 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은데 그것이 욕심인지 아닌지 자신과 더 타협해봐야 하고, 실천 방법, 시기까지 고려하려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하는데, 몇 가지는 나중에 포기 리스트에 올리더라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벌여 놓은 일도 마무리 못 하면서도 또 벌리려 하는가 하고 말할 수 있지만 못해보고 죽으면 억울할 것 같은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리스트 작성을 시작하면서 느낀 것이라면 “십년만 젊었으면”하는 것과 “십년 전에 썼더라면”하는 후회였지만 지금이라도 쓰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련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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