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움직인 순간,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저의 봉사활동보다 은사님의 뜻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장애인 진료에 헌신하고 있는 송재혁 원장은 현재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봉사의 시작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에 장애인치과학을 처음 도입하고, 은퇴 이후에도 장애인을 위해 헌신한 이긍호 교수의 영향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기자에게 도착한 문자 메시지에는 송재혁 원장의 스승인 이긍호 교수에 대한 기사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송 원장은 공중보건의 복무를 마친 후 수련 과정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 선배의 조언을 따라 수련의 길을 택했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자신의 성향을 살려 소아치과를 전공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이긍호 교수를 만나 장애인 치과진료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고, 교수의 따뜻한 진료 철학은 그를 자연스럽게 봉사의 길로 이끌었다.
소아치과처럼 장애인 진료도 ‘안심’이 먼저
“주사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아요. 석션도 청소기라고 표현하죠”
뇌성마비 장애인 치료에서 송 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안전’과 ‘안심’이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운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치료 중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늘 조심스럽다.
무엇보다 환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사전 설명과 단어 선택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예를 들어 주사라는 표현 대신 ‘꼬집는 느낌’이라고 말하거나, 석션 기구는 ‘청소기’, 바람은 직접 피부에 불어보이며 설명한다. 이는 어린이를 치료할 때와 유사한 접근법으로, 환자에게 치료 과정을 상상하게 하고 편안함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할 수 있음’보다 ‘할 수 없음’이 더 많은 현실 앞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자가 인터뷰를 진행한 날은 유난히 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이었다. 뇌성마비 장애인들에게 비 오는 날의 외출은 더욱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동이 쉽지 않은 그들에게 복지관까지의 길은 말 그대로 ‘장애’를 넘는 여정이다. 하지만 그날, 예약된 환자들은 하나둘씩 빗속을 뚫고 진료실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송재혁 원장 또한 비를 뚫고 묵묵히 진료실로 들어섰다.
이처럼 봉사의 자리는 일방적인 헌신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약속으로 지켜진다.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보내는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그리고 그 인사를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의사의 따뜻한 시선. 그 조용한 약속들이 모여, 오늘도 진료실 안엔 조심스레 피어나는 신뢰와 감동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진료를 위한 복지관의 시스템은 여전히 여러 제약을 안고 있다. 특히 발치, 엑스레이, 신경치료와 같은 고난도 진료는 복지관 내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법적인 기구 사용 제한이나 처방전 발행 등의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송재혁 원장은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장애인 진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더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단순한 봉사의 영역을 넘어, 체계적인 제도 개선이 동반되어야만 진정한 의료 형평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
작은 인사가 남긴 큰 울림, 그리고 계속되는 걸음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오늘까지 이 자리를 지키는 힘이 된 것 같아요”
수년째 봉사를 이어오고 있는 송 원장에게 가장 큰 힘은 다름 아닌 환자들의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다. 짧지만 진심 어린 그 말은 바쁜 진료 속에서도 그가 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제 봉사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고 ‘습관’이 되었다.
그는 후배 의료인들에게도 봉사의 경험을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한 번 시작이 어려울 뿐이지, 막상 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송 원장의 말처럼,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기에 그의 봉사는 오늘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