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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야기

꿀벌과 말벌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483)
최용현 대한심신치의학회 부회장

아침에 출근해 옷을 갈아입는데 벽에 무엇인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말벌이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병원 창문을 열어두면 많은 동물이 날아들어 온다. 여름밤이면 하루살이들이 불빛을 보고 날아들어 문 열기가 어렵다. 이따금 새도 들어온다. 참새, 비둘기, 이름 모를 새도 있었다. 한 번은 몇 시간을 나가지 못해 119를 부른 적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불청객이 말벌이다. 방충제를 준비하고 파리채로 한방에 잡아야 했다. 놓치고 날아다니면 직원이나 환자에게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꿀벌이라면 죽이지 않고 나갈 때까지 기다려도 되는데…”라는 필자의 말에 한 직원이 “뭐가 다른데요?”라고 반문했다. “많이 다르지요”라고 답하고 꿀벌과 말벌의 차이와 방치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선 가장 큰 차이는 독침 모양이다. 꿀벌은 갈고리 모양이라서 침을 쏘면 뺄 수가 없고 침과 내장이 연결돼있어서 빼는 순간 죽는다. 반면 말벌은 바늘 모양으로 반복해 찌르는 것이 가능하다. 꿀벌은 목숨을 걸고 찔러야 하기 때문에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반면 말벌은 공격성이 강하다. 물론 먹이도 다르다. 꿀벌은 새끼들에게 꽃가루를 공급하지만 말벌은 벌레를 공급해준다. 종종 보이는 꿀벌 다리 쪽이나 배 쪽에 노란색으로 볼록한 것이 새끼에게 먹일 꽃가루를 모아놓은 것이다. 말벌은 이런 이유로 필자에게 일타에 죽을 수밖에 없었다. 말벌 입장에서는 필자에게 해를 끼친 것이 없이 그저 벽에 붙어 있었을 뿐이라고 억울해서 항변할 수 있을 법하다.


이런 차이를 동양학에서 성(性)이라하였다. 원천적으로 타고 나는 성질을 성이라 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용어도 이런 의미이다. 장미와 국화가 다른 꽃을 피우는 것도 성(性)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이란 다를 수밖에 없는 원천적인 이유로 차이를 만든다. 남성·여성이란 용어는 다른 성질인 것을 의미하고, 남자·여자란 용어는 대응관계를 의미한다. 내적인 성(性)은 밖으로 나타나게 된다. 마음에 나타나면 심성이고, 물건에 나타나면 품성이다.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면 성향이고, 패턴을 지니면 성격이다. 공자가 추구한 최고 경지가 성(性)이다. 인간이 가장 원천적인 마음에 이르는 것이고,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길)을 도교에서 도(道)라 하였다. 불교에서는 불성이라 표현하였다.

 

요즘 대부분 사람들은 성(性)을 Sex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영어 Sex를 성(性)으로 번역하면서 생긴 문제인 듯하다. 아주 작은 의미에서 맞는 해석이지만, 동양학에서 성(性)이 지닌 의미에는 못 미치는 안타까움이 있다. 과거 서당에서 유학의 가장 기본 개념인 성(性)를 가르치며, 제일 처음 성품과 심성을 교육하였다. 성에 이르기 위한 가르침이 유교이고, 그것을 배우는 사람이 유생이며, 그 방법을 경(敬)이라 하였다. 요즘 도(道)라 하면 마치 도술을 부리거나 무슨 부적이나 쓰는 그런 뉘앙스지만 원래는 수행하는 방법을 의미하였다. 존경(尊敬)이란 단어도 타인을 존중하는 수행 방법이었다.

 

학교교육이 현대화되면서 마음과 수행에 대한 부분이 배제되었고, 조선 500년을 지탱해온 학문과 도덕의 기본 개념이 완전히 사라졌다. 잔존된 용어마저 성(性)처럼 의미가 변했다. 의미가 변한 것보다는 축소되었다. 현대인에게 심성과 성품의 가치가 축소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넓은 의미인 성(性)의 개념을 현대인이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불교에서는 여여(如如)라 하였다. 그것을 완성하면 성(聖)이다. 유교는 노력하여 이루는 단계적 개념이고, 불교는 있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는 개념차일 뿐이다. 그래서 깨달은 자를 성인(聖人) 혹은 성자(聖子)라 한다.


현대에 성인이 적은 것도 원천적으로 교육받지 못한 탓이다. 요즘 사회가 상식과 멀어지고, 혼란스럽고, 옳고 그름이 사라지고, 원칙이 무너지고, 가짜뉴스가 판치고, 사이비가 극성에 달하고, 범죄가 극단에 이르는 모든 이유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마음에 대한 교육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는 행동을 지배하는 심성을 맨 처음 가르쳤다. 우리는 참 현명한 선조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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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신문 편집인 칼럼] 회원을 위한 자리매김, 전시회
지난 13일부터 사흘간 YESDEX가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는 100명대로, 지난 6월 SIDEX 개최 당시보다 심각한 상황이기는 하였으나 정부의 명확한 거리두기 지침과 사회적 방역시스템이 성숙한 까닭에 혼란 없이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주변 개원의들을 만나보면 올 한해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재택근무 확산이나 모임 최소화 등에 따라 치과 치료를 더 많이 받았던 것인지 매출 감소는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에 비해 덜한 편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치과 관련 기업들의 실적 데이터를 보아도 추정할 수 있는데, 국내보다 심각한 해외의 코로나 감염 상황을 고려하면 국내 영업실적이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각종 기자재전시회가 취소되고, 상반기에는 사회적 시스템의 미성숙에서 기인한 혼란으로 대면 영업이 위축된 결과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많은 어려움이 감지되고 있다. 대면 행사의 축소는 치과의사들에게도 불편함을 준다. 올해 치과용 엑스레이가 3대 이상 전시된 것을 본 게 이번 YESDEX가 처음이라는 농담 섞인 소리가 전시회장에서 나왔을 정도로,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
[치과신문 논단]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치과 세미나 변화
최근 방역수칙이 엄밀해지면서 치과계의 학술대회와 세미나도 기존의 대면 방식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예년 같으면 각 학회의 추계학술대회와 각 지부의 권역별 학술대회 및 전시회 등이 활발하게 열리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축제가 되는 시절이나 올해는 매우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변해 버렸다. 궁여지책으로 온라인 학술대회로 전환하고 동영상 강의를 준비하는 곳이 많아졌다. 이제 동영상 강의는 또 하나의 학술 트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 이 중에는 소위 대박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온라인 학술대회도 있었다. 필자도 처음에는 온라인 학술대회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직접 현장에 가서 들어야 집중력도 더 생기고, 또 같은 관심사를 가진 여러 치과의사와 교류의 장이 좋았다. 덤으로 전시부스를 돌아보며 양질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기존 대면 학술세미나와 비교해 너무 초라하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온라인 학술세미나의 효용성에 의심이 갔었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학술대회를 살펴보니 매우 좋은 점이 많이 보여 오늘 필자의 느낌을 글로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강의는 기존 학술세미나와 비교해 많은 장점이 있다. 첫째, 여러 주제를 다양하게 다룰 수 있다. 기존 대면 학술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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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와 풀소유
요즘 세간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집필하신 스님이 좋은 집에서 사는 모습으로 방송에 나가고부터 ‘무소유’를 쓰신 법정스님과 비교되어 ‘풀소유’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에 선승이셨던 숭산스님의 외국인 제자인 스님이 비난을 하다가 전화통화 후에 다시 칭찬을 하며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불교적 개념에서 보면 두 사건은 하나도 논란이 되지 않는, 의미 없는 일이다. 우선 ‘풀소유’의 반대가 ‘무소유’가 아니다. 일반 사람들은 ‘무소유(無所有)’를 한자로 해석하여 ‘소유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른 의미가 있다. 불교에서 무소유란 수행 단계 중 하나이다. 수행 단계가 9가지가 있으며, 그중 8번째 단계를 ‘무소유처’라고 부르며 ‘무한의식을 뛰어넘어 아무것도 없는 경지’라고 한다. 법정스님이 책 제목을 여기서 따오며,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행으로 소유하지 않는 기본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인 듯하다. 불교의 기본개념은 ‘중도’로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악이란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중도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선은 당연한 기본이기 때문이다. 선하면 악을 이해하고 비로소 ‘중도’에
치과경영지원 10년차, 김부장이 전하는 치과생활 리얼 스토리 - 마지막회
가정이든 직장생활 속에서든 누구나 힘든 일은 있습니다. 특히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나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직장생활 잘하는 법은 누구에게나 고민일 것입니다. 2014년에 방영되었던 직장인의 교과서 ‘미생’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사람이 전부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사람이라고요. 일을 하는 사람, 일을 만들 줄 아는 사람.” ‘회사 간다’라는 건 내 ‘상사’를 만나러 가는 거죠. 상사가 곧 회사죠. 상사가 좋으면 회사가 천국. 상사가 좋지 않으면 회사가 지옥. 직장생활에서의 힘듦은 8할이 인간관계의 힘듦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는 좋아하는 찌개도, 좋아하는 음료도, 좋아하는 동물도, 좋아하는 최애(最愛)도 다른,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늘 즐겁게 지낼 수는 없겠죠. 직장생활의 인간관계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경험했던 인간관계와는 굉장히 다른 새로운 분위기의 인간관계입니다. 이해관계로 얽힌 인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 때문에 친해졌다면 술이 없으면 깨지는 인연, 돈 때문에 맺어졌다면 돈이 없으면 깨지는 인연. 이해관계로 맺어진 인연이라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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