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생활하시는 친척 한 분이 필자의 집에 방문하셨을 때 일이다. 따르릉 따르릉 집전화가 울리는 데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자 조금 의아해 하시더니 “왜 전화를 받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이에 요즘은 개인 휴대폰을 쓰기 때문에 집전화로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고 보이스피싱이 너무 흔해 집전화를 사용 안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팩스용으로만 사용할 뿐이며 집전화가 없는 가정도 많다고 설명해주었다.
보이스피싱의 기승으로 82세이신 어머니께 전화받을 때 모르는 사람이면 무조건 끊어버리라고 설명하여 드리던 일과 아이들 교육으로 외국서 오래 있다 온 와이프에게 집전화는 절대 받지 말고 휴대폰으로도 모르는 번호는 받지 말라고 이야기할 때 의아해 하던 모습들이 기억이 난다. 더불어 요즘 유학을 간 자녀들의 정보를 이용한 보이스피싱도 기승을 부려서 응급상황 통화 시에 아이들과 본인 확인을 하는 비밀 대화방식을 정하기도 한다고 한다. 과거 20년 전에 비하여 많이 바뀐 생활상 중에 하나이다. 보이스피싱은 사람의 불안심리를 이용한 고도의 사기수법이다.
이런 악덕 장사법은 다양하게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다. 이를 통칭 ‘악덕상법’이라고 하고, 크게 멀티상법(Multilevel Marketing Plan : 연쇄판매 거래의 통칭, 일명 다단계 상술), 영감상법, 최면상법 등이 있으며 모두 사기에 속하는 악덕 장사 방법이다. 먼저 다단계는 모두가 잘 아니 생략한다.
영감상법은 ‘이것을 사지 않으면 조상의 혼백이 노여워한다’고 말하면서 무리한 가격으로 부적이나 물건을 강매하는 방법으로 여성들이 현혹되는 일들이 많으며 치과계에서도 안하면 큰일난다는 식으로 보통의 장치비용보다 5~10배 이상의 고가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고가의 장치니까 효과가 클 것이라는 심리효과(일명 부적효과)로 영상상법을 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면상법은 일명 바람잡이 사기술로써 일단 무료, 공짜라고 하여 모집하고 싼 제품을 무료로 나눠주고는 바람잡이들이 분위기를 잡고 고가의 물건을 파는 행위로 무료관광 후 건강식품 등을 파는 행위가 이에 속한다. 일부치과에서 시행하는 무료 스케일링도 최면상법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술에 휘말리기 쉬운 사람의 특징으로는 의존심이 강한 사람, 권위주의 경향이 강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 의지가 약하고 내성적인 사람, 비관적인 사람 등이 있다. 의존심리를 분석해보면 그 속에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도피심리가 잠재해 있다. 즉 중대 문제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성향이다.
또한 고령자는 퇴직금이나 연금 등을 지닌 집단으로 금전(돈)·건강(병)·고독이라는 3대 불안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무엇보다 꾸준한 관심과 친절한 응대를 반긴다. 사기범들은 정확히 이를 노려 접근한다. 하나같이 이들의 주된 관심사이자 약점인 부분이다. 이를 해결해 준다니 반기지 않을 이가 없는 것이 사기의 시작이다.
일례로 고령화 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은 이런 피해가 2009년에 공식적으로 6,548억 엔에 이르고 건수로 90만 건에 육박한다. 이는 관계 기관의 상담 사례뿐이라서 상담 비중이 전체의 13.5%라고 보고, 역산하면 피해 총액은 4조8500억 엔에 이른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이다. 요즘 일본에서 고령자에 대한 사기는 물건판매를 넘어서 집이 곧 무너질 것이니 수리하라는 수법까지 이르렀다.
특히 치매노인들을 대상으로 계약하는 일까지 팽배해 있다고 하니 10여 년 뒤의 우리나라의 모습을 미리 보는 듯 하여 씁쓸한 마음이다. 우리 사회에도 물 투자, 외국 광물투자, 외국 선물 투자는 사기란 말이 흔하다. 사회에 팽배해 있는 사기기법이 고도화하여 어쩌면 순수하고 성스러워야할 의료라는 영역의 담을 넘어서 진료실 안으로까지 들어온 요즘의 세태를 보면서 역시 씁쓸한 마음이다. 행여 이 글이 그들의 새로운 사기기술의 진화에 더욱 악용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감마저 들지만 그래도 침묵하는 선량한 의료인이 더욱 많다는 사실에 오늘도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