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사, 치과의사들 신대륙 베트남으로의 탐험을 시작하다!

2019.09.09 14:12:33 2019 FW

글 / 사진 _ 이승환 편집위원

 

비행기 기내식은 결코 고급스럽진 않지만, 여행이라는 특별한 의미 때문인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신나는 하나의 의식인 듯하다. 그런데 답답한 곳에서 먹는 탓인지, 기내에서는 식사 후 환자가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가끔 자투리 뉴스를 통해 기내에서의 환자발생 소식을 접하게 된다. 승객 중 섞여있던 의사들의 활약으로 위기를 넘기는 일화로 기억되는데, 그런 일이 필자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화장실 앞에 서있던 한 승객이 선 채로 기절해 내 쪽으로 쓰러졌다. 환자 눈을 보니 이미 흰자위가 드러나 있었고, 몸은 축 늘어진 상태.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겨를도 없이 바로 비행기 복도에 환자를 뉘이고 숨을 쉬는지, 맥박이 있는지, 의식이 있는지 확인했다. 계속해서 기도를 확보하고 웃옷 단추와 허리띠를 풀어주고, 다리를 높이고... 필자도 모르게 옛날 옛적 치과대학 본과 4학년 시절 국가고시를 위해 열심히 외웠던 응급상황 처치매뉴얼 대로 하고 있었다. 다행히 환자가 오래지 않아 의식을 차리고, 상황이 정리될 즈음이었나, 승무원이 말을 건다.

 

“너무 감사합니다. 의사이시죠?”

 

어.... 난 치과의사인데.... 순간 답을 어찌해야 하나 1초간 고민. 치과의사라고 하기엔 너무 적극적으로 나선 것 같고, 의사라고 하기엔 외과적 기록이라도 써달라고 할 것 같았다. 물론 결과가 좋았기에 즐거운 고민이었다. 허나 나중에 알게 된 건, 그 비행기에는 십수명의 한국인 의사가 타고 있었다는 사실. 다음부터는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고개는 한번 들고 주변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했다는 뿌듯함을 마음에 담고 호치민 국제공항에 발을 내렸다.

 

 

다음 장면은 호치민 의과대학의 한 강의실. 베트남 현지인이 아닌 수십명의 외국인들이 열심히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의사로서 베트남으로 진출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기본적인 메디컬 영어 테스트를 치르고 있는 외국의사들이다. 강의실에는 낯익은 한국인도 많이 보인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선 치과의사 위주의 베트남 진출이 붐을 일었으나, 최근에는 일반의(전문의 포함)들의 진출 러시가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현지 영어자격시험은 한국 의사들에게 그리 어려운 관문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베트남에서는 대한민국 의사자격증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소정의 영어시험만 통과하면 일련의 절차를 거쳐 베트남 전역에서 진료 및 의료영업활동을 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격이 주어진다.

 

 

그리고 최근 베트남이 폭발적인 경제발전 및 인구증가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아직은 현지 의료상황이 열악한 지역이 많아, 외국의 선진의술에 대한 수요가 큰 상태다. 특히 세계적으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사들은 베트남 현지에서도 환영의 대상이다. 이런 여러 가지 유리한 상황들이 한국의사를 베트남으로 이끄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필자가 동행했던 영어자격시험 한국의사 응시자는 모두 40명. 그 중 25명은 일반의, 15명은 치과의사였다. 1박 2일간 함께하며 베트남 의료 진출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발 앞서 준비하는 사람은 먼저 알게 된 노하우를, 뒤따라오는 사람은 각자의 포부를 공유하며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함께 나누는 자리도 가졌다.

 

 

성형외과, 피부과 전문의 뿐만 아니라 가정의학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등 전공분야도 다양했고, 진출의 목적이나 동기도 다양했다. 예전의 ‘단순히 돈을 벌 목적의 보따리 장사’를 벗어나 △가족전체의 이민과 자녀교육을 위하여 △가족사업 일환으로의 의료투자를 위하여(한국에서는 불가) △의사 동료들끼리의 해외 의료사업 진출을 위하여 등 다양했다. 물론 그 기저에는 한국의 의료공급 포화에 따른 경쟁심화와 그에 따라 의사들에게 점점 불리해지는 의료마켓의 변화가 기본 바탕으로 깔려 있다. 그러나 더 궁극적으로는 국내 의사들도 이제는 국내의료법으로 보호받던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대에 맞게 국제의료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라이센싱이 가능하다는 것 이외에 현실적으로 베트남 의료진출의 성공가능성은 어떨까? 그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들을 짚어보자. 베트남의 경제굴기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현재진행형이다. 경제 발전속도가 두 자릿수, 인구 약 1억명에다 전체인구의 평균연령이 29세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근면 성실한 저임금의 노동자들도 풍부하다. 외국자본과 공장이 들어와 사업하기에 최적의 조건들을 갖춰, 진입하는 외국인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를 위시한 한국기업들의 막대한 투자 및 진출로 경제부분에서 베트남은 한국의존도가 매우 높다(국가 총 세금의 30%를 한국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상주 한인은 호치민의 경우 15만명을 육박하고, 하노이도 10만명을 넘어섰다.

 

 

이미 진출한 한국기업들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국내외 한국기업들이 베트남 진출을 준비 및 실행하고 있다. 중국기반의 생산시설들은 대부분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추세이고, 국내의 고임금 친노조 정책에 고통 받던 많은 기업들도 거점을 베트남으로 옮기고 있는 추세다. 기업인들과 그 가족들의 베트남 유입은 향후 더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지에 진출하려는 한국의사들이 접근할 수 있는 의료시장의 크기도 점점 커지고 있는 셈이다.

 

외국의 고급인력과 자금이 유입되면 어김없이 상승하는 시장이 있다. 바로 부동산이다. 베트남 대도시의 핵심지역 부동산들이 빠른 속도로 달아오르고 있다. 혹자들은 유독 한국사람들이 현지 부동산으로 몰려 서로 사고 팔며 가격을 올린다고 하지만, 한국사람이 안하면 중국사람이 한다는 인식도 있다. 20년 전 중국의 급성장시 똑같은 학습효과가 있었다. 누가 사든, 누가 올리든 그것도 시장이고, 쉽게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주로 저개발국가에서의 사업은 잘되기는 어려우나, 종국에는 부동산으로 돈을 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베트남은 국제학교도 많고 수준도 훌륭해 자녀들 교육에 상당한 강점이 있다. 비용은 만만치 않지만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할 것은 아니다. 경제 활황으로 현재 보통예금 이율만 7%를 넘고 있고, 한국의 7~80년대에 해당하는 베트남 독점적 국영기업체들로의 투자도 열려있다. 그리고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아세안연합 5개국 중 하나인 베트남에서 진료경력 5년 이상이면 다른 아세안연합 국가 내에서도 합법적인 의료진출이 가능하도록 협약이 맺어져 있다.

 

위와 같이 다양한 장점이 존재하지만, 이면에는 유의해야 할 점도 도처에 깔려있다. 베트남은 공산국가이다 보니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대부분의 인허가 과정이 공무원들 손에 달려있지만 이들이 그리 투명해 보이진 않는다. 사업이나 진출에 인맥과 뒷돈이 당연시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개인의 능력으로 헤쳐 나가기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자본의 진입은 쉽게 허용하나 유출은 쉽게 허용하지 않는 것이 또한 공산주의국가의 특징이다. 특히 개인의 사업수익이나 부동산 투자수익을 국외로 반출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현지 브로커들에 따르면 다 방법이 있다고는 하나, 고생한 결실이 마지막에 낭패를 볼 가능성도 있는 만큼 확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실제로 현지 KOTRA 직원의 말에 따르면 많은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아파트 등 부동산을 구매했지만, 아직 단 한 명도 등기권리를 취득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현지 브로커에게 양수, 양도, 임대, 세금, 계약 등 모든 것을 의존해야 하는데, 이 또한 커다란 리스크임에 틀림없다.

 

 

베트남에는 임대차 보호법이 없다. 아파트를 사서 임대를 준 후, 임차인과 문제가 생겼을 때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소송을 한다고 하지만, 관련법조차 없는 공산국가에서의 소송이란, 승보단 패에 훨씬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최근에는 외국에서 베트남은행의 고금리를 노리고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부동산 투자용 자금(즉, 투자하지 않고 있는 휴면 외국자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웠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외국인 유휴자본 이자율 0%다. 공산국가이기에 가능한 정책이지만, 외국의 불로소득 먹튀자본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적절한 것 같다.

 

언어도 큰 장벽이다. 현지 베트남어는 한국인이 배우기엔 세계 최고로 어려운 언어임을 확신한다. 베트남어는 단어 하나조차 제대로 발음하기 어려운 언어다. 필자도 올 초만 해도 베트남어 공부가 올해의 목표였는데, 베트남을 세 번 연이어 다녀온 후 거의 포기상태가 되어버렸다. 언어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현지 중간업자를 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영어는 관광객으로 갔을 때나 사용 가능한 언어임을 기억해야 한다. 계약, 인허가, 공사, 모든 과정에 공무원, 베트남어, 이 두 가지가 장벽이 되어 현지 브로커와 비용으로 메아리가 되어 다가옴을 꼭 기억하고 진출에 임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현장에 가서 체험으로 느낀 장벽들을 소개하면, 흔히 상상하는 것 보단 베트남 현지의 삶은 훨씬 더 낙후하다는 점이다. 교통체계는 있되 목숨을 걸어야 길을 건널 수 있는 교통문화수준, 오토바이 -> 차 -> 사람 순으로 거리의 질서가 마련되어 있고, 교통지옥이 따로 없다.

 

보도블록은 죄다 들떠 있고, 수많은 도심빈민의 삶은 아직 먼 수준이다. 도심번화가도 건물내부, 외부 할 것 없이 불결하고 냄새도 심하다.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좋아라 즐기던 길거리음식이 호치민에서는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한국인들이 흔히 가는 다낭이나 푸꾸옥을 생각하면 안된다. 거긴 관광지이자 파라다이스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곳은 대도시, 현지인들의 세계다. 깜깜하고 구석진 도심사거리 코너에서 옹기종기 목욕탕의자에 모여 앉아 별것 없이 허접한 길거리 음식을 나누고 있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차라리 현실이다.

 

날씨는 무덥고 비도 많이 온다. 게다가, 그리도 순박하고 친절하다던 베트남 사람들... 다 어디 갔는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미 자본의 그늘에서 각자 도생하는 팍팍한 삶에 적응된 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우대? 박항서 프리미엄? 순진한 생각이다. 정신줄 놓는 순간 홀딱 당하게 생겼다. 실제로도 그렇다고 한다. 현지 한국인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베트남 사람들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늘 긴장하고 지내야 한다고.

 

 

이러한 여러 난관에도 베트남, 특히 호치민에 진출하려는 큰 꿈을 품은 이들에게 몇 가지 현장 소식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호치민 도심 곳곳에서는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우리처럼 상판을 깔고 지하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대로를 다 막아버리고 한다. 도심 전체가 공사판 분위기다. 그 공사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그래도 덕분에 1호선과 연관된 부동산 호재가 생겨나고 투자처가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호치민 시내는 여러 군(District)으로 나뉜다. 그 중 1군이 중심이고, 이미 상당 부분 개발돼 매우 복잡하다. 유동인구도 엄청나서 의료사업을 하기엔 이곳이 가장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한국인과 현지인 모두를 대상으로 사업할 수 있는 지역이다.

 

 

한국인은 7군에 모여 거주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역적으로 국한된 한인타운 같은 분위기에 1군과도 거리가 있어서 7군은 제한된 가능성을 보이는 지역이다. 3, 4, 5, 6군은 주로 현지인들의 영역이다. 특히 호치민 2군이 흥미롭다. 서울로 치면 한남동, 평창동과 청담동을 합해놓은 분위기다. 물론 비싸다. 한국 돈으로 20~30억씩 하는 저택들도 많다. 대부분이 공무원과 군인들 소유라고 한다. 필자도 호치민 2군지역이라면 지낼만 하겠다 싶었지만 평민들이 진입하기엔 너무 장벽이 높은 지역이다. 그 1군과 2군의 연접지역을 공략하는 것이 부동산 투자의 핵심으로 보이고, 사업은 당연히 도심 다운타운에서 해야 맞다.

 

현지 교통수단으로는, 택시 GRAB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동남아에서 우버를 밀어내고 공유호출차량의 대명사가 된 GRAB이 안전성, 비용, 청결도 등 가장 편리하다. 스마트폰에 GRAB 앱을 깔면 공항 도착 시부터 이용 가능하다). 어차피 대중교통수단은 없다고 봐야 하고, 차나 오토바이 운전은 사전 포기하는 것이 좋다. 현지음식은 설명이 필요 없으리만큼 우리에게 잘 맞는다. 음식은 가격과 품질 모두 천국이다.

 

끝으로, 베트남의료 진출가능 형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현지의 기존 한국인 운영 병원으로 취업(파트너 또는 월급의사)
2. 동료와의 동업으로 단독개원(개인 단독개업은 비추천)
3. 다른 진료과목 의사들과 종합진료소 개원
4. 현지 국제진료소 취업
5. 현지투자자, 한국인 매니저와의 협업
6. 현지 기존 병원의 양수
7. 상가를 분양 받고 영리병원으로 개설운영

 

베트남에서는 병원사업도 성장시켜서 증시에 상장을 시킬 수 있다. 이것을 목적으로 과도한 사업외형확장과 무리한 시도를 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필자도 유사한 예의 사업자로부터 한 병원의 치과파트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취업조건과 현지법 등 상황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임하여, 후에 외국에서 큰 낭패를 겪지 않도록 면밀한 고려가 필요하다. 베트남 의료사업진출에는 정말 많은 고민과 넘어야 할 산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자랑스러운 의술을 글로벌하게 뻗쳐나가려는 우리 의료인들을 응원한다.

 

우리 의료면허를 인정해주는 유일국가 베트남. 그것만으로도 진출을 시도해 볼만 한 이유는 충분하다. 조만간 호치민행 비행기엔 쓰러진 환자들을 응급처치 해줄 더 많은 한국의사들이 탑승해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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