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찰리 채플린은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연설문에서 “이성(상식)이 다스리는 사회”를 강렬하게 외쳤다.
“…탐욕은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켰고, 세계를 증오의 장벽으로 가로막았으며, 우리를 불행과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우리는 신속함을 얻었지만 스스로를 가둬 버리고 말았습니다. 풍요로움을 가져다준 기계는 우리를 욕심 속에 버려놓았습니다. 지식은 우리를 냉소적으로 만들었고, 영리함은 무정하고 불친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많이 하지만 느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기계보다는 인간성이,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삶은 비참해질 것이며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언젠가 증오는 지나가고 독재자들은 사라질 것이며, 그들이 인류로부터 빼앗아간 힘 또한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인류가 목숨을 바쳐 싸우는 한 자유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이런 비정상적인 자들에게, 기계의 지성과 마음을 가진 기계 인간들에게 굴복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기계가 아닙니다! 짐승도 아닙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당신들의 마음속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이 숨 쉬고 있습니다!…이성이 다스리는 세계, 과학의 발전이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세계…”.
영화에서 그가 우려한 전형적인 독재는 14년이 지나 한국에서도 시작되었다. 1954년에 정치흑역사의 대명사인 ‘4사5입 개헌’이라 불리는 개헌이 있었다. 대통령 중임제를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는 무제한으로 종신할 수 있도록 바꾸는 투표였다. 개헌 이유도 다분히 문제가 있었으나 그다음 진행은 거의 상상 불가였다. 당시 개헌은 국회의원 2/3찬성으로 바꿀 수 있었는데, 개헌 의결 투표 결과는 재적의원 203명 중 찬성 135명, 반대 60명, 기권 7명, 무효 1명으로 여당이 원래 확보한 찬성표 가운데 2표 이상의 반란표 혹은 무효표가 나왔다. 정족수 기준인 재적의원 203명의 2/3(135.333명)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한 135명으로 명백한 미달이었다. 정족수 136명을 채우지 못하여 합헌적인 부결이 되었고 신문에 기사화되었지만, 다음날 정부는 4사5입(소수점 이하가 4면 버리고 5 이상이면 올린다)는 수학적 논리를 기준으로 135.333명은 135명이라고 우기며 부결을 가결로 바꾸었다. 정치가 상식을 벗어나는 순간이었고 후안무치의 시작이었다. 결국 6년 뒤에는 4·19의거로 망하였다.
며칠 전 아침에 눈을 뜨고 TV 뉴스를 보니 하루 밤사이에 대통령 후보가 바뀌었다. 정치인들에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지난해 한밤에 벌어진 느닷없는 황당한 계엄령도 경험하였으나 이번 사건 또한 그에 버금가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2025년에 이런 일이 발생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떻게 대통령 파면 전에 여당이었고 지금은 제2의 국회의원을 보유하고 있는 당에서 발생 가능할 수 있는 것일까. 내용을 들어볼수록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상식을 초월하였다. 마치 모든 일이 가능하던 1950년대 이승만 독재정권이나 197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회귀한 듯한 익숙한(?) 느낌이다. ‘4사5입 개헌’, ‘10월 유신’, ‘통일주체국민회의’ 등 같은 찬란한(?) 과거 흑역사 단어에 결코 뒤지지않는 사건이었다.
독재정권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런 비상식적인 사건들에 매우 익숙하다. 그때는 모든 것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45년 전 1980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만든 삼청교육대는 영장 없이 누구든지 이유 없이 체포할 수 있는 무소불위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들도 최소한의 절차와 형식을 따랐다. 그들이 가장 중요시하고 신경 쓴 것이 명분이었고 그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 절차와 격식을 중요시하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명분도, 절차도, 격식도 모두 무시되었다. 군사정권보다 질이 떨어지고, 후안무치함이 71년 전 ‘4사5입 개헌’과 유사하다.
오랜만에 후안무치와 비상식을 주제로 한 멋진(?) 흑백영화나 무성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다. 이들이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 마지막 연설문을 생각나게 하였다. 자신들의 이름이 역사적으로 영원히 박제될 것을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 2025년에 1940년 영화를 떠올리는 현실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