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재들의 몽골 고비사막 분투기-천혜의 자연이 빛나는 몽골, 뜨거운 사막 속으로!

2020.03.09 14:51:45 2020SS

이승환 편집위원

 

처음에는 꼭대기가 빤히 보이는 높이 300미터짜리 사막 모래산이 동네 언덕쯤으로 만만해 보였다. 허나 가까이 서서 눈앞을 막아선, 말 그대로 ‘모래의 산’을 올라타려니 주저할 만큼 급경사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일행 네 명 중 두 명은 모래산의 시작점에서 이미 등반을 포기하고 모래밭 놀이를 하기로 목표를 전환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물통을 하나씩 뒷주머니에 차고 한 걸음씩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세 걸음 오르면 두 걸음 반을 되미끄러지기를 반복 또 반복, 숨은 이미 헉헉대는데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겨우 십여 미터…. 더 큰 문제는 모래산의 경사도가 점점 심해져 기어코 눈앞에 거대한 모래벽이 나타났다는 것! 미끄러지지 않으려 기를 쓰고 아등바등하는 중이던 내 옆을 지나 하산하던 외국인 아가씨가 쓱~ 웃으며 한 마디 건넨다. “배를 모래벽에 붙이고 납작하게 네 발로 기어….”

 

선행자의 가르침은 역시 옳다. 그리 하니 조금 수월하다. 확실히 덜 미끄러진다. 그러나 여전히 악전고투. 스무 번쯤 손과 발을 모래에 찍어 고정하듯 기어오른 다음 몸을 뒤집어 모래벽에 등을 기대 헉헉대며 쉰다. 그리고 그 동작을 끝도 없이 반복한다. 그 사이 같이 모래벽을 오르던 나머지 일행 한 명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 하나 사는 것도 힘드니, 바로 옆에 있는 동행을 못 챙기는 내가 참으로 한심해졌다.


이제 나도 포기하고 싶다. 손톱 밑에 모래가 파고들어 피가 나기 시작했고, 다리에 힘이 조금만 더 빠져도 아래로 하염없이 굴러 떨어질 것 같다.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보다. 이깟 모래산이 뭐라고 목숨을 거는지 원. 위를 쳐다보니 아직 100미터는 족히 남아있다. ‘까마득하니 그만 포기하고 내려가자…’고 마음을 먹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위를 쳐다보는데, 노인 두 분이 모래벽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몽골의 노부부였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힘내라고 응원을 하면서 독려 중이었다. 어라. 그걸 보니 젊은 내가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몸을 뒤집어 기어오르기 시작…. 할머니를 추월하고 조금 더 오르는데 이젠 정말 죽겠다 싶었다.

 

아~ 그런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다시 위를 보니, 이번엔 더 희한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모래벽을 올라온 것으로 보이는 몽골인 아기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그 위엔 아기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역시나 가족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젠장. 난 지금 뭐하는 건가. 창피함에 오기가 더해져 없던 힘이 다시 불끈 솟았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오르니 맙소사…. 그 곳엔 이미 몽골 아이들의 놀이터가 펼쳐져 있다.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신나게 뛰어 노는 몽골 아이들을 보며 ‘아, 이게 바로 천하무적 몽골가족의 나들이 클라스구나…’하는 생각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서울 아재 4명 중 유일하게 완등에 성공한 나이기에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마주한 고비사막 모래산 꼭대기에서 본 석양의 아름다움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 300미터. 짧지만 고된 등반의 선물로 받은 내 생애 최고의 석양이었다. 그리고 인생의 축약판을 미리 경험한 듯한 강렬한 깨달음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을 듯하다. 포기하려던 나를 정상까지 이끌어준 거나 다름없는 몽골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멋지게 남기고 일행을 찾으러 내려간다. 하산은 정말이지 너무도 쉽고 빨랐다.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아등바등 생활의 절벽에 붙어 있으려면 팔 다리에 힘을 꽉 주고 간신히 버텨야만 하는데, 한 번 내려가기 시작하면 허망할 정도로 금세 바닥까지 미끄러져 가는 것.


그나저나 오늘은 물이 나오는 게르에서 묵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열악한 현지상황이 다시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 아재들의 별난 사막투어

아재들끼리 몽골 여행을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알고 보니 국내에 몽골여행에 관한 이상한 트렌드가 있어 그러는 거란다. 참 이상하다. 난 방콕도 좋아하고, 타이베이도 참 좋아하는데, 사람들은 남자들끼리 아시아 국가로 여행을 간다하면 왜 그리들 이상하게들 보는 건지, 여행 가서 수상한 투어를 하는 아재들이 아직도 그리 많은 건지…. 아무튼 혹시 그런 아재들이 아직 있다면, 외국 나가서는 가족들 걱정할 일들은 제발 좀 하지 맙시다.


여행 좀 다녀봤다 하는 우리 4명의 아재들은 그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오지를 모험하는 것에 대한 동경, 바로 거기에 공통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우리 아재팀 네 명을 싣고 일주일 내내 몽골 고비사막을 누비고 돌아다닌 차는 유럽의 멋진 오프로드 전용 차량도 아니고 튼튼한 SUV도 아닌 우리의 자랑스러운 현대차 스타렉스였다. 스타렉스는 보통 시내에서 짐을 옮기는 용도로 많이들 쓴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오프로드를 씽씽 잘 달릴 줄이야…. 현대차 봉고 하나도 참 잘 만든다.


어쨌든 사막질주의 첫날. 태어나 처음으로 일곱 시간 고난의 오프로드 달리기를 견뎌내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해 질 무렵 여행자를 위한 게르들이 모여 있는 게르촌에 도착했다. 10채 정도씩 무리를 지어 사막 한가운데 모여 있는 게르촌에는 참으로 있는 게 없다. 인터넷이 안 되는 건 기본. 전기도 없고, 난방도 없다. 하지만 우릴 정말로 절망하게 만든 건… 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루 종일 맞은 모래바람과 땀으로 찌든 온몸.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이드가 준비한 생수 몇 통이 전부. 그걸로 밥 짓고, 세수하고, 이 닦고, 심지어 안주용 라면까지 끓여야 했다. 물을 얻을 수 있는 마을이 나올 때까지는 그렇게 버텨야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보이스카웃 시절 이후 처음으로 랜턴을 켜고 밤을 지샜다. 상황은 열악했지만 가스버너로 사막에서 끓여먹는 야외 생존형 라면은, 뭐 상상이 저절로 되듯 천상의 맛이었다. 라면 국물에 몽골산 보드카를 연거푸 돌리며 거친 하루의 피로를 아재 수다로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 역시나 물이 없다. 어젯밤에 라면 끓였던 물이 마지막이었단다. ‘아 이런, 이라도 닦아야 할 텐데….’ 다행히 가이드가 자기 몫으로 숨겨둔 마지막 생수 한 통을 신의 선물처럼 우리에게 던져줬다. 육지의 붕어 떼들처럼 물 몇 방울에 허겁지겁 아침 목마름을 해갈했다. 물 한 모금으로 이를 닦은 다음, 다시 한 모금으로 세수를 하는 생존형 기술을 저절로 습득하게 됐다. 인간은 이렇게도 적응하면서 살아가게 되는구나 싶다.


이틀째 사막달리기가 시작됐다. 구름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차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경쟁하듯 달렸다. 앞차를 바로 뒤에서 따라갈 경우 앞차가 일으킨 흙먼지를 고스란히 들이마시며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앞서 달리는 게 유리하다.

 

우리 차 드라이버의 조상은 과거 몽골제국 시절에 그 용맹했다던 기마병이었음에 틀림없다. 앞에서 구름먼지를 내는 모든 차량들을 추월했고, 뒤에서 따라붙는 어떤 차에게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때 그의 눈빛은 투지에 이글거렸고, 우리가 탄 사막의 스타렉스는 말 200마리가 끄는 몽골 전투마차가 되었다. 와… 덕분에 우리의 엉덩이와 허리는 끝없이 허공과 카시트에 절구질을 해댔고, 타이어는 앞, 뒤, 옆 하나씩 차례로 펑크나는 희생이 따랐다. 그렇게 달리길 또 네 시간.


드디어 로컬 식당 도착, 점심시간이다. 어제 첫날은 첫날이라 몽골의 대표음식인 양고기였는데. 오늘은 아… 오늘도 양고기다. 식당 메뉴판에 다양한 메뉴들이 있었으나 자세히 보면 모두 다 양이다. 양 수프, 양 볶음, 양 구이, 양이 끝도 없다. 설마하며 가이드에게 물어봤다. “내일도 혹시 양입니까?” 우리 가이드가 한마디로 정리했다. “사막에서는 먹을 게 양고기밖에 없어요!” 허걱. 아직 4일씩이나 더 남았는데…. 나는 가져온 라면이 몇 개 남았는지 세어봤다. 사람이 네 명인데. 이미 8개밖에 안 남았다. 가이드랑 기사님도 줘야 하는데, 음… 어쩔 수 있나. 양고기랑 더 친해지기로 했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상점이 있는 마을에서 양고기와 물 그리고 맥주를 잔뜩 차에 채우고 든든한 마음으로 다시 오후의 사막 레이싱을 시작했다. 차 안에 뭐라도 몸을 지탱해 꽉 잡을 것들을 알아서들 각자 찾느라 정신이 없다. 거칠게 튕기는 사막 레이싱에서도 아직은 허리가 버텨주는 걸 보니 우린 젊은 아재들이다. 아재소년단쯤으로 하기엔 오바일까?


매일 새로 도착하는 게르촌마다 우리 또래가 있을까 살펴봤는데 모두 2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들뿐이었다. 그리고 2019년 여름, 몽골의 사막 게르에는 유독 한국 청년들이 많았다. 드문드문 프랑스, 미국, 일본 사람들도 보이긴 했지만 나는 여기가 몽골 사막인지, 아니면 대성리 엠티촌인지 모르겠다. 우리 가이드 왈, 우리 아재팀이 최고령팀이란다. 실제로 이런 험한 사막 투어를 일주일씩이나 오는 ‘나이든 팀’은 거의 없단다. 아, 역시…. 이런 투어는 20대 청년들의 체험 투어가 맞겠다 싶다. 가이드도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어쩌다 이런 투어를 오게 됐냐고…. 그런데 우린 오히려 그게 신나고 좋았다. 고되고 힘들긴 해도 아직 재미로 생각하며 버텨낼 힘들이 있는 아재들~!!

 


희소식이 들려왔다. 오늘 묵을 게르에는 샤워 시설이 있단다! 사막생활 3일 만에 거지꼴이 된 네 명의 아재들. 며칠 만의 샤워인지…. 그런데 기대와 달리 샤워 시설이라는 게 고작 사막초원 한가운데 덩그러니 세워진 간이 칸막이 시설이었다. 그래도 우린 감격의 물샤워로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게르 주인이 길어온 물을 머리 위에서 쫄쫄 부어주는 냉수 샤워…. 한 방울 한 방울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으려 애쓰며, 나는 황제처럼 물을 써대던 서울에서의 낭비적 생활습관을 다시 한번 반성했다.

 

 

참고로, 사막의 게르 화장실 사정은 또 다른 문제였다. 너무도 좁은 간이막 화장실은 고작 땅을 파 구멍을 만들어 놓은 형태일 뿐이었다. 공간은 너무 좁은데 구멍은 너무 큰…. 자칫 힘주다 한 발짝이라도 구멍으로 미끄러지는 순간,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예견됐다. 결국 고민하다가, 큰일은 화장실 안으로 후진해 들어가 보고, 뒤처리는 쪼그려 앉은 그 상태의 엉거주춤 오리걸음으로 전진하여 화장실을 간신히 빠져나온 뒤 밖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 아뿔싸. 그렇게 은밀한 뒤처리 작업 중 저쪽에서 다음 이용할 사람의 발소리가 들린다. 어쩔 수 없다. 소리치는 수밖에. “여기 사람 있어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이제 모든 사막투어를 마치고 울란바토르 시내로 들어가는 길. 문명의 세계로 재진입하러 가는 길이라고 마음이 다 설렜다. 몽골 인구 겨우 300만 명에 광활하고 풍부한 자연자원과 관광자원. 풍요로운 삶이 예상될 법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국민들은 대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쯤에서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저절로 궁금해졌다. 현지 가이드와 몽골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현지상황은 생각보다 비참했다.


최근 5년 사이 캐나다, 중국 등과의 합작광산개발로 몽골국토의 사막화가 더 급속히 진행되고, 물 저장량이 빠

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부패한 정부가 모든 국부를 틀어쥐고 자원을 외국기업에 팔아넘겨 특정 업체에 주는 특혜와 비리가 만연화돼 있단다. 그리하여 경제적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은 점점 더 빈곤해지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거기에서 부패한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그들만의 호사스러운 왕국을 만들어 누리고 있다고 한다. 광산직 관련자들은 억대 연봉, 이에 반해 일반 국민들은 끼니도 다 못 채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그 와중에 정부는 대책 없이 국토를 파헤치고 있고, 오히려 지역 주민들만 지나친 자원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국가 소유의 자원이 국민을 위해 쓰이지 않고 권력자들의 주머니만 채우고 있는 상황이란다. 이미 물가는 거의 한국 수준, 공산품은 전량수입이므로 지방으로 갈수록 생활물가가 더 비싸진다고…. 음료수 800원, 작은 생수 한 통 400원, 간단한 식사도 5,000원. 이미 지역민들의 소득 수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물가상황이라고 한다.

 

몽골은 하절기 외엔 대부분 기온이 영하 25~40도이므로 생존을 위해서는 난방이 절대적 요소인데, 이미 너무 비싸진 나무땔감 대신 싸고 풍부한 석탄을 많이 때면서 대기질은 사상 최악이 됐다. 미세먼지 수준은 세계 최악을 찍은 지 오래다. 현재는 겨울철엔 밖에 못 나갈 정도로 대기가 오염되어, 아이들 학교 보내는 것 말고는 외출을 거의 못 한다고 한다.

 

이렇게 가진 것이 많은 나라인데 고작 300만밖에 안 되는 국민을 굶기는 것도 재주다. 한때 이러한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대항한 국민적 저항도 있었으나 몇 년 전,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는 현 정부의 잔인한 탄압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고, 반정부 인사를 납치, 암살하는 등의 공포정치로 현재는 저항의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독재국가가 됐다고 한다.

 

몽골의 자원을 탐한 중국 정부의 지지와 지원으로 현 정부의 부패정권이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이 나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인지 몽골 국민들은 정부인사들을 중국 사람들과 한패거리로 여기며 분노하고 있다. 국민들의 지지 없이는 어떠한 권력도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이 나라 정부는 아직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천혜의 자연와 풍부한 자원 환경을 가진 나라가 왜 국민주권을 빼앗긴 채 미세먼지 속 고난의 국가가 되었을까? 왜 몇 안 되는 국민들조차 돌보지 못하여, 추위에 떨고 굶주리게 만들까? 국가 리더의 중요성을 몸서리치게 느끼게 된 여행이었다.


서울아재들이 좌충우돌 유쾌하게 시작했던 몽골 사막 투어는, 고되고 값진 인생축소판의 경험과 더불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풍요롭고 편안한 세상이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무겁게 생각하며 마무리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운명은 특히나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고찰까지…. 돈 쓰고 오지탐험을 했지만 여러 가지로 뜻 깊은 여행이었다. 몇 년 후 다시 몽골을 방문했을 때는 뭔가 바람직하게 변화된 모습을 목도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귀국길에 올랐다. 아싸 이제 최신 문명세계, 서울이다!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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