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의연함이 그립다

2014.11.03 09:28:56 제611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 (210)

모처럼 낮에 강남에 개원한 선배를 찾아 나섰다. 도중에 P사의 커피숍에 들러서 카페라테를 주문하니 평소에 4,000원 하던 것을 할인하여 3,000원이라고 한다. 택시를 타고 영동대교를 건너 신사동으로 가는 동안 강남대로의 건물마다 임대를 구하는 현수막이 걸린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이런 모습을 본 것은 필자의 기억 속에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IMF 때였다. 두 번째가 리먼 사태였고 지금이 세 번째인데 리먼 사태 때보다 더 많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요즘 대중매체에서 소비심리상태가 세월호 사태 직후만큼 후퇴되었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났다. 강남을지병원 사거리에서 하차하고 병원 문을 들어서니 항상 맑게 웃는 선배가 사전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필자를 역시 반갑게 맞아주었다. 점심을 같이하며 이야기는 건강과 최근의 치과계의 현황으로 흘러갔다. 내년이면 60세인 선배의 몸은 군살 하나 없이 슬림하면서도 몸짱이었다. 평소에 틈날 때마다 운동을 한 덕이며 ‘모든 일이 그렇듯이 노력 없이 어떤 결과가 있겠냐고 평소에 틈틈이 운동해야 한다’는 진정어린 충고도 해주었다. 더불어 현 치과계의 상황에 대해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진원지는 모 불법 네트워크치과들이었으나 지금은 전체 치과계에 만연화되어, 박리다매형 치과들의 영향으로 전체 치과계가 공멸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했다.


더불어 제주도의 해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방송에서 나이 많은 노인 해녀에게 스쿠버 장비로 들어가면 더 많은 수확이 가능한데 왜 굳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조금씩 수확하고 고생스럽게 일을 하냐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논리가 있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나이 많은 해녀는 “내가 한 번에 다잡으면 앞집은 뭐 먹고 산대요?”라고 답변하였고 그것을 본 선배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결국 시장이 한정돼 있는 곳에서 자본주의적인 박리다매형 수가 파괴와 싹쓸이는 결국 공멸로 이어진다는 것을 제주도의 노인 해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공멸하는 것도 모르는 치과의사들의 행태는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선배와 같이 공감을 하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밖에 보이는 건물마다 커다랗게 걸려 바람에 펄럭거리는 임대라는 현수막이 말없는 아우성으로 들려온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의 아픔, 그들을 상대하는 치과의사들의 어려움, 앞집을 걱정하는 해녀와 달리 저인망식 박리다매형 치과들로 신음하며 어쩔 수 없이 무너지는 자존심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동료들의 아픔이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옛날 속담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우리 말 속에서의 ‘개’는 욕에 포함되는 등 나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개’는 주인에게 충직하고 친화적인 이미지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이미지가 상충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 이유를 필자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정적 이미지의 ‘개’는 공익을 무시한 주인만을 위하는 성품을 대변한 듯하다. 그것이 주인에게는 이익이지만 공공에게는 해악이 되는 경우를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생긴 우리 선조의 해학이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현실에서 개가 정승이 될 수 없듯이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쓸 수도 없다. ‘개처럼 벌면 짐승처럼 쓴다’는 표현이 더 맞다. 정승처럼 벌어야 정승처럼 쓴다. 242억의 로또 당첨자가 10년 만에 거액을 모두 날리고 빚까지 진 뒤에 결국 사기범으로 구속되었다. 개가 정승으로 변할 수 없는 일례일 것이다. ‘개처럼 벌면 그냥 개다’라는 어느 인터넷 논객의 글이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우리는 지금 선진국의 문턱에서 일본이 20년 겪은 유사한 경제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어쩌면 오래 지속될 수도 있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존감과 자부심을 지켜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밀려오는 적들을 쳐다보는 이순신 장군처럼 이런 경제난을 의연하게 볼 수는 과연 없는 것일까?

김영희 기자 news001@s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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