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전국 산부인과 의사 긴급 궐기대회’가 진행됐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소속 회원 1,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의료사고특례법 제정 및 산모-태아 무과실 국가배상을 즉각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현장에는 ‘분만환경 파괴하는 사법부는 각성하라’, ‘안전분만 보장하는 의료체계 수립하라’는 등의 깃발이 내걸렸다.
이날 집회는 지난달 7일 인천지방법원이 태아 자궁내사망을 이유로 담당의사를 8개월간 교도소에 구금하라는 금고 8개월 선고가 발단이 됐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판결은 의사가 태아를 죽인 것이 아니라 의사가 위급한 죽음에 이르는 태아를 살려내지 못한 것이 감옥에 갈 사유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어떤 분만의사도 겪을 수 있는 사건이고, 언제든 분만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임에도 마치 살인행위와 같이 취급하여 교도소에 보내는 형사책임이 정당화되고 수억원의 배상책임을 강요한 판결로, 이러한 비이성적 판결이 용인된다면 대한민국 산부인과의사는 부득불 분만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천명한다”고 강조했다.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고 있는 현실에 의료인들의 분개는 극에 달했다.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사고특례법 제정과 의료분쟁조정중재법 개정을 강력히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수용할 수 없으며, 이는 소신진료를 막고 의료체계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을 위해 전국 의사 회원들의 서명운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대선을 앞두고 국회를 방문, 양승조 보건복지위원장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양승조 위원장은 “의사만의 문제가 아닌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약사 등 모두 해당된다”면서 “고위험 중증 환자들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기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적극 지지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의료사고특례법이란, 의료인이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적 처벌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제도로, 수년 전부터 논의되고 있지만 의료인에 대한 과도한 특혜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답보상태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의료사고특례법은 없지만 교통사고특례법은 존재하는 상황. 생업상 운전을 하는 국민을 보호하고 범죄자, 전과자 양산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의료인에게 이같은 적용이 되지 않음으로써 의사들은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어진료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도한 의료배상에 대한 대책도 요구된다. 최근 의료분쟁 사건에 있어 10억원 이상의 금액을 배상하라는 판결도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분쟁조정원 또한 의료인과 환자의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형사사건 과실감정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영희 기자 news001@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