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산업발전이란 복면 뒤에 감춰진 의료영리화

2015.12.28 15:03:54 제664호

[특별기고] 서울시치과의사회 조영탁 법제이사

새누리당이 국제의료사업지원법에 이어 기어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며 법안 처리를 강력히 촉구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3월 여야회담 협의사항도 깨고 보건의료 분야를 포함시키겠다고 하면서,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회기가 종료(12월 9일)되는 다음날인 10일부터 내달 8일까지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단독으로 제출했다.

 

법조문에 의료와 관련하여 한줄 언급도 없는 서비스법이 의료영리화를 위한 법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그동안 끈질기게 시도된 정부 정책과 관련이 있다. 2008년 기획재정부는 업무보고에서 ‘의료서비스 규제 완화’  방안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다양화를 위해 영리의료법인 도입 검토”와 “의료 분야 투자 확대와 다양한 의료서비스 확충을 위한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후 2008년 4월 정부가 발표한 1단계 발전방안에는 의료관광활성화라는 명목 아래 “해외환자유치알선, 의료기관 영리 부대사업, 의료기관 합병, 병원경영지원회사(MSO), 의료기관의 호텔 등 숙박업, 보험회사의 환자유치알선” 등을 허용하는 내용을, 9월 2단계에는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 회사 도입, 민간보험회사 건강관리서비스 겸업 허용, 1인 1개소 영업 규제완화, 비전문자격사의 의료기관 및 약국 영업 허용” 등을 담았다. 이를 토대로 2011년 11월 서비스법을 발의하였는데, 제2조(적용범위)에서 “의료, 교육, 관광·레저, 정보통신서비스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서비스산업에 대하여 적용한다”고 하여 공공적 사회정책에 해당하는 의료와 교육을 성장 ‘산업’으로 규정하였다.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이하 위원회)를 통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공공적 사회정책을 기재부 독단으로 처리하게 된다는 점 때문에 여론의 비판을 받아 국회에서 폐기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2012년 또다시 문제점을 일부 ‘개선’했다는 서비스법 제정안을 제출하였다. “교육과 의료, 정보통신 등의 명문이 빠진 대신 “서비스산업이란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을 말한다”고 규정하여 오히려 대통령령으로 위임함으로써 교육, 의료 뿐만 아니라 제조업 이외의 모든 분야를 서비스산업으로 포괄하도록 그 범위를 더욱 넓혔다. 또한 기재부의 권한이 일부 축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위원회를 통해 기본계획이 정해지고, 이에 따라 각 부처의 실행계획이 결정되도록 함으로써 기재부가 서비스산업으로 규정될 수 있는 모든 사안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비스법은 첫째 공공적 사회정책에 해당하는 의료와 교육을 성장 ‘산업’으로 규정하고, 발전을 명분으로 의료영리화 정책추진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둘째 영리병원 도입과 같이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와 기획재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이 대립할 경우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경제적 논리에 따라 급속히 영리추구를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영리화를 위한 법으로 본다.

 

의료영리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행보에는 거리낌이 없다. 작년 9월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한 데 이어서, 지난 3일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 유치 지원에 관한 법(이하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을 통과 시켰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국내 병원의 외국 진출과 외국인 환자 유치에 대해 정부가 금융, 세제 지원을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외 영리의료법인의 국내 우회투자금지조항을 신설하고, 금융세제 혜택 역시 해외 진출 의료기관에 한해서 지원하는 단서조항을 달았다고 하나, 외국에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비영리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의료의 원칙을 흔드는 것이며, 결국 의료 행위를 통한 영리 발생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영리병원이란, 한마디로 투자와 배당이 가능한 병원을 말한다. 외부의 민간자본이 병원에 유입될 수 있고, 결산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이윤을 배당할 수 있어, 원칙적으로 의사 혹은 비영리법인만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명시한 의료법과 상충된다. 의료법에서 비영리법인은 수익사업으로 돈을 벌어도 배당을 해선 안 되고, 인건비·시설투자·연구비 등 병원의 설립 목적에 맞도록 써야 한다.

 

의료 영역은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정보가 비대칭적이어서 얼마든지 환자의 판단을 유도할 수 있다. 2005년 의사의 손 대신 로봇이 환자의 뱃속에 들어가 수술 부위를 절제·봉합하는 등의 시술을 하는 ‘다빈치 로봇 수술’이 도입되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처음 도입한 뒤 30억 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를 대형 병원들이 앞 다퉈 사들였고,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다빈치 로봇 수술 기기를 갖춘 나라가 됐다. 병원은 고가 기기의 원가를 회수하기 위해 일반 수술보다 6~10배나 비싼 로봇 수술로 환자들을 유인했다. 2011년 6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로봇 수술이 장기 생존율이나 재발률, 합병증 발생률 등에서 일반 수술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병원은 이미 막대한 수익을 올린 뒤였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사람들이 더 건강해질까? 타일러 코언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거대한 침체’에서 “수많은 연구는 보건의료 분야에 들인 비용이 실제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표시한다”고 했다. 미국인의 1인당 보건의료비는 6,931달러로 일본인(2,580달러)의 3배, 칠레인(772달러)의 10배에 이르지만,  미국인의 수명은 77.9살로 일본인(82.6살)이나 칠레인(78.6살)보다 짧다. 미국은 보건의료에 더 많은 돈을 썼지만 국민을 더 건강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환자들은 병원에 가서 써야 할 돈이 크게 늘었는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니까 민간의료보험에 더 의존하게 된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9년 65%에서 2010년 63.6%, 2011년 63%, 2012년 62.5%, 2013년 62%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이는 OECD 국가의 평균 보장률(80%)에 한참 밑도는 수치다. 반면 의료비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중 1위를 달린다. 의료비가 증가하면 건강보험이 운영되는데 심각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것이고,  공공의료 보장성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질 것이다. 의료보장률이 50% 미만으로 떨어지면 당연지정제가 지켜져도 건강보험이 유명무실해진다.

 

이 시점에서 주목해야할 것이 국회에 기습 상정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실손의료보험이 보장하는 비급여 의료비가 적정한지 전문성을 갖춘 심사기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으로, 환자가 보험사에 실손보험을 직접 청구하지 않고 병원이 보험사에 청구하는 제도를 골자로 하여 일명 실손보험 비급여 심사법안이라고 한다. 이 법안이 도입되면 환자의 개인질병정보가 민간의료보험사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며, 민간보험-병원 간 직불 시스템이 도입되는데, 이는 민간보험사가 보험금 지급과 계약을 무기로 병원과 의료진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관리의료 모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환자들은 특정 진료를 받기 위해 특정 보험사를 가입해야만 하는 사태가 올 수 있으며, 이는 영리병원 추진을 시점으로 진행된 의료영리화의 최종 목적지이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비싼 대학 등록금과 수억원의 개원 비용을 스스로 감당한다. 공공 지원은 거의 없다. 이 과정을 거쳐 의사 집단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자영업자’로 규정하게 된다.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급여진료만으로 병·의원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급여진료, 선택진료가 발달하게 되고, 병원은 장례식장·주차시설 등 ‘비의료사업’으로 수익을 올린다. 법적으로는 모두 비영리기관인 병의원들이 사실은 대부분 영리기관으로 운영되어 영리추구가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제도와 운영의 불일치는 한국의 의료의 현실이다. 이것이 정부가 의료영리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이유이며, 국민들이 이미 의료계가 영리추구를 하지 않느냐고 비난하는 이유이다. 또한 동시에 더 이상의 의료영리화가 추구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묻는다. 누구를 위한 의료영리화인가? 치과계는 수년 동안 피라미드형 불법네트워크치과와 불법 사무장치과와의 전쟁을 겪으며, 의료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때 불어 닥칠 수 있는 폐해를 몸소 겪어왔다. 환자가 “치료의 대상”이 아닌 “수익을 남겨야 하는 상품”이 되면 비의료인의 불법진료,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저가 재료 사용, 환자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위험한 시술 등으로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게 된다. 무더기로 C형간염 집단발병을 초래한 다나의원 사태의 교훈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결론은 하나,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료법은 제 1조에서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건강할 권리는 민주주의 사회가 국민에게 기본적으로 보장해야할 최우선 가치이다. 의료영리화로 인하여 훼손돼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기자 ys@sda.or.kr
본 기사의 저작권은 치과신문에 있으니, 무단복제 혹은 도용을 금합니다

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치과의사회관 2층 / 등록번호 : 서울아53061 / 등록(발행)일자 : 2020년 5월 20일 발행인 : 강현구 / 편집인 : 최성호 / 발행처 :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 대표번호 : 02-498-9142 /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