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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치과생활

내 인생 가장 귀한 손님과 잘 지내기 - 부모자녀 의사소통 향상

어유경 임상심리전문가 / 철학박사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지난해 TV에서 방영되었던 어느 드라마 덕분에 더 많이 알려진 이 시는 부모-자녀 간을 생각해 볼 때도 적절하다. 아이가 부모의 삶에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아이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이와 잘 지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내 속으로 낳았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는 게 나의 아이다.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된다. 특히 자녀와 의사소통하는 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모들이 많다. 잘 해봐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 되거나 말을 해 놓고 곧바로 후회하게 된다.

 

2014년 여성가족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동 청소년은 연령이 증가할수록 여러 가지 이유에서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적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물론 연령이 증가할수록 학업 및 가정 밖에서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부모 자녀 간 대화의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나, 학교생활이나 고민 등 실제 자신의 일상생활에 대해 부모와 잘 이야기 하지 않고 특히 자녀의 연령이 증가할수록 부모가 자신들을 잘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확한 의도의 이해와 전달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와 효과적으로 대화할 수 있을까? 먼저 대화에는 의도가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이의 말에도 의도가 있다. 그 의도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화의 첫 걸음이다. 가령, 아이가 친구 사이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어 부모에게 짜증을 낸다면 “아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구나”라고 그 의도를 이해해 주는 것이다.

 

특히 이 의도는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의도가 있다. 아이의 연령이나 발달단계에 따라 여러 사람의 입장이나 전체적인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하여 어른들의 눈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아이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의도가 있다. 이 긍정적인 의도를 이해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좀 더 어린아이들에게 이것을 적용해 보자. 한시도 엄마와 떨어지기 힘들어 하는 아이가 있다. 엄마가 화장실에도 못 갈 정도로 아이가 보챈다고 할 때 “아니 얘가 왜 한시도 떨어지지 못해? 엄마 화장실 좀 가자!”라고 하기보다 “OO는 엄마랑 늘 함께 있고 싶을 만큼 엄마를 좋아 하는구나”, “OO에게 엄마가 그렇게 소중한 존재구나”라고 아이의 의도를 반영해 준다.

 

다른 예로 형제끼리 서로 먼저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다툰다면 아이 둘을 협동이나 양보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먼저 지적하기보다 “너희들 모두 즐거운 놀이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하고 싶구나”라고 아이(들)의 본질적인 의도를 읽어 준다. 아이 내면에 긍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 주고 그 믿음을 표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의도를 이해해 주고 난 다음, 어른의 입장,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어떤지, 어떻게 전체적인 그림을 봐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가령 위에서 언급한 예를 다시 들자면, “OO는 엄마랑 늘 함께 있고 싶을만큼 엄마를 좋아하는구나. 엄마도 OO가 정말 좋고, 늘 같이 있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화장실이 급하니까 얼른 화장실에 다녀와서 함께 놀까?”라고 할 수 있겠다.

 

 

긍정적인 감정의 표현

가까운 사이일수록 긍정적인 감정을 자주 표현하지 않는다. 흔히 긍정적인 감정은 가까워지고 싶은 사이, 즉 아직은 가깝지 않은 사이에서 많이 표현되는 것 같다. 부모-자녀 관계에서도 가깝다고 생각되는 언젠가부터 긍정적인 감정의 표현이 줄어든다. 아이가 아기였을 때는 “예쁘다”, “귀엽다”, “사랑스럽다”는 말을 달고 살다가도 아이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면 긍정적인 감정이 있어도 잘 표현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표현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특히 구체적으로 상대에 대해 어떤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감정은 명료하고 구체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예를 들어 “엄마는 OO가 좋아”라고 하는 것보다는 “엄마는 OO가 참 따뜻한 아이라고 생각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그저‘좋다’는 말은 애매모호한 말이다. 무엇이, 어떤 점이 좋은지를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긍정적인 감정은 판단이 아닌 본인의 느낌을 중심으로 표현해야 한다. 위의 예를 다시 보자. “OO는 따뜻한 아이인 것 같아”라는 판단보다 “OO가 참 따뜻한 아이라는 게 느껴져”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다는 의미이다. 더 효과적인 대화가 되기 위해 긍정적인 감정의 구체적인 이유도 함께 이야기 하면 좋다. 위의 예에서 “OO가 동생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걸 보니 OO는 참 따뜻한 아이라는 게 느껴져”라고 말한다면 긍정적인 감정의 이유가 전달될 것이다. 구체적인 이유가 함께 제시될 때 긍정적인 정서의 진실성이 더 높게 평가된다.

 

긍정적인 감정의 표현은 단순히 관계의 개선을 넘어서 아이가 자신을 어떻게 보게 되는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랑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는 자신을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지각하고, ‘따뜻하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는 자신을 따뜻한 사람으로 지각한다. 흔히 학자들은 이러한 자기 평가(self-evaluation)가 만 3세부터 시작된다고 하지만 아이가 만 3세가 훨씬 넘었다고 해도 늦지 않다. 자기충족적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일명 피그말리온 효과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가 믿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아이의 나이가 증가하였다고 해도 긍정적인 자기충족적예언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아낌없이 그리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

우리는 흔히 자신의 부정적인 정서를 잘 조절하는 경우를 정서적으로 유능한 사람이라고 판단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적절히 표현을 하지 않고 참기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사람의 전반적인 기분은 회복이 더디고 급기야 부정적인 감정이 우회적으로 엉뚱한 곳에서 부적절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또한 정작 자신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킨 상대방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알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긍정적인 정서와 함께 부정적인 정서 또한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 자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부모는 자녀보다 나이가 많고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는 이유로 공격적인 방식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가령, 비판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말, 그리고 통제하려고 하거나 심지어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투의 말이 그러한 표현의 예이다. “너는 나쁘다”, “네가 잘못이다”, “앞으로 그러지 마”,  “그럴 자격이 없어”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앞서서 살펴보았듯, 부정적인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방법을 모르거나 타이밍을 놓쳐 무작정 참는 것 또는 충동적으로 부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먼저 일인칭 표현법(I message)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너는 왜 그 모양이니?”라는 말보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속상하고 화가 나”라고 하는 것이 좋다. “네가 감히 나를 무시해?”라는 말보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는 무시당하는 느낌이었어”라고 하는 것이 좋다. 한편 부모는 자녀에게 바람을 전달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녀에게 규제를 하는 방식보다 자녀에게 기대하는 욕구나 소망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컴퓨터 게임은 하지마”라고 하는 것보다는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보다 독서를 해 주기를 바라”라고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우리는 자녀와의 효과적인 대화를 위해 자녀의 의도, 특히 긍정적인 의도를 잘 파악하여 반영해야 하고, 긍정적, 부정적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함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우리 집에 찾아 온 손님은 우리에게 우호적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손님에 대한 긍정적인 코멘트를 애써 숨기지 않는다. 손님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 자녀에게도 이렇게 대하면 어떨까?

 

자녀는 손님이다. 부모의 인생에 통째로 들어온 손님. 물론 의사소통을 할 때, 한 두 번의 변화 시도로 관계가 개선되거나 대화가 원활해지지는 않을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 어색하여 그만두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대화 방식이 익숙해 질 때까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자녀의 연령에 따라 함께 이러한 대화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 서로 대화 방식을 조정해 나가는 것도 좋겠다. 모든 가정에서 가장 귀한 손님과 건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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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설] 미투와 치협 공백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운겨울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북한의 갑작스러운 참가와 주변 강대국들과의 정치적 입장으로 파행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지만, 올림픽 정신과 추억, 수많은 화제를 남기고 무사히 마무리됐다. 그리고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길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루한 겨울도 끝났다. 꽃샘추위가 남았겠지만 봄은 어김없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오랫동안 권력 앞에서 무릎 꿇고 성추행과 성폭행에 시달려온 사회적 약자들 고발운동인 ‘미투’는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유명인들에 대한 고발은 치명적이어서 충격과 효과를 주겠지만 생활 속 깊이 파고든 어두운 관행 속에서 고발자만 피해를 보는 상황은 여전하다. 권력과 돈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갑질(성희롱·성추행·성폭행)을 추방하려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고발자가 되고 피해자를 한 식구처럼 대하고 보호해야 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피해자 대부분은 그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거나,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판단으로 포기했고, 결국 피해는 묻혔고 악순환은 반복됐다. 그러나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모두가 단합해 ‘미투’ 운동 분위기를 잘 살려 나가야겠다.
[논 단] # 미 투 # 위드 유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연일 뉴스를 열면 각계 각층의 원로인사나 주요인물들의 성폭력 과거사가 폭로되고 미투와 위드유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이렇게까지 악질적으로,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일어난 일들이 어떻게 묻혀 있었을까?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발언이 가져온 사회적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내 주위의 여성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올 것이 왔다고.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한 번도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해보지 않은 여성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집요하게 팔뚝 안쪽의 살만 꼬집던 선생님, 속옷 끈을 잡아당기는 걸 장난이랍시고 하던 선생님, 과MT에서 일방적인 스킨십을 해놓고 너도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느물거리던 선배, 인턴 레지던트 때 과회식을 가면 항상 교수님 곁에 여선생을 앉혀야 한다고 하고 교수님과 블루스 추기를 강요하던 선배, 공적인 관계임에도 계속 개인톡으로 성적인 암시를 주는 유머와 사진을 보내는 동료….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나이를 먹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매년 실망스런 경험으로 무참히 짓밟힌다.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왜 말하지 않았냐는 분들도 있다. 어렸을 때 조직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여성을 잘나가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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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격동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4.19 이후 군사정권부터 문민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경제적 고도 성장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은 격동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예전에는 경제적인 면이었다면 지금은 정신·정서·문화적인 면에서 격동의 시대이다. 요즘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은 정신문화적 격동의 시대를 보여준다. 미투 사건은 개인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어느 사회든지 비열한 인간들이 있다. 많고 적음이 문제이다. 비열한 인간은 대상에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위와 힘을 이용해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들이 여성에게 행하는 비열함의 하나가 미투이다. 두 번째 사회적 면에서 보면 한국 여성들이 그동안 변질된 가부장적 폐습 아래에서 고통받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가부장 사회의 기본은 가부장의 철저한 도덕성에 기초한다. 그런 사회에서 도덕성 변질은 심한 사회적인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사회는 조선시대 사회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유교의 도덕성을 기본으로 한 가부장적 사회였다. 유학 중에서도 가장 도덕성을 강조한 주자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학을 전공한 일본인 교수 오구라 기조는 ‘한국은 하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