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돈과 권력 하에서 묵인되어 온 갑질이 기존의 관행과 관념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동종직업군(특히 전문직종일수록)의 내리 갑질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몇 년 전엔 교수가 조교에게, 고참조교가 신입조교에게 행해진 충격적인 갑질이 보도된 적 있었다. 백화점 직원 ‘무릎사과’도 SNS로 퍼져나갔다. 치즈통행세를 물리고 갑질행태에 항의하면 집요하게 보복하고, 자서전 강매 등 갑질의 끝판왕이라는 미스터피자의 사례를 보면서 사람들은 분노했다.
최근에도 갑질 때문에 망신을 당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대한항공 회향 사건과 직원에게 물을 뿌린 이른바 ‘물컵 갑질’ 등 총수일가의 갑질이 연일 터져 국민들을 경악시키고 있다. 갑을관계(권력에 의한 상하관계라는 의미)를 치과의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거래처들(치과기공소, 재료상 등)에게는 갑이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치과의사의 갑질에 대한 폭로성 글이 올라왔다. 어느 치과의사가 기공소장에게 보낸 카톡이었다. 보철물이 잘 맞지 않았는지 기공사에게 심하게 욕을 하고 소장이 직접 재제작하라는 메시지였다. 무심결에 필자도 비슷한 갑질을 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또한 치과재료 영업사원들에게 무심코 하는 크고 작은 갑질의 사례들을 듣고 보게 된다. 그리고 치과의원 내 직원들에게 갑질을 한 사건들을 듣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 구인난에 시달리는 치과계는 갑질의 추억조차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직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을에 가깝다. 아무리 수평적인 관계라도 지시사항과 업무교육 등은 반드시 해야 할 일임에도 그렇지 못하고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재정립이 필요하다. 갑과 을이 아닌 업무 파트너로서의 팀워크가 필요하다.
치과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많이 변했다. 예전엔 의사의 갑질에도 환자들은 무조건 따르는 분위기였지만, 서비스산업의 발달과 개원의의 급격한 증가로 갑과 을의 관계가 바뀌었다. 뚜렷하지 않은 사실을 의료사고로 몰아가고, 난동을 부리지 않을 테니 돈을 요구하는 진상환자가 대표적 유형이다.
병원의 경영을 걱정하는 의사들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기도 한다. 의료사고로 보상을 얘기할 때도 도덕적 사과와 법적인 보상으로 해결되는 것이 마땅한 법치국가인데, 진상환자들은 끝까지 괴롭히면서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이제 환자와 치과의사는 상호 대등한 관계에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확립되어야 한다. 상식에서 벗어나 갑질하고 손놈(손님을 악의적으로 낮춰 부르는 은어) 짓하는 환자는 어느 누구도 옹호해주지 말아야 하며, 이는 손놈이 난립하는 것을 사회적 구성원들이 함께 방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 창업자 허브 갤러허는 “고객은 항상 옳다는 말은 틀렸다. 그것은 직원을 배신하는 행위다. 가치 있는 고객만이 대접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손님은 왕이 아니며 항상 옳지도 않다. 환자는 돈을 주는 조건으로 해당 진료를 제공받는 계약자이지, 갑이 아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정해진 원칙을 무시하고 상대를 우습게 보는 환자에게 무례한 갑질을 당한 직원은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킬 권리가 있고 병원은 그러한 직원을 존중하고 보호해줘야 한다.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돈과 권력으로 편중되다 보니, 이런 전통의 가치관을 지키기에는 너무 힘겨운 상태가 되어 버렸다. 환자와 의사, 직원간의 관계는 갑을이 아닌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치과의사는 아픈 사람을 가엽게 여기고 치료에 임하는 긍휼지심을 가지고, 환자는 그 마음을 믿고 따라야 그 사회가 선순환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