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 구강보건에 헌신”

2020.03.09 15:03:04 2020SS

치과의사 최재영

“장애인도 치과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중증 장애인의 구강 보건을 위해 헌신하는 치과의사가 있다. 1997년부터 이어온 한결같은 그의 헌신적 활동은 치과 선후배, 동료를 비롯해 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본인의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들의 치과 치료에 앞장서고 있기에 그 의미는 참으로 남다르다. 현재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치과진료실, 스마일재단 등 다양한 형태로 봉사 활동을 펼쳐가는 그를 만나 마음 속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관점의 변화, 그 시작은 나로부터. . .
최재영 원장은 좌측 하지 소아마비장애를 가진 지체장애 4급 장애인이다. 비록 다리가 약간 불편했지만 등산도 하고 달리는 것만 아니라면 일상생활은 큰 무리없이 가능했다. 그러던 중 1995년 치대 본과 3학년 때 좌측 하지 연장술을 받게 되면서 1년 여 간 목발에 의지하게 된다.

 

“목발을 사용하면서 우산을 쓸 수도,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들고 강의실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에 놓였어요. 특히 교합학 실습 때는 교합기를 들고 갈 수조차 없었죠. 새로운 장애와 마주하게 되자 장애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깨닫게 되었어요. 장애인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을 직시하며 장애인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 1995년 그 해, 우리나라에서 1992년 국내 최초로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에 장애인치과학을 개설한 이긍호 교수의 ‘장애인치과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장애인치과학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갔고, 1997년 졸업과 동시에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치과진료실 자원봉사의로서 참여하게 되면서 장애인치과진료봉사의 길을 시작한다.

 

 

97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목요일이면 그의 발길이 향하는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치과진료실은 1995년에 그의 은사인 이긍호 교수의 제안으로 개소된 곳으로, 누적 치료건수 7213건, 치과의사 자원봉사자 1120회 방문, 총 2800시간의 봉사실적을 가진 무료진료소이다. 현재 이긍호 교수와 최재영 원장을 포함해 이종태, 송재혁 원장의 참여로 운영중이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장애인치과치료 자원봉사의 행보는 서울 도봉구 보건소 내 장애인치과진료실(2000년~현재), 부천근로자종합복지관 내 부천외국인 노동자의 집 무료치과진료소(경희대학교 치과대학 진료봉사동아리 KODA 일일진료소 / 2001년~현재), 스마일재단 치과진료(2001년~현재) 등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다. 또한 장애인 치료 시 주의사항을 정리한 가이드북을 선보이기도 했다.

 

단순 치료만이 아닌 시스템을 정립해가다

그는 장애인치과치료 주의사항 매뉴얼을 시작으로 장애인치과진료와 관련된 책을 다수 발간했다. 이 저서들은 장애인치과 뿐만 아니라 기존 치과를 방문하는 장애인 환자들을 진료하는 데에 있어 꼭 필요한 지침서라 해도 무방하다.

 

“1997년 졸업과 동시에 장애인치과진료 봉사를 시작하면서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은사이신 이긍호 교수님과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 가지의 목표를 세우게 되었죠. 첫째, 장애인치과를 위한 학회가 필요하다. 둘째, 치과대학의 정식 교재로 활용 가능한 교과서가 필요하다. 셋째,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인들의 치과치료비를 지원하는 복지재단 설립이 필요하다.”

 

 

세 가지 목표 중 학문적 단체로서의 학회는 바로 지난 2004년 설립된 ‘대한장애인치과학회’ 다. 그는 창립발기인대회부터 참여해 현재 부회장직을 맡아 활동중이다. 2003년 치과의사들의 기부로 설립한 장애인치과진료 복지재단이 바로 ‘스마일재단’이다. 그리고 2019년 ‘장애인치과학’이 치과대학 정식 교과서로 발간되면서 두번째 목표도 이루었다.

 

“지난 2000년 도봉구치과의사회에서 발간한 ‘장애인치과진료안내서’나 스마일재단에서 3판까지 발간한 ‘장애인치과진료가이드북’, 그리고 ‘장애인치과학’ 교과서 모두 저를 포함해서 장애인치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진 수많은 치과의사들의 노력과 열정의 결실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1997년도부터 관심을 가져온 장애인치과진료에 대한 임상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제도적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장애인치과 의료보험제도의 개선을 위한 저의 노력이 미력하게나마 책을 공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치과의사로서 지금까지의 인생에 개인적으로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꾸준히 실천하는 삶, 그 속에서 행복을 얻다

최근에 그는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 치과기자재를 기증하는 등 자원봉사 외에도 기부, 기증 또한 꾸준히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정기적으로 봉사와 기부를 실천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렇기에 그의 한결같음이 진료 봉사나 기부, 기증을 고민하고 있는 선후배와 동료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는 개인적 욕심에 자원봉사자도 더 모으고 진료시간도 늘리면 좋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죠. 그때 은사이신 이긍호 교수님께서 가르침을 주시더군요. 매일 진료하고 1년만 하다 끝나는 것보다는 매주 진료하고 10년 하는 것이 장애인들에게는 더 좋은 일이라고요. 그래서 봉사 활동을 생각하고 있다면 아무리 선의로 시작한다 해도 처음부터 감당 못 할 범위보다는 현재 가장 부담 없는 한도 내에서 조금씩 실천해나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란 마음으로 시작하는 거라 생각해요.”

 

 

그는 2019년 10월 자비를 들여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치과진료실에 유니트 체어를 비롯해 1,000만 원 상당의 치과 진료기구를 기증했다. 지난 23년 간 잘 버텨주었던 체어와 각종 기자재들을 교체함으로써 앞으로의 봉사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했던 일이라 그리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며 쑥스러워 했다.

 

“그래도 새 체어에 진료 받으시던 장애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꾸준히 실천하는 삶을 통해 행복을 얻고 있다는 그는 대한장애인치과학회의 부회장으로서도 2020년은 더욱 바쁠 것 같다고. 2004년 설립 이래 16년 째를 맞이하는 2020년을 시작하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았다는 그에게 현재의 학회가 있기까지 모든 순간이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설립 초기 어렵게 시작했던 학회였기에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소중했어요. 특히 지난 2016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치과학회에 참석하여 2024년 세계장애인치과학회의 한국 유치를 결정하던 순간은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현재의 학회가 있기까지 일본장애자치과학회의 지원과 협력이 큰 도움이 되었기에 이제는 우리도 제3국의 장애인치과학의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어야죠.”

 

그의 생각은 바로 2018년 ‘한일우호 메가&최 기금’ 조성으로 이어졌고 기금관리위원장으로는 이긍호 교수가 위촉되었다. 매년 2명의 제3국 젊은 치과의사를 선발해 5년간 장학금을 지급하는 기금인데, 2019년 그 첫 수혜자로 장애인치과에 관심을 가지고 포스터 발표를 했던 두 명의 필리핀 출신 치과의사들이 선정되었다. 2020년에도 이 기금의 원활한 운영과 2024년 세계장애인치과학회 준비를 위해 그는 발에 땀나도록 뛸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체력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여유로운 일정으로 여행을 하면서 다른 나라,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접하는 걸 즐긴다. 이를 통해 일상의 단조로운 반복과 사람을 대하는 것에서 오는 감정적 피로감을 풀고 온다고. 게다가 치과의사들과의 만남과 모임을 자주 갖는 편이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일상에서 얻는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나만의 것이 아니며, 또 그와 같은 고민과 어려움을 서로 공유하고 위로하고 공감을 얻을 때, 환자로부터 얻는 감정적 스트레스나 인생의 어려움을 조금은 쉽게 극복해가는 편이다. 그래서 매주 두 번 지역 치과의사들과의 점심 모임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고, 모임이 있는 요일을 기다리다 보면 진료업무의 긴장감도 덜어지는 편이다.

 

“학회나 기금 운영 등 공적인 업무 수행 외에 개인적인 2020년의 계획은 사실 특별한 게 없어요.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어제와 같이 오늘도, 오늘과 같이 내일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난해, 저와 인연이 깊은 친한 치과대학 선배님과 치과대학 동기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어요. 제 나이 쉰을 넘겼으니 공자님 말씀으로 ‘지천명(知天命)’입니다. 가족들과 저를 포함해 제가 아는 모든 분들이 건강했으면 하는게 어쩌면 가장 특별한 계획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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