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혼란의 시대다. 국내서는 탄핵정국의 혼돈 속에 경제지표가 고꾸라지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트럼프의 재등장, 러-우전쟁과 가자지구전쟁 등 분란 속에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에 힘든 환경 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우리 치과의사 동료들에게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1996년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딥블루에게 패배했을 때 전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그 후 30여년이 흘러 이제는 AI(인공지능)의 시대다. 우리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즉 지능적인 존재인데 지금은 기계가 지능적인 면은 더 앞서가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기계에는 없는, 느낄 수 있는 능력인 ‘감정’이 있다. 감정의 영역을 지키지 못한다면 공상과학픽션에서 보여 주듯이 기계에게 지배당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일상에서도 감정에 지배당하면 삶의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걱정, 두려움, 지루함, 분노 등에 휩싸이면 행복감은 급격히 떨어진다. 현재 우리의 개원환경은 그런 감정을 유발할 만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776년 7월 4일 미국의 건국헌법은 삶, 자유, 행복의 추구라는 3가지 기본권리를 천명했다. 이중 행복의 추구라는 개념은 현재의 시각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큰 케이스의 환자가 거액을 지불하고 나면, 새로 나온 고가의 스포츠카를 사고, 진정한 열정의 대상을 발견하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행복이란 붙잡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새로운 차와 새로운 사랑에조차 너무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다음 번의 성공과 쾌감을 갈망한다. 이 영원한 행복 사냥은 심리적으로는 쾌락의 쳇바퀴를 끊임없이 달리는 것과도 같다.
행복의 추구는 덧없고 통제하기 어려우며 잡으려고 할수록 달아나버린다. 그래서 짧은 행복감을 넘어서는 더 깊고 지속적이며 평온한 ‘만족’이라는 감정을 여러분에게 권유하고 싶다. 행복과는 대조적으로 만족감은 극단적인 감정적 고조가 아닌 내면의 평온한 상태에 가깝다.
프린스턴대학의 심리학자 해들리 캔드릴은 ‘행복의 사다리’라는 만족도 측정법을 제시했다. 열 칸짜리 사다리를 상상해서 맨 아래 칸은 최악이고 맨 위 칸은 최고의 삶이라고 상정할 때 본인의 삶은 몇 번째에 해당하는가를 묻는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측정해 보니 7, 8단계 정도를 선택하는 경우가 비교적 객관적으로 윤택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164개국 이상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데이터 분석에 의하면 소득과 만족도는 함께 증가하지만, 연간 가계소득 9만5,000달러가 되면 증가하던 만족감이 상승을 멈춘다. 행복한 순간은 지폐로 교환될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람은 쉽게 사치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진다.
우리 삶의 만족도는 생활조건보다는 우리 자신의 행동과 태도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일찍이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만족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 직업윤리를 이루는 핵심요소인 신뢰성, 낙천성. 근면함과 격동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갈아 넣는 강박적인 열정 속에 빠지지 말고, 만족감을 가지고 치과 운영을 여유롭게 하는, 조화로운 열정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길 나 자신에게부터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