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신문 논단] 꼭 소송으로 끝을 봐야 하나?

2025.12.12 07:51:37 제1141호

박용호 논설위원

그동안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한참 지났으니 이제는 밝혀도 될 듯하다. 14년 전 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가 한창 불법 네트워크 치과들과 송사를 거듭할 때다. 당시 김세영 협회장은 ‘전쟁’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는 치협 외부 미팅 때 보안과 신변 보호에 온 신경을 쓴다고 했다. 나는 동지 의식을 느꼈다. 김 협회장은 칼로, 난 펜으로 싸우는 느낌이었다. 두 달에 한 번씩 논단을 썼는데, 나는 의료정의를 위한 사명감으로 연속 7차례 네트워크 치과에 대한 비난 칼럼을 썼다. 언론인 같이 힘이 나고 신나고 보람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신문을 보다 기가 막혔다. R 네트워크 치과가 낸 전면 광고를 발견했다. 치협과 김 협회장, 그리고 필자를 붉은 활자로 적시하고, 치협 정책과 나의 칼럼을 싸잡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광고였다. 집사람은 이제 그런 글 그만 쓰라고 했다. 치과에 출근하니 R 네트워크로부터 칼럼 중단에 협조해 달라는 팩스도 왔다(그 이후에도 무시하고 계속 썼다). 고교 동기들 전화가 빗발쳤다. 신문에 네 이름이 났는데 무슨 일이 있냐고. 치협에선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5대 일간지에 동시에 똑같은 광고가 실렸단다.

 

김 협회장과 나를 포함해서 치협 차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얼마 후 서울지부에서도 대리소송을 해주겠다고 전갈이 왔다. 그 후 ‘대한치과개원의협의회’ 총무이사가 전화를 해왔다(생면부지였는데, 추측건대 이상훈 前 협회장의 비선조직이었다). 변호사 비용을 대납해 소송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잘하면 영업손실 배상금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세 곳 전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고교 동기 A를 만났다. 그는 신문방송학 전공이고, 공공기관에 근무해서 관련 문제에 정통했다. 일간지 광고를 보여주고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이 사람들이 독이 올랐네”라며 조심하라고 진지하게 충고하고는 당분간 경호원을 채용하고 가스총을 구비하라고 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치과에 CCTV를 설치하고 주차장 출입 시 주변을 주시했다.

 

한 발짝 뒤에서 생각해보니 내 명예는 원래 없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사건이 내 이름을 높여줬다. 내가 먼저 정곡을 찔러 칼럼은 성공했지만, 당사자들의 자존심을 손상시켰으니 소송해 봐야 맞고소가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법이란 미묘한 균형을 따지므로, 사실을 말해도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린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든, 법에 호소하든 감정싸움이 되는 것이고 승소해도 시간과 노력 비용에 비하면 실익도 미미할 것이다. 결국, 무대응 했더니 잠잠해지고 언제인가 R 네트워크 치과는 없어지고 말았다.

 

지난 10월, 박태근 협회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이 법원에서 ‘인용’ 결정됐다. 안타깝다. 그간 회원 분열 우려 때문에 언급을 자제했다. 교불삼년(驕不三年)이라더니 일단락된듯싶다. 이미 5개월 전에 부정선거 당선무효 판결이 나왔고, 임플란트 회사 후원금 횡령 의혹, 청탁금지법 위반혐의, 대중언론의 의혹 보도, 검찰의 압수수색을 감안하면 자업자득인 셈이다. 박 협회장은 현재 당선무효소송 1심 판결에 항소, 2심이 진행중이다. 굴하지 않고 견디며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한다. 보통 협회장 같으면 벌써 자진사퇴 했을 사안이다. 어쨌든 그는 의료법 개정 반대 단식투쟁으로 소기의 목적도 이루고 선거도 승리했다. 생명을 던졌던 그 결기는 지금도 존중한다. 회무도 어느 정도 이뤄냈다.

 

그러나 스트레스에 장사 없다고 한다. 모 전문지 기자가 협회장을 공개적으로 힐난한 기사도 보인다. 월급도 반납하고 협회 직원 노조 문제로 자진사퇴한 이상훈 前 협회장은 양심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툭하면 송사 건으로 회원들은 피곤하다. 물론 재판에는 경제적 득실이 결부될 것이다. 결과에 따라 법무비용이 협회 부담이냐, 개인 부담이냐 판가름 날 것이다. 재판은 어느 한쪽이 통 크게 먼저 승복해야 한다. 돈 문제보다 건강이 우선 아닌가. 협회장도 임기 이후는 보통 개원의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회원을 위해 어떤 길이 행복하고 순리인가를 진정 성찰해 보기를 권고하고 싶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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