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의 의미

2012.07.02 09:36:23 제500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 99

의료보험제도가 처음 시작이었다. 전 국민의 강제적 의료보험제도는 일종의 사회주의적 성격이 아주 강한 제도였다. 의미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의사들이 조금만 손해를 보라는 것이었으며 의사들이 최고의 지위를 누리던 시대였기에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의약분업이 시작되었다. 의약분업은 의사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주었다. 의사에게 약이란 검객의 칼과 같은 의미이다. 그런데 정부가 평화 시대에는 검객이 필요 없다는 논리로 칼을 빼앗듯이 그렇게 의사에게서 약을 빼앗아 갔다. 진정한 검객은 칼을 사용할 줄만 아는 것이 아니라 칼에 대한 모든 지배권을 지녀야 했는데도 말이다.

 

그 후에 지속적으로 수가를 묶으며 낮추는 방법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사들이 필요 이상의 폭리를 취한다는 언론 플레이를 해왔다. 더불어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의 파렴치한 행동은 전체적인 의사들의 이미지로 구축되어 왔다.

 

결국 이제는 의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여론은 잘 먹고 살만한 이들의 집단적 이기주의로 받아들이며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미 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포괄수가제도를 들고 나왔다.

한마디로 음식점의 전국 비빔밥 가격을 동일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이 무엇이든지 상관 안하겠다는 것이다. 딸랑 콩나물 하나를 넣든 말든 모든 책임은 의사에게 돌아왔다. 이제 의사들은 참기름을 넣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참기름을 빼는 의사가 생기는 순간 모든 의사들은 도매금으로 파렴치범으로 몰리고 여론은 무섭게 의사를 압박하고 매도할게다.

 

우리는 이런 슬픈 시대에 의사를 하고 있다.

이것은 정부가 자본주의적 미국식 의료체제에서 사회주의적 유럽식 의료체제를 사모하며 생긴 문제이고, 그 문제의 모든 책임을 조금씩 순진한 의사들에게 전가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치과에도 충치치료는 무조건 얼마라는 식의 강요가 들어올 수도 있다. 비급여 수가를 메뉴판으로 만들어 자장면 집처럼 벽에 붙이는 순간 이미 치과의사의 권위라는 것은 사라졌다.

 

일간지에 치과의사의 신분인 자가 대다수의 치과의사들이 임플란트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들의 권위는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가 되었다. 자본주의의 모순 중 하나가 태어날 때부터 수많은 돈을 갖은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치기준을 그것에 두고 진료를 한다면 진료하는 순간부터 패배자인 것이다. 이젠 의사나 치과의사로서 그런 부를 축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부자들이 돈으로 이루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공부 잘하는 자식 만들기’였는데 이젠 그조차 틀린 말이 되어가는 현실이 슬프다.

 

의사들이 돈 앞에 흔들리지 않는 권위가 있었는데 이젠 그것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기에 어렵다. 정부는 전 국민 의료보험, 의약분업, 그리고 이에 버금가는 포괄수가제라는 세 번째 카드를 꺼냈다. 2, 30년 전만해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여론은 관심이 없기에 또 다시 일방적인 정부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그리고 20년 정도 후에는 유럽식 가정 주치의제도 하에 하루 하루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이미 필자는 70세가 넘어서 현장에서 물러나 있을 것이다.

 

다만 필자의 중학교 시절, 한국에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서 미국으로 수술 받으러 가기 위해 기다리던 친구가 등교 길에 완만한 언덕을 두세 번 앉아서 쉬어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의 의료가 이토록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 근간에는 의사들의 권위가 있었기에 가능 했었는데, 이제 의사가 수도승의 길까지 걸어야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득도하는 의사가 생길지, 눈부신 발전을 이룬 의료체제가 퇴보할지가 문제이다. 산부인과가 없어지고 여성의원이나, 여성미용과가 생겨나고 있다. 어떻게 변신해도 그 끝이 결국은 의료 퇴보로 이어질 것이 두렵다. 응급 수술을 받는데도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 올까 두렵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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