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속을 달리는 사람들 (2)

2014.09.22 09:34:41 제605호

손창인 원장의 사람사는 이야기

운두령 정상의 운무는 한동안 우리를 선계로 인도하였다. 운무 속에서 신선 같은 즐거움을 느끼며 정상등정의 기쁨을 만끽하는데 버스에서 내린 수십 명의 등산객들이 하나둘씩 계방산으로 사라져 버린 뒤, 고요한 운두령에는 우리만의 환호가 가득하였다.

 

적막의 운무 속에서 기쁨을 뒤로하고, 운무에 옷이 젖은 채로 다운 힐에 나선다. 10%의 경사는 다운 힐 라이딩 시 속도를 제어하지 않으면 시속 70㎞이상이 나오기 때문에 위험천만이다. 운무에 젖은 옷 때문에 17도 정도의 기온에서도 덜덜 떨며 내려간다. 몇 구비의 헤어핀을 돌아 내려갔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정상에서 관광객들에게 들었던 운두골 송어횟집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잔뜩 긴장하며 5㎞이상을 달려 내려가는데 멀리 길가에 입간판이 서있다. 자세히 보니 운두골 송어회라고 쓰여 있었다. 선두대원이 어떻게 알았는지, 멀리서 정지신호로 주먹을 흔들다.

 

맛집은 그 지역사람들의 입소문이 정답이다. 단풍나무가 반기는 입구에서 180도 회전해서 들어가니, 벌써 그 동네 사람들이 꽉 차게 들어앉아 송어회를 먹고 있었다. 그들의 말이 “제대로 찾아왔다”고 한다. 넓은 마당의 식탁에 앉아 막걸리를 나누는 모습이 신선들 같았다. 계곡을 따라 마련된 평상들이 줄지어 있고, 계곡물 소리 유난히 산속의 낭만을 노래하는데, 상에 차려지는 송어회 요리는 입맛을 돋운다.

 

말없는 주인장이 “오늘 자전거 팀은 첫 손님”이라고 “조금 있으면 자전거 라이더들이 많이 몰려올 것”이라고 한다. 그들을 통해 입소문이 났던 것 같다. 하나씩 나오는 메뉴들, 집주인 마냥 느긋하게 기다리며 맛을 음미해야 한다. 각종 야채, 들기름, 양념고추장, 3색 나물무침을 콩가루를 넣고 비벼먹는다. 기름장에 회만 찍어먹기도 하고, 쌈장에 쌈을 싸는 등 취향대로 먹는 방법도 다르다. 이것이 이 집 맛의 비결이었다. 송어회는 비린내가 없고, 바다 생선과는 다른 은은한 구수함이 있어 마치 선비 같은 우아한 맛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운두령 정상 운무 속에 신선이 되었고, 운두골 계곡 송어회로 인해 선비가 되었다.

 

남은 송어회는 튀김으로, 또 남은 것은 매운탕으로. 식사 마무리를 하는 방법이 송어회 시나리오를 쓰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은 비경과 신비한 송어맛과 먹는 샘물 등이 있어 31번 국도는 이야기가 있는 비경의 길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운두골에 파묻혀 일어설 줄을 몰랐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안개 낀 운두골을 뒤로하고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태양이 대지를 달구던 서울과는 다른 별천지. 서늘한 이곳에서 운두의 속살을 맛보며 달린다. 오래 앉아있었는지 다리 관절이 뻣뻣하다. 상쾌한 섭씨 17도 숲속의 테르펜향이 코를 자극하는 낮 2시 우리는 아홉 마리 용의 전설! 구룡령을 향한다. 갈림길에서 56번 도로를 탄다. 같이 가던 자운천과 이별하고 내면을 지나 원당초등학교에서 내린천과 동행한다.

 

팔뚝만한 열목어가 3m 높이의 폭포를 오르는 장관으로 유명한 칡소폭포를 지나 계방천과 다시 동행한다. 이때부터 길은 서서히 각을 높이는데, 한편으로 호기심이,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앞선다. 얼마나 많은 헤어핀 업 힐을 달려야 하나. 이내 우리는 숲이 우거진 경사도로에 접어들었다. 음산한 기운이 엄습하는데, 지나는 차도 없고 우리들의 페달링 소리만 들린다. 10㎞의 구룡령 업힐! ‘어떻게 체력안배를 해야 하나?’ 머릿속에서는 정상을 향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오대산 명개리 계곡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외청도리부터 계방천과 이별하며, 산세는 가파르게 변하는데. 헤어핀이 시작된다. 이제부터 구룡령 업 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오르면 오를수록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고갯길. ‘얼마나 많은 심산구곡을 돌아야하나?’ 점잖았던 운두령과는 길의 성격이 완전히 다른 용의 자취를 따라 오르는 것 같다.

 

한번 구부러질 때마다 각도는 10%를 넘나든다. 입이 벌어지고 눈에서는 열기가 뿜어져 고글에 김이 서려 고글마저도 벗어버린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퉁탕거리고, 무릎과 대퇴부근육이 끊어지는 고통이 엄습하는 지점, 3㎞는 올라왔나 보다. 이제 직선 길도 경사각을 줄이려고 지그재그로 운행을 한다. 저 멀리 휴식공간이 보인다. ‘어서 가서 물과 탄수화물을 보충해야지’ 우리대원은 말도 하지 않았는데 모두 그 공간으로 향했다.

 

잠깐의 휴식! 꿈만 같다. 순식간에 물 한 통을 비우고 카보로딩을 위해 초콜릿을 입에 틀어 넣는다. 밴에서 물을 가져와 배낭에 넣었다. 산소와 물과 탄수화물은 경사각에 따라 그 소모도가 비례한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오름이 시작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오지의 산길.

 

이제는 정신이 몽롱하고 몸의 관성에 따라. 템포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오버하면 다운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얼마나 올랐을까, 얼마나 많은 구비를 돌았던가. 셀 수도 없다. 헤어핀의 크기는 운두령보다 적으나, 작고 수많은 구비는 운두령에 비할 바가 아닌 혼을 빼놓는 고갯길이다. 정신없이 오르는데, 저 멀리 하늘이 훤해지며 한구비도니 구룡령이란 이정표가 서있다. 언제나 그렇듯 끝이 보이면 없던 힘도 나는 법이다.

 

정상정복의 쾌감이 고통의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우리는 하늘이 밝아지는 구룡령에 올랐다. 1,013m의 선계(仙界). 운무가 뒤덮은 정상을 달린다. 우리는 하계에서 선계로 오른 것이다. 어느새 운무는 우리를 감싼다. 서둘러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 벌써 4시다. 산속의 낮은 짧다. 이 잠깐의 기쁨을 위해 그 많은 시간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다운 힐. 끝없이 돌고 도는 헤어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구비가 수도 없다. 중간에 다시 브레이크를 식히고, 다시 갈천리를 향해 내려간다.

 

옛날 이 지방에는 먹을 것이 없어 칡을 물에 담가두면 물이 하얗게 되는데 이물을 가라앉혀 가루가 생기면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봄이면 냇물이 뽀얀 칡 물이 되었다고 葛川(갈천)이라 하였다.

 

갈등이란 말이 바로 칡과 등나무에서 나왔다고 한다. 칡은 왼쪽으로 감아오르고 藤(등)은 오른쪽이라 둘이 같이 감아 오르게 되면 엉키게 된다는 것이다. 칡차를 마시고 우리는 신라 때 선림원 승려를 위해 쌀을 씻었는데 그 양이 얼마나 많았던지 계곡물이 하얗게 되었다고 美川(미천)라 했다는 미천골로 향한다. 70㎞의 산길을 달렸다. 어서 가서 다리 쭉 뻗고 누어야겠다. 탈진되어가는 몸을 이끌고 우리는 미천골 팬션으로 향한다. 운두의 운무와 구룡의 아흔아홉 구비를 생각하며 저 멀리 하얀 펜션이 보인다.

기자 ys@s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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