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2020.10.30 09:51:07 제893호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490)
최용현 대한심신치의학회 부회장

요즘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라는 말이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교훈에 정반대되는 말이다. 나뭇가지 한 개씩은 부러트리기 쉽지만 여러 개는 어렵다는 교육 내용이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실렸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적 명제였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사회적 대전제였던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은 적정거리 유지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로 바뀌며 미덕이 되었다. 승강기를 탈 때도 사람이 몇 명 정도 모이면 기다렸다가 다음에 탄다. 커피숍이나 음식점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좌석이 있다. 백화점이나 쇼핑타운 매장은 인원 제한을 하고 밖에서 거리두기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10명 이상 모이는 모임은 줄어들었고 친한 사람간 소단위 모임으로 변했다. 결혼식과 장례식도 간소화되는 추세로 참석하지 않아도 흠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생활이 근 1년 정도 되다 보니 조금씩 적응돼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1m가 개인 간 거리로 익숙해지다 보면 코로나 시대가 끝나서까지도 유지되어 북적되는 상황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사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커피숍이나 음식점에서 중간자리가 비어있으니 조용해 상대방과 대화에 집중하기 좋고 여유가 있고 편해졌다. 직원식당에 설치된 개인 칸막이는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여 나쁘지 않다. 사실 닥지닥지 붙어서 옆 테이블 소리에 큰소리로 대화를 할 때가 많았다. 좁은 승강기에서 근접된 사람으로 불편한 경우도 있었다.

 

치과에서도 환자 예약을 조율해 시간과 공간 배분을 하니 절대 수는 줄었지만 여유가 생겼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요즘 회사들도 재택근무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앞으로는 굳이 큰 사무실을 사용할 필요성이 없어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학교도 매일 등교하는 것에서 다양한 패턴으로 바뀔 것이 예상된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변할 것들이 코로나로 인하여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침없이 빠르게 변해버렸다.


이렇게 빠르게 변해버린 모든 사회적 현상을 한마디로 대변한 것이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라는 용어란 생각이 든다. 행동과 습관뿐만 아니라 생각도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최근 택배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됐다. 이는 소비 패턴이 비대면으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늘 물건을 확인하고 구입하던 필자가 이젠 인터넷에서 물품 상세 설명과 기존 구입자 구매 댓글을 꼼꼼히 읽고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지속된 코로나 시대는 모든 업종을 빠르게 대면과 비대면으로 가르고 있다. 비대면 업종은 철저하게 인터넷을 기반으로 변화한 사람들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인터넷 구매는 택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전국구다. 따라서 상위 5%가 전체를 지배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대면이 필요한 업종은 코로나 이전보다는 더 많은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야 하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 1m를 기본으로 제공해야 하고 그와 더불어 번잡함은 용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친절함이란 번잡할 때 돋보일 수 있지만 차분한 환경에서는 당연한 것이 된다. 즉 고객은 이미 경험한 기존 서비스에 여유를 더한 향상된 서비스를 원할 것이다. 반면 제공자는 두 가지 문제를 안는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라는 비상상황이기 때문에 수입 감소를 감수하고 있지만, 평상시에는 사회적 거리공간과 시간 여유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수가를 올리거나 수입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서비스와 코스트 조정에 따른 커다란 구조조정이 올 것이다.

 

인류가 생긴 이래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한 번도 변해 본 적이 없던 사회를 유지하는 대명제였다. 중세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죽어도 뭉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뭉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죽으면서까지 뭉쳐야 하던 과거와는 다르다.


포스트 코로나는 많은 변화를 빠르게 요구할 것이다. 누구에게는 기회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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