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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치과생활

베트남, 어디까지 가봤니?

김덕 편집위원

 
베트남, 요즘 가장 핫하게 뜨고 있는 여행지이다.
월남이란 말을 쓴다면 완전 아재일 것이고, 비엣남이란 말을 쓴다면 글로벌하다고나 해야 할까…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종전(1954년) 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이때 북위 17도 인근의 벤하이 강을 경계선으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남베트남과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북베트남으로 분단되었다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전쟁) 이후 1975년도에 북베트남에 의해 통일이 된 국가이다.

필자는 지난 추석 연휴를 이용해 인천 → 호치민 → 다낭 → 하노이 → 인천의 코스로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는데, 추후 베트남 자유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 글을 쓴다. 단 필자의 주관적 의견이 강하니 참고 바란다.

베트남은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느린 시차를 가진다. 남북 간의 최대 거리가 1,600km에 이르며 한반도 면적의 약 1.5배로 인구가 거의 1억 명에 육박하는 나라다. 특히 베트남 전쟁 종전 이후 급속도로 베이비붐 세대가 팽창하여 인구 대비 젊은 층의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로, 국민성이 근면하고 성실하고 젊은 노동력이 풍부하여 발전 잠재력이 아주 큰 나라이다.

화폐 단위는 동이며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20 수준이다. 인플레가 아주 심해 최소 화폐가 100동이며, 50만동까지 다양한 종류의 화폐가 사용되는데, 동전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지폐가 주로 사용된다. 특히 모든 지폐에는 호치민의 얼굴이 그려진 비슷한 디자인이어서 자칫 실수할 우려가 있으니 현금 거래 시 꼭 확인을 해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아직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1/10 정도이지만 미국과 싸워 이긴 유일한 나라라는 민족적 자긍심이 강하다. 독일 통일 이전에 분단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한 국가로, 우리나라도 남북통일 이후의 민족의 화합과 경제 발전에 관한 교훈을 독일 뿐만 아니라 베트남으로부터도 배워야 할 것이다.

호치민은 과거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이었으나 통일 후 베트남 건국과 통일의 아버지인 호치민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베트남 제1의 도시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이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수도였기에 지금도 프랑스풍의 멋진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시내에는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오페라 하우스, 중앙우체국 등 유럽풍의 멋진 건물과 노텔담 성당 등이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또한 도심 가운데 있는 벤탄 마켓에 가면 온갖 짝퉁 물건들과 함께 각종 베트남 현지 음식과 과일, 커피, 특산품 등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호치민 공항(딴손넛 국제공항)은 시내에서 멀지 않아 시 외곽에 숙소를 잡지만 않는다면 우리돈 7~8천원으로 공항에서 호텔까지 택시 이용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베트남 택시의 바가지 요금이 심했으나 요즘은 어디서나 가능한 인터넷 덕분에 택시들도 대부분 미터 요금으로 운행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 비나선(Vinasun)이나 마일린(Mailinh) 회사를 추천한다. 택시 요금 자체가 워낙 저렴하지만 소형 4인승과 밴 7인승의 차량 크기에 따라 요금차이가 있으니 일행의 숫자나 짐 유무에 따라 택시를 선택하면 된다.

호치민 시내의 관광지는 대부분 가까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하루면 시내 관광이 가능하다. 그래서 외곽 관광을 추천하는데 베트남 최대 여행사인 신투어리스트(www.thesinhtourist.vn)를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코스의 관광이 가능하다. 당일치기라면 대부분 구찌터널 관광과 메콩델타 투어를 추천하는데, 구찌터널은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콩들이 게릴라전을 위해 뚫어 놓은 땅굴로 아직도 전쟁의 상처와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메콩델타 투어는 메콩강 하류에 발달된 삼각주 일대를 관광하는 것인데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문화,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가성비 최고의 관광코스라 생각한다. 

 
 
다낭은 호치민으로부터 북쪽으로 600여 km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야 한다. 얼마전 종편의 한 여행 프로그램에도 다낭이 여행지로 나왔는데, 휴식과 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가족 여행지로는 최고가 아닐까 감히 얘기해 본다. 

다낭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의 길이가 20여 km에 달하는데, 각기 독립된 지역에 위치한 아주 고급스러운 리조트들과 시내와 인접한 관광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어린아이를 동반하여 한 곳에서만 휴양할 계획이 아니라면 시내와 인접한 곳에 숙소를 잡기를 추천한다. 독립된 각각의 유명 리조트들은 고급스럽고 편하긴 하지만, 마사지를 받거나 현지 체험을 위해서는 일일이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할 수 있다. 시내와 인접한 해변의 호텔들도 최고급은 아닐지라도 나름 필요한 부대시설은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유아를 동반하지 않는 여행이라면 시내와 인접한 곳에 숙소를 잡아 현지 문화를 직접 체험해 보기를 추천한다. 뿐만 아니라 공항도 가까워 택시로 10여분이면 도착 가능하니 여러모로 편리하다.
 

 
다낭은 바닷가의 해변과 시내의 다낭 성당, 용 다리(Dragon bridge) 등을 제외하면 도시 자체에는 볼거리가 크게 없기 때문에 다낭에 여행 오게 되면 대개 호이안이나 후에, 바나힐 등 인접 지역으로 개별관광을 하게 된다. 후에는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기에 옛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데, 후에성은 중국의 자금성을 본따 만들어 작은 자금성이라 불리우며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바나힐 리조트는 과거 프랑스 통치 시절 프랑스인들이 더위를 피해 해발 1,500m의 내륙 고지대에 휴양지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케이블카를 타고 20여분을 올라가야 하는데, 산 정상에 지어진 프랑스 풍의 성곽과 예쁜 건물들, 그리고 베트남 사찰, 다양한 놀이시설과 볼거리 등이 들어서 있는 테마파크의 복합체이다.

 
 

 
 
호이안은 다낭 남쪽으로 차로 40여 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일부 호텔에서는 왕복 셔틀버스도 운행하니 묵을 숙소를 잘 선택하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과거 동남아의 최대 무역항이었던 호이안은 1999년에 old town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이곳에서는 베트남은 물론 과거 무역을 위해 정착한 중국, 일본, 인도,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문화를 함께 느낄 수 있다. 구시가지 거리 좌우에는 다양하고 맛있는 현지식을 파는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와 옛 유적지들을 함께 볼 수 있다. 또한 호치민이나 하노이에서는 혼잡한 거리와 오토바이의 매연 때문에 씨클로 타기가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은 여기에서 베트남의 명물인 씨클로를 타고 여유있게 구시가지를 둘러보기를 권한다. 밤이 되면 구시가지 거리는 오색 등불이 켜져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며, 시내를 흐르는 투본 강에는 소원등을 띄우기 위한 나룻배가 가득하다. 
 

현재 베트남의 수도로 정치, 행정의 중심지인 하노이는 1000년 전 리(李) 왕조 때부터 수도였는데, 북위 21도 근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계절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12월에서 3월까지는 건기에다가 날씨도 우리나라의 가을처럼 시원해 관광하기에 제일 좋은 계절이다.

과거 프랑스 지배의 영향으로 오페라 하우스, 성요셉 성당 등 프랑스 풍의 오래된 건물들이 old town 근처에 많이 남아 있고, 1945년 호치민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바딘광장 한켠에는 웅장한 화강암으로 지어진 호치민 묘가 있으며 그 인근에는 볼거리가 가득하다. 과거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했던 프랑스의 총독관저였던 주석궁이 화려한 유럽풍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호치민 생가, 호치민 박물관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국보 1호이자 가장 오래된 사찰인 ‘못꼿사원’은 반드시 둘러보아야 할 명소인데, 한 개의 기둥만을 가져서‘일주사(一柱寺)’라 불리운다. 또한 공자의 덕을 기리기 위해 1000년 전에 세운 문묘는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기도 한데 졸업 시즌이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대학생들로 붐빈다.


하노이 시내에는 300여 개의 호수가 있는데 그중 old town에 있는 ‘호안끼엠’이 하노이를 가장 대표하는 호수라 할 수 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호수 주위로 싱그러운 녹음이 어우러져 더위를 피하기에 좋고, 호수 북단에 놓인 아름다운 붉은색 목조 다리를 건너면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 ‘응옥손’으로 연결되는데, 응옥손에는 1865년 세워진 옥산 사당이 있다.
 
 
 
베트남 북부와 함께 인접한 중국 남부는 석회암이 빗물에 화학적 용해되어 침식된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이 나타는데 중국에는 ‘계림(桂林)’, 베트남에는 ‘하롱베이’, ‘땀꼭’ 등이 있다. 한국에서 하노이 쪽으로 패키지 여행을 오게 되면 대부분 하롱베이가 포함되는데, 하롱베이는 하노이 시내에서 차로 편도 4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당일여행은 힘들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숙박을 하는 1박2일 코스가 대부분인 하롱베이 말고, 당일 여행이 가능한 땀꼭을 선택하였다. 

땀꼭은 하노이 남쪽으로 약 115㎞ 거리의 닌빈 인근에 위치해 있는데, 닌빈의 다른 명소인 호아루의 옛 왕조의 유적지를 함께 관광하게 된다. 평야를 흐르는 강 주변으로 수많은 기암괴석이 늘어선 모습은 마치 하롱베이의 모습을 축소한 것 같아 ‘육지의 하롱베이’라고도 부른다.  

땀꼭은 ‘세 개의 동굴’이라는 뜻인데 실제 이곳에는 기암괴석 아래 물위에 나즈막히 뚫린 세 개의 동굴이 있다. 동굴 관람을 포함해 응오동 강을 유람하는 투어는 사공이 노를 젓는 작은 배를 이용하는데 특이하게도 손이 아닌 발로 노를 젓는다. 2~3명 정도 탈 수 있는 작은 배를 타고 느릿하게 노를 저어 가면, 늘어선 석회암 괴석 사이를 휘감는 안개와 자연 절경이 어우러져 동양적이면서도 이국적인 풍광을 선사한다. 종유석과 석순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는 동굴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배에는 지붕이 없어 직사광선이 바로 내리쬐므로 땀꼭을 둘러볼 때는 양산이나 모자를 필히 지참해야 한다.

이외에도 해발 1,400~1,5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늘 가을 날씨 같아 골프투어를 많이 가는 달랏과 고급 휴양지가 많아 최근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나트랑(낫짱) 등 많은 관광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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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설] 미투와 치협 공백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운겨울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북한의 갑작스러운 참가와 주변 강대국들과의 정치적 입장으로 파행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지만, 올림픽 정신과 추억, 수많은 화제를 남기고 무사히 마무리됐다. 그리고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길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루한 겨울도 끝났다. 꽃샘추위가 남았겠지만 봄은 어김없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오랫동안 권력 앞에서 무릎 꿇고 성추행과 성폭행에 시달려온 사회적 약자들 고발운동인 ‘미투’는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유명인들에 대한 고발은 치명적이어서 충격과 효과를 주겠지만 생활 속 깊이 파고든 어두운 관행 속에서 고발자만 피해를 보는 상황은 여전하다. 권력과 돈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갑질(성희롱·성추행·성폭행)을 추방하려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고발자가 되고 피해자를 한 식구처럼 대하고 보호해야 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피해자 대부분은 그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거나,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판단으로 포기했고, 결국 피해는 묻혔고 악순환은 반복됐다. 그러나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모두가 단합해 ‘미투’ 운동 분위기를 잘 살려 나가야겠다.
[논 단] # 미 투 # 위드 유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연일 뉴스를 열면 각계 각층의 원로인사나 주요인물들의 성폭력 과거사가 폭로되고 미투와 위드유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이렇게까지 악질적으로,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일어난 일들이 어떻게 묻혀 있었을까?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발언이 가져온 사회적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내 주위의 여성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올 것이 왔다고.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한 번도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해보지 않은 여성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집요하게 팔뚝 안쪽의 살만 꼬집던 선생님, 속옷 끈을 잡아당기는 걸 장난이랍시고 하던 선생님, 과MT에서 일방적인 스킨십을 해놓고 너도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느물거리던 선배, 인턴 레지던트 때 과회식을 가면 항상 교수님 곁에 여선생을 앉혀야 한다고 하고 교수님과 블루스 추기를 강요하던 선배, 공적인 관계임에도 계속 개인톡으로 성적인 암시를 주는 유머와 사진을 보내는 동료….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나이를 먹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매년 실망스런 경험으로 무참히 짓밟힌다.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왜 말하지 않았냐는 분들도 있다. 어렸을 때 조직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여성을 잘나가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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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격동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4.19 이후 군사정권부터 문민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경제적 고도 성장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은 격동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예전에는 경제적인 면이었다면 지금은 정신·정서·문화적인 면에서 격동의 시대이다. 요즘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은 정신문화적 격동의 시대를 보여준다. 미투 사건은 개인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어느 사회든지 비열한 인간들이 있다. 많고 적음이 문제이다. 비열한 인간은 대상에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위와 힘을 이용해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들이 여성에게 행하는 비열함의 하나가 미투이다. 두 번째 사회적 면에서 보면 한국 여성들이 그동안 변질된 가부장적 폐습 아래에서 고통받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가부장 사회의 기본은 가부장의 철저한 도덕성에 기초한다. 그런 사회에서 도덕성 변질은 심한 사회적인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사회는 조선시대 사회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유교의 도덕성을 기본으로 한 가부장적 사회였다. 유학 중에서도 가장 도덕성을 강조한 주자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학을 전공한 일본인 교수 오구라 기조는 ‘한국은 하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