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에 담는 것은 물건 만이 아니다

2025.04.27 15:53:13 2025SS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흘러간다
글·사진_황원민 대표(주식회사 포벨)

 

가방은 소지품을 넣고 안전하게 운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세월이 흘러도 그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익숙함에 속아 눈치채지 못한 것일 뿐, 우리가 들고 다니는 가방엔 문화,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까지 녹아 있다.

 

유럽에서 생활 혹은 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가방의 입구를 뚜껑, 지퍼 등으로 단단히 잠가야 한다. 빈틈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훔쳐가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카페에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가방을 제대로 닫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심지어 몇몇은 가방에서 짐이 떨어질 것만 같다. 치안에서부터 비롯된 문화의 차이다. 한국에선 카페, 음식점, 공원 벤치 등에서 자리를 맡는다며 가방을 두고 잠시 자리를 비우기도 한다. 그럼에도 훔쳐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외국에선 절대 상상하지 못하는 행위다. 그런 이유로 한국 문화에서 비롯된 가방 디자인, 가방의 사용법은 보다 자유로운 편이다.

 

 

*스위스 금속 장식 브랜드 ‘아미애트’의 장식 디자인엔 대부분 비밀번호, 열쇠가 달려있다.

 

치안 외에도 재밌는 문화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다. 일부 외국인은 서울을 미래 도시라 표현하기도 한다. IT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그에 맞춰 가방도 바뀐다. 가방에 넣는 내용물을 한 번 살펴보자.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가방에 짐을 많이 넣고 다녔다. 학생들은 여러 권의 책을, 직장인들은 두꺼운 서류를 넣고 다녔다. 현대 사회에서는 패드, 태블릿PC, E-BOOK 등 작은 기계 하나로 해결된다. 그만큼 가방에 넣는 내용물의 부피와 무게가 많이 줄었다. 생활이 변화한 만큼 우리의 가방도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당신의 가방엔 무엇이 담겨있나요?

멀리서 바라본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대체로 비슷하다. 학창 시절에는 학업에 몰두하고, 20대에는 스펙업과 취준에, 취업하고 나면 사회에 발맞춰 적응하느라 바쁘다. 우리는 정신 없이 달리는데 익숙하다. 다들 빨리 달려가니까. 나만 안 뛰면 뒤처지는 것 같으니까. 우리는 어디로 달리는지 모른 채 뛰기 바쁘다. 그렇게 ‘나’를 방치한 채 앞으로 달리는 데만 몰두하던 사람들은 뒤늦게 ‘공허함’을 느낀다.

 

현대에 들어서는 주 4~5일, 워라벨 등을 외치며 공허함을 없애기 위해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멍… 멍… 멍…’ 그거 어떻게 하는 걸까? 그렇다. 시간적 여유를 가져도 막상 ‘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나를 찾으려면, 나를 찾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공간과 주변 사람들이 주는 힘이 있으니 말이다.

 

포벨 가죽 공방 정규반은 나를 찾아보고 가죽 작품, 가방에 표현한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고, 선생님과 대화하며 조금씩 더 깊게 나를 찾는 방식을 배운다. 그렇게 찾은 내가 좋아하는 질감, 색감, 라인, 포인트 등을 디자인 요소요소에 담아 가방을 만들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나를 모아본다. 그렇게 작품이 하나, 둘, 쌓여가면 점점 선명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어? 나. 이런 거 좋아했네!’라며 몰랐던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내가 선명해지는 것뿐인데, 이 작은 변화에 정신적 여유와 안정감이 생긴다. 평소에 정신없이 지나가는 출퇴근길도, 앞만 바라보며 달려가던 약속 장소도 조금씩 달리 보인다. 목적지로 가는 길 곳곳에 숨어있는 재밌는 요소들이 눈에 보이고, 그런 요소들을 어떻게 가방에 담아 만들어볼까?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지루하던 일상에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점점 짙어지는 나만의 색깔. 개성 있는 나만의 색을 담은 가방과 다양한 작품. 만들고 끝내기엔 너무 아쉽다. 포벨은 그런 수강생들의 작품들을 한데 모아 사진으로 담고 전시를 하며 선보이기도 하고 페어, 플리마켓에도 나가 판매도 한다. 외부의 시선이 아닌 온전히 나에게 집중했을 뿐인데,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바라본다. 판매를 목적으로 만든 작품은 아니지만, 가방에 담긴 나의 이야기와 가치를 인정받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판매까지 이뤄졌을 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높아지는 자존감을 느낄 수 있다.

 

포벨은, 가방을 만들면서 수강생들이 자신을 담을 수 있게 도와준다.가방, 이제는 더 이상 타인에게 자랑하기 위한 아이템이 아닌, 나를 찾고 가방에 담는 것이다.

 

업이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라면, 취미는 나를 찾아가는 행위다. – 포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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