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필자가 서울여자치과의사회 회장을 맡게 되었을 때이다. 여자치과의사회의 어려운 실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니 흔쾌히 참여하겠다던 따뜻한 음성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 인연으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모여 한마음으로 사명감을 갖고 침체된 여자치과의사회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였다. 고인은 2008년까지 서울여자치과의사회 부회장으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여자치과의사회 부회장으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구로구치과의사회 회장으로, 2011년부터 3년간은 서울시치과의사회에서 첫 여성 부회장으로, 오랜 세월 치과계 이곳저곳에서 많은 봉사를 하였다.

고인은 특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어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구로구치과의사회 회장으로 활동할 때 초등학교 구강검진을 전체 구회원이 할 수 있도록 구회에서 통계 및 행정을 지원하고, 회원으로부터 일정부문 수수료를 기탁받아 구회 재정에 도움이 되도록 체계화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Guro happy dentist’라는 회지를 처음으로 발간하였고, 최초로 여성부를 신설하여 여성회원 모임인 ‘삼월회’가 지금까지 활발하게 유지되고 있다. 또한, 구로건강지킴이봉사로 관내 외국인 노동자와 노인들을 위한 지원금을 전달하고 장애인 치과 진료에 참여하는 등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회무를 열정적으로 하면서도 성별을 떠나 동료 후배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명쾌하게 관점을 파악하여 용기를 주었다. 건강을 지켜야 한다면서 바쁜 와중에도 신토불이 음식까지 챙겨주는 등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남달랐다. 무엇보다도 어떤 나쁜 상황에서도 원망의 마음보다는 사랑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기에 우리 모두에게 고인의 빈 자리는 더욱 크게 남아있다.
그러나 그렇게 씩씩하고 명랑해 보이는 고인이지만 마음이 매우 여리고 눈물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쉽게 믿었던 성격 탓에 크고 작은 송사에 휘말려 최근까지 여러 고통을 겪고 있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들을 만나면 늘 “잘 될 거야”라며 특유의 긍정 미소를 지어 보였기에 그동안 혼자서 감당하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

장례 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서 행복하게 활짝 웃고 있는 고인의 사진들을 서둘러 저장하였다. “심경숙 선생님! 그 누구보다 멋있고 열정적으로 베푸는 삶을 살다간 우리 여성 치과의사들의 롤모델인 그대를 영원히 잊지 않으리다. 우리의 가슴속에 묻고 그대가 보고 싶을 때면 소중했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며 그대를 기억하리다.”
신앙인으로서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라고 애써 슬픔을 추스르며, 이 세상에서 고단한 삶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베푸는 삶을 살다간 고인을 주님께서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눈물을 닦아주시고 품어주시리라 굳게 믿는다.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우리도 그대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남은 인생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네. 주님 곁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며 훗날 서로 반갑게 다시 만납시다!
심현구 前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