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인 원장의 사람사는 이야기

2013.09.30 10:55:14 제560호

가마소 가는 길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심심산속 송천을 따라 배나드리를 지나자 송천은 절벽에 막힌 것같이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휘돌아나가는 송천의 강변 양지바른 곳에 발왕사가 있다. 여기가 놀거리다. 말 그대로 강가 넓은 터는 그 옛날 떼꾼들이 상류에서 흘러온 통나무를 엮어 뗏목을 만들고, 돛을 달아 상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리며, 안전운행을 기리며 한바탕 굿판이 있었을지 모르는 떼꾼들의 뗏목 놀이가 벌어졌던 그곳, 놀거리 텅 빈 강가에 그 옛날 떼꾼들의 춤사위가 착각으로 망막에 새겨진다. 놀거리를 지난 송천이 절벽을 타고 흐르던 곳, 길이 없어 보이던 곳에 조그만 석비가 있어 윗마을 바람불이마을과 길이 연결됐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그 옛날 길이 여기서 끊어졌다고 한다. 바람불이 마을 사람들은 피덕령을 넘고 닭목이를 거처 40km를 돌아 아우라지로 갔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바람불이 마을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4가구가 사는 오지마을이었다. 그들의 염원을 2012년 7월, 도로가 연결되고 이제 두 마을은 연결되었다. 이 소중한 길을 우리는 이렇게 쉽게 가고 있다. 절벽의 그늘에 숨겨진 길을 따라 송천은 우리를 바람불이로 안내한다. 구비를 돌 때마다 점점 세차게 부는 바람, 갑작스러운 바람의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우리는 놀라고 있었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앞길을 막는다. 강가 깊은 숲에서는 강태공이 낚시하는데, 길가의 나뭇가지는 몸을 비틀고 춤추듯 나뭇잎을 떨어댄다. 바람불이에 이르자 바람은 폭풍이 되어 깊은 계곡의 모든 것을 흔들어 놓는다. 

서울이 섭씨 33도인데 여긴 20도밖에 되지 않는다. 마치 산꼭대기에 산신이 있어 바람을 아래로 내모는 것 같다. 놀거리의 떼꾼들이 떼 출항을 위해 돛을 세우고 기다리며, 한바탕 놀았던 이유가 이 바람이었던가? 바람불이를 지나자 길은 그 각을 높이는데 10%의 빡센 업힐이 수없이 나타난다. 숲 그늘이 점점 벗겨지며, 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옥의 오르막을 오르니 숲이 끝나고 나타난 꼭대기에 어마어마한 호수가 있다. 도암호수다. 호수의 증발 효과로 차가워진 바람이 발왕산(1,458m)과 고루포기산(1,238m), 옥녀봉(1,146m) 사이의 계곡을 통해 아래로 불어 바람불이가 됐던 것이었다. 태풍이 치듯 내려 부는 바람 소리 속에 옛날 떼꾼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댐을 지나 돌아내려 가니 횡계 가는 길이 보인다. 호수 아래 계곡이라 해서 수하계곡이다. 도암호수로 흘러드는 송천은 아름다운 수하계곡을 따라 황병산쪽에서 흘러내려온다. 송천은 구불거림없이 크게 휘어드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비치힐 골프장이 푸른 잔디밭을 자랑하며 우리의 가는 길 양옆에서 송천을 품는다. 또 하나의 골프장인 알펜시아 골프장을 지나 횡계로 접어드니, 음식점마다 황태요리와 오삼불고기 요리간판이 즐비하다.

 

우리는 필라모텔에 예약을 하고 대관령에 오른다. 옛길은 새로 건설된 고속도로와 달리 한적하다. 그 옛날 이 길이 고속도로라니, 지방도정도로 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다. 5km를 달려 오른 대관령, 거대한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우레와 같고 땅에 그려지는 날개의 회전하는 그림자에 우리는 어지럽기까지 했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대관령 기념비에 서서 아래 보이는 양떼목장의 목가적 낭만을 그린다. 대관령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와 오늘을 마감한다. 꿈속에서 배나드리의 떼꾼들의 모습이 나타나겠지…

 

2013년 8월 16일 새벽같이 일어나 오늘의 코스인 가마소 마을을 지도로 다시 살펴보고. 쌀쌀한 횡계의 섭씨 15도의 날씨를 실감한다. 여기엔 에어컨이 없다고 한다. 여름에도 20도가 넘지 않는다고. 우리는 오대산 능선을 넘을 것이다. 진부로 향하는 우리는 앞으로 나타날 오지! 가마소의 모습을 그리며 진고개(960m)에 도전한다. 그동안 운두령(1,089m), 구룡령(1,013m) 등 1,000m가 넘는 고개를 넘었던 우리다. 그러나 높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각도와 거리가 난이도를 결정한다. 누구나 오대산 관통도로인 6번 도로의 진고개 구간은 마지막 정상부의 용트림과 경사가 그야말로 기를 죽인다. 진고개 휴게소에서 카브로딩하고 다시 갈 길을 짚어본다. 이 길로 그냥가면 주문진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 가마소로 가는 59번 도로를 탈 것이다. 도로라기보다 임도라고 하는 것이 옳은 전후치에 도전한다. 진고개에서 끝없이 내려오는 도로는 엄청난 각도의 내리막으로 질풍처럼 내닫게 한다.

 

6번 국도와 이별하고 59번 지방도 부연동길로 접어든다. 부연(釜淵)이란말은 釜(가마솥)과 沼(소)의 붙임말로서 가마솥같이 생긴 연못이 있다 해서 부연마을(釜淵洞)이라 하고 순수 우리말로 가마소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길은 각도를 높이는데 길이 아니고 산길이다. 전후치 오르막은 15%의 경사로 업힐 라이딩의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듯 했다. 

 

1,000m에 가까운 전후치 고개를 오르는 길은 그 구불거리는 정도가 마치 뱀이 기어가듯 정신없이 휘돌아 든다. 구불거리는 산길을 올라서니 온몸이 땀에 젖는다. 마치 땀으로 목욕을 했다고 할까? 숨은 턱에 차고 눈에서는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전후치 정상에서 바라본 오대산은 웅장한 모습으로 파노라마처럼 다가선다. 경치에 피로도 잊은 채 우리는 넋을 놓고 있었다. 부연마을 석비를 바라보고, 구불거리는 급경사 다운힐을 내려오니 부연마을 안내도가 있는데, 마치 무릉도원에 온 기분이다. 이렇게 험한 재가 입구라니 부연마을은 남쪽에 전후치, 북쪽에 바두재, 동쪽의 철갑령이 둘러싼 분지다. 마치 가마솥 같은 오지마을, 이 곳에도 메밀밭이 있어 마치 눈이 내린 듯 눈이 시리다.

 

우리는 메밀밭에 풍덩 빠져버렸다. 근처에 부연약수가 있어 그 물맛이 쇠맛이다. 철분이 있어 속병에 좋다고 한다. 또한 각종 산채가 생산되어 무공해 자연산 산채를 구하러 서울에서 많이 내려온다고 한다. 산촌체험마을이 있어 풍부한 피톤치드를 마실 수 있다. 가는 곳마다 곰취 나물이 지천이고 고냉지 배추밭이 마을에 펼쳐져 있었다. 작은 국기 게양대가 있는 머구재를 넘으니 파랑색 지붕의 삼산초등부연분교가 앙증맞게 자리하고 500년 묵은 제왕솔은 난간으로 둘러친 채 분연마을을 수호하고 있는 듯했다.

 

가마소의 물맛을 마음으로 느끼며 바두재로 오르는 길은 인적없는 고요함이 스며드는데 온통 들꽃들이 주인이 된 듯 흰색 분홍색의 구절초, 보라색의 쑥부쟁이가 바람에 흔들리며 우리를 반긴다. 멀리 윗 쪽에 바두재가 틈을 벌리며 우리를 맞이한다. 고개를 넘으니 분연마을과 물고기 낚기 다툼을 벌렸던 어성전 마을로 가는 고적치가 보인다. 조그만 마을, 산으로 둘러싸인 그 오지 마을에 혼을 빼앗긴 우리는 고적치 언덕에서 온 길을 하염없이 뒤돌아보며 고개를 넘었다. 남대천이 가까이에서 우리와 같이 하길 원하듯 앞서가는 그곳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백두대간을 넘었다는 자부심에 싸인다. 이 강을 따라가면 양양이리라. 문득 아기자기한 분연마을의 추억을 가슴에 새기며 어성전으로 향한다.

 

양양해변에 부서지는 흰 파도를 그리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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