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

2021.01.23 12:56:24 제904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501)
최용현 대한심신치의학회 부회장

치과에 출근하던 원장이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3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하는 영상을 보면서 참담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가해자 문제인가? 치과의사 문제인가? 치과계 문제인가? 사회문제인가? 확실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요소가 만나서 발생하게 된다. 한 가지 현상이 반복해서 나타날 때는 우연보다는 필연적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성이 높다. 즉 동일조건이 되면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건의 원인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늘 사회 환경, 가해자, 피해자인 3가지 요소가 있다. 우선 현시점에서 나타나는 거시적인 사회 환경을 보아야 한다. 표창장 위조 사건을 시작으로 사회 자체가 옳고 그름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가 흔들렸다. 벼룩을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웠다. 최근엔 정인이 사건을 포함해 아동학대에 의한 사망 사건이 증가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외부출입이 적어지고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스트레스를 약한 자에게 풀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가정폭력이나 이혼이 급증할 가능성도 높다.

 

정부가 코로나로 인해 양적완화정책을 펴면서 유동성이 증가됐다. 주식과 부동산이 비정상적으로 폭등했지만, 경제학자들은 ‘뉴노멀’이라는 말로 문제의 심각성을 덮어버리고 있다. 유동성 증가의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주식이 2배 성장했다고 가정하면 10만원을 넣은 서민은 10만원을 벌지만 10억원을 넣은 부자는 10억원을 벌게 된다. 자금은 서민과 자영업자를 위해 공급하지만, 서민은 모두 소비해 남지 않고 최종적으로 유동성 과잉은 자산이 자산을 벌게 한다.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사회심리적 갈등을 유발한다.

 

두 번째로 유동성 증가는 자산 가치를 하락시키기 때문에 중산층이 무너지는 결과를 유발한다. 예를 들면 1,000만원 예금이 유동성 증가로 물가가 2배로 뛰면 구매력이 1/2로 감소한다. 요즘 유행하는 ‘벼락거지’라는 표현이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단적인 현상을 대변하는 용어다. 양극화는 중산층 몰락을 의미한다. 19세기에 막시즘이 발생한 것도 유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9세기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집단적 형태로 나타나기보다는 개인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쉽다. 갈등이 개인 내면으로 들어가면 우울증이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나타나고, 밖으로 향하면 분노조절장애나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나타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 상황에 직면해 있고 현재진행형이다. 이를 견디거나 당하고 있는 모든 세대가 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치과계도 마찬가지다. 의료행위가치가 꾸준히 하락했다. 80년대에 스케일링이 5만원이었는데 지금도 내내 그 정도이다. 30년 동안 물가 상승은 상대적으로 치과 행위가치를 지속적으로 하락시켰다. 설상가상으로 치과의사 수는 증가해 희소가치 또한 동반 하락했다. 종합해보면,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요소 중에서 치과의사 개인 성향을 제외한 가해자 개인이나 사회요소는 단기간에 변화시키거나 변할 수 없는 상수다. 따라서 언제든지 유사한 조건이 성립되면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유일한 변수는 치과의사의 개인적인 성향뿐이다. 즉, 한마디로 간단히 정의하면 분노조절기능이 상실된 사회에서는 개인적인 적절한 대응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마치 영화 <매드맥스>의 한 장면처럼 황량한 도로에서 알 수 없는 불특정인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방랑자 같은 느낌이다. 이번 사건은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가해자 개인 성향이 만들어낸 폭력이다. 현장에서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치과의사 환경이 안타깝다. 그의 눈에는 치과의사가 어떻게 보였기에 그런 행동이 가능했을까?


요즘 필자도 진료를 하면서 ‘이 환자에게 나는 어떻게 보여질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시대 속에서 어떤 환자든지 필자를 치과의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가 필자가 가운을 벗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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