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고 너는 좋은 성격의 사람일까?

2019.09.09 13:52:04 2019 FW

글 _이지현 임상심리전문가(국립정신건강센터 연구기획과)

 

필자는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대한민국 미혼여성이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인생 선배를 자처하는 지인들로부터 결혼에 대해 ‘진심어린’ 가르침을 받는다. 대게 그들은 “내가 살아보니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무조건 성격 좋은 사람 만나. 그게 최고야”, “남편은 그냥 같은 집을 공유하는 룸메이트야. 누가 룸메이트한테 외모, 집안, 재력 이런 거 따지디? 뭐니 뭐니 해도 성격이 좋아야지” 이런 조언을 한다.

 

표준어 국어사전에 따르면 성격(性格)은 환경에 대하여

특정한 행동 형태를 나타내고,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킨

개인의 독특한 심리적 체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결혼이란 연애를 부정하는 집안 간의 결합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서구화된 결혼은 당사자 간의 사랑을 어떻게 조화롭게 꾸려나가는가에 주목한다. 남녀의 사랑이 결혼의 조건이 되다보니 가문이나 재산보다는 당사자의 성격과 인격이 중시되고 있다. 얼핏 이러한 변화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들리는 ‘좋은 성격’이라는 애매한 기준이 현재 배우자 선택 시 고려사항에 우선순위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우리는 뭔가 함정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비단 결혼 생활뿐만이 아니다. 자기소개서나 면접 시 어김없이 등장하는 “자기 성격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시오”라는 문항을 떠올려보자. 대부분의 회사와 학교에서 거리낌 없이 지원자들에게 던지는 문항이다. 숙련된 지원자들은 이 질문에 별다른 의심 없이 답을 한다. 자신의 성격상 나쁜 점을 최대한 축소하고 좋은 점을 강조하는 노련한 스킬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면접관들은 당연한 듯 특정한 기준에 따라 지원자들의 성격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어떨 때는 마치 성격에도 정답이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성격에 대한 합의된 기준을 갖고 타인을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들은 점점 더 발전해서 사회적으로 ‘장점’의 특징을 많이 보여주는 성격은 ‘좋은 성격’으로, ‘단점’의 특징을 많이 보여주는 성격은 ‘나쁜 성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성격에 대한 합의가 엄밀히 말하면 우리 사회의 주류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결정한 기준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성격의 주된 특징들만이 성격의 ‘장점’이란 카테고리에 포함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류를 벗어나는 즉, 이에 반하는 성격 특성은 ‘단점’이 되고, 그러다 보니 자기 성격의 어떤 부분이 사회적으로 ‘단점’이라고 여겨지는 순간 이 부분을 틀린 것으로 여겨, 억누르며 숨기거나 자기 모습이 아닌 다른 창조된 누군가를 흉내 내며 가면을 쓰기도 한다.

 

어쨌든 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이 어떤 성격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성격을 규정하고 유형을 분류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표준어 국어사전에 따르면 성격(性格)은 환경에 대하여 특정한 행동 형태를 나타내고,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킨 개인의 독특한 심리적 체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다시 풀어서 설명하면 성격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개인의 독특한 행동 이면에 존재하는 개인의 고유한 본질이다. 이런 개념에 따라 성격의 개수를 굳이 따져보자면 전 세계 77억 인구 만큼일 테고, 실제 성격심리자의 선구자인 올포트도 성격의 개수를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성격은 심리학에서 항상 논쟁의 주제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로부터 시작해서 카를 융, 알프레드 아들러, 고든 올포트 등 다양한 이론과 가설이 등장했기에 성격과 관련한 논쟁의 역사는 곧 심리학의 역사라고 볼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1981년 골드버그(Goldberg)는 여러 연구를 검토한 결과, 공통된 다섯 가지 성격요인이 있음을 확인하였고, 기나긴 토론과 연구 끝에 현대 성격 이론으로 매우 큰 지지를 받고 있는 ‘빅 파이브(Big Five, 성격의 5요인)’ 이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모형은 사람의 성격을 △개방성 △성실성 △친화성 △신경성 △외향성의 5가지 요소로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맥크래와 코스타는 NEO-PI 검사를 개발하였고, 1992년에 NEO-PI-R(NEO-Personality Inventory Revised)을 개발하여 성격의 다섯 가지 요인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본 검사는 한국어판으로도 개발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는 실시해볼 것을 추천한다. 한국가디언스)

 

 

 

위에 언급된 성격의 다섯 가지 요인을 살펴보면서 아마 눈치 빠른 독자들은 벌써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성격도 무조건적으로 덮어 놓고 좋은 성격, 나쁜 성격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각각의 성격은 그 나름의 단점과 장점이 있을 뿐이다. 심리학자 간바 와타루는 그의 책 〈누구에게나 단점은 있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스스로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성적인 성격은 결코 나쁜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참을성이나 지구력이 강하고 창조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심한 사람은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장점을 가졌으며, 자신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만큼 겸손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결국 단점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을 지었다.

 

이런 점에서 소위 ‘좋은 성격’과 ‘나쁜 성격’이란 것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좋은 성격, 나쁜 성격, 같은 성격 그리고 다른 성격을 규정지어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회 분위기는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헛된 장밋빛 기대를 심어주고 또 그만큼의 실망감을 안겨준다. 성격이 좋고 자신과 잘 맞는다고 생각되어 결혼했지만, 막상 살아보면 의외로 다른 점들이 발견되어 당황하고 힘들어 하는 경우들이 아주 많다.

 

그리고 문제 삼지 않던 상대의 특성들을 잘못인 것처럼 지적하고 바꾸려한다.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고 원망하지만, 실제 인간관계는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독특성과 일관성을 지닌 성격’들의 만남이고 내가 어떤 색깔을 갖고 있든 단점과 장점에 대한 시각을 달리 할 수 있는 유연성이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나, 그리고 너는 좋은 성격일까?”를 묻기 이전에 자신의 성격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타인과의 성격 차이를 ‘다름’ 자체로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는 성격적 유연성을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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