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아커, 달콤함 너머의 이야기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과자!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자 브랜드 로아커가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로아커는 주로 초콜릿과 웨이퍼 과자류를 제조하는 회사로 1925년 이탈리아 볼차노(Bolzano) 시내 중심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100년이 지난 지금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기업명은 창립자인 알폰소 로아커(Alfonso Loacker)에서 따온 것이다.
창립 당시 그에게는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그는 바로 축구팀의 미드필더였고, 주말이면 경기에 출전해야만 했다. 하지만 제과점은 주말이 가장 바쁜 시기이고, 손님 수요도 폭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알폰소는 하나의 묘안을 생각해내는데, 그 해답은 바로 신선함을 오래 유지하면서, 미리 만들어 둘 수 있는 웨이퍼(Wafer, 웨하스 류의 얇고 바삭한 겹과자)를 만드는것 이었다. 세 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던 작은 제과점은 볼차노 최초의 웨이퍼를 탄생시켰고, 이후 낱개 포장 스낵으로 제품화 되며 로아커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1958년 창립자의 아들인 아르민 로아커가 생산 책임자로 합류하게 되고, 10년 뒤에는 여동생 크리스틴 로아커까지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가족 경영 체제가 확립되었다. 이렇게 로아커는 단순한 스낵 브랜드가 아닌 가족의 전통과 창의성 그리고 생활 속의 달콤함이 어우러진 100년 전통 유럽 디저트 문화의 상징으로 성장하게 된다. 지금은 1,000천명이 넘는 직원이 함께 하고 있으며, 1974년에는 공장을 해발 1,000m에 위치한 아우나 디 소토(Auna di Sotto)로 이전하게 되는데, 이는 ‘좋은 것은 맑은 공기 속에서 만들어진다’ 는 창립자의 고집스러운 철학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신선하고 공기가 깨끗한 알프스 자연 한가운데에서 천연 고품질의 재료로 만들며, 인공 향료를 첨가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2021년부터는 초콜릿 생산도 자체 공장에서 직접 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피우 케 부오노(Più che buono) 맛 그 이상!’ 이라는 브랜드 캠페인을 발표, 원재료 조달부터 포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 과정에서 친환경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친환경 시대에 발맞춘 브랜드 재도약에 나서고 있다.
로아커 로고의 상징! 슐레른 산
로아커의 100년 여정에서 그 시작점이 된 이탈리아의 ‘볼차노’라는 도시를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다운 돌로미티 산맥의 품에 안겨 있어 청정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며, 바로 이 맑은 공기와 풍요로운 자연이 로아커 웨이퍼의 첫 맛을 탄생시킨 배경이 되었다. 로아커 로고에 있는 슐레르 산(Schlern, 이탈리아어로 Sciliar)은 볼차노 지역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로아커가 처음 공장을 지어 지금까지도 제품을 생산하는 알프스 고지대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볼차노 시내에서 출발하는 레논 케이블카(Funivia del Renon)를 타면 단 십여분 만에 해발 1,200m 이상 고지대인 소프라볼차노(Soprabolz-ano)에 도착한다. 올라가는 동안에도 케이블카 안에서 슐레른 산의 웅장한 실루엣이 점점 시야에 들어오고,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그 형태가 더욱 뚜렷해진다. 소프라볼차노 마을은 돌로미티 자연 속에서도 특히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로 사랑받고 있다. 돌로미티 산군의 파노라마를 감상하거나, 고원 철도를 타고 목초지를 따라 달리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알프스의 풍경을 바라보기에도 좋다.

로아커의 고향 볼차노
로아커는 브랜드 100주년을 맞이해 고향 볼차노 산책로에 자전거길을 따라 100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환경을 위한 헌신과 도시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브랜드의 철학과 정체성 그 자체인 볼차노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의 도시이며, 독일어로는 보젠(Bozen)이라고 불린다. 남티롤(Südtirol) 자치주의 중심지로서 두 문화가 공존하는 이중 언어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 카페에서는 독일식 사과 디저트 스트루델(Strudel)과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가 한 테이블에 나란히 올라온다. 뿐만 아니라 거리의 표지판이나 간판, 신문에도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함께 쓰인다. 알프스의 품에 안겨있는 볼차노는 아름다운 자연 못지 않게 역사적으로도 풍요로운 도시다. 수천 년 전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삶이 이어져온 흔적을 품고 있으며 중세 상업 도시로 성장한 이후에도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오고간 역사의 교차로였다.
중세의 아케이드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파시즘 시기의 합리주의 건축물이 등장하고, 바로 옆 골목에는 고딕풍 종탑이 하늘을 찌른다. 마치 깎아지르는 돌로미티 지역 돌산의 모습을 닮은 것도 같다. 작가 귀도 피오베네(Guido Piovene)는 이 도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볼차노는 부유하고 현대적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고딕이다.” 볼차노 고딕 양식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건축물은 대표적으로 두오모가 있다. 정식 명칭은 chiesa di Santa Maria Assunta(성모 승천 대성당)으로, 발터 광장(Piazza Walther) 정면에 위치해 있다. 볼차노의 역사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로마네스크에서 시작해 고딕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성당은 붉은 사암으로 지어져 볼차노 도시의 색감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지붕은 초록색과 황금빛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되어 햇빛을 받을 때마다 고딕 건축 특유의 하늘로 향하는 영적 상승감을 강조한다. 밀라노의 고딕양식 성당인 두오모는 권위적이지만 볼차노의 두오모는 도시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든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
볼차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크리스마스 마켓 중 하나로 남티롤 지역의 전통과 독일, 오스트리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따뜻한 겨울 축제다. 계피향과 달콤한 디저트, 나무 오두막집의 다채로운 색감, 수천개의 크리스마스 조명이 어우러져 차가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이 행사는 볼차노의 중심 발터 광장과 인근의 크리스마스 공원까지 확장되어 제법 큰 규모로 열리고, 일반적으로 11월 말부터 이듬해 1월 6일까지 운영된다. 대표적인 먹거리는 따뜻한 글뤼바인(Glühwein, 뱅쇼), 사과 스트루델, 구운 밤, 프레첼, 지역 치즈와 남티롤식 소시지와 빵 등이 있다. 거리의 불빛과 사람들의 활기찬 웃음, 고요한 눈발과 고딕 양식의 두오모가 어우러진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겨울의 한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
로아커의 100년 여정은 단순한 기업의 성공 스토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볼차노라는 도시가 지닌 역사와 자연의 숨결, 사람들의 손끝에서 전해진 정성이 쌓여 이룬 하나의 결정체다. 돌로미티의 순수한 공기 속에서 출발한 로아커는 알프스 고지에서 탄생한 만큼 투명하고 단단한 철학을 지켜왔다. ‘좋은 것은 맑은 공기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믿음 아래 인공적인 첨가 없이 자연 그 자체를 품은 맛을 고수했고, 그 정신은 오늘날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현대적 가치와도 닿아 있다.

돌로미티의 거점마을 볼차노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 서부지역의 거점마을이기도 한 볼차노는 이탈리아 주요 관광도시에서 고속기차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 볼차노 기차역 바로 옆에 위치한 버스터미널에서 1시간에 1대 있는 165번 버스를 타고 약 27분 이동하면 로아커 본사 앞에 내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