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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치과생활

같은 세계, 두 개의 삶 '치과의사 김성훈'

글/ 양주희 기자
사진/ 김성훈 치과의사

 

자신이 가진 직업군에서 일정한 인지도를 얻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을 종종 이야기하곤 하는데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1만 시간은 매일 3시간씩 훈련할 경우 약 10년, 하루 10시간씩 투자할 경우 3년이 걸린다. 그만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대중의 인정을 받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 만날 이 사람이 같은 세계에서 두 개의 삶을 균형있게 살아가는 방식이 궁금한 이유다.

 

치과의사이자 번역가, 김성훈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을 1996년도에 졸업, 구강내과를 전공하고 페이닥터로 일하던 중 2009년 봄, 진료의로서의 치과의사 생활은 접고 번역가로만 활동하다가 3년 전부터 구강검진의를 병행하고 있다. 그가 치과의사로 일하다가 번역가라는 직업으로만 살았던 이유는 의외였다.


“페이닥터로 일하는 동안 치과의사라는 삶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과감히 치과의사를 관두고 번역활동만 하며 지냈어요. 3년 전부터 오전에 구강검진의로 같이 일하고 있는데, 이런 말씀 드리는 게 맞나 싶지만 왜 치과의사라는 일이 나와 맞지 않는 것인지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질문 중이에요.”


치과의사와 번역가를 병행하고 있는 지금도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나름의 가설을 세워보며 해답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답은 구하지 못한 상태다. 그에게 치의학은 학문적으로만 접근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특성이 정말 많은 분야다. 하지만 임상이나 개원 같은 실무적 부분으로 접근하려면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처럼 스트레스가 많이 느껴진다. 처음 치과의사를 그만두고 싶어했을 때는 학문적 접근과 임상적 접근 사이에서 드는 회의감이 극에 달한 상태라 어떤 탈출구가 있지 않고서는 버텨내기 힘들 것 같았다.


“그때 어렴풋이 번역가에 대한 로드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학부 때 선배님 부탁으로 원서 리포트 번역을 대신 해줬을 때나, 재시험이나 과제로 번역 과제를 받았을 때를 돌이켜보면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강원도에서 공보의를 했었는데 플라이 낚시가 취미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플라이 낚시는 우리나라에서 낯설던 때라 관련 자료가 거의 없었다고 보면 돼요. 취미를 더 잘 하기 위해 공부도 할 겸 찾았던 인터넷 자료나 원서들을 틈틈이 번역해서 당시 유행했던 하이텔에도 올리고 홈페이지도 만들어서 번역본을 올렸는데 플라이 낚시 동호인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어요.”


남다른 취미가 그를 또 다른 직업의 길로 이끈 셈이다. 인터뷰 당시 기자가 가져온 자신의 자료양에 스스로도 놀랐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내내 고민하고 있던 치과의사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번역가의 길을 선택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주변에서 가끔 물어봐요. 외국어 잘하는 비법이 뭐냐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좀 부끄럽기도 해요. 사실 외국에서 살았던 적도 없고 영어 공부도 고등학교 졸업 후에 따로 해본 적 없이 번역가의 길로 뛰어든 거라서요. 영한 번역만 하고 있는데, 번역일을 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우리말 구사 능력의 중요성이에요.”


어찌 보면 그의 잠재된 언어 능력이 번역 관련 학습을 거치면서 극대화된 것은 아닐까? 단순히 영어 실력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는 인터넷 번역 카페에 가입해 번역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번역 에이전시에서 진행하는 강좌를 수강했고, 과정을 이수한 이후 바로 일감을 받게 되었다. 스스로를 운이 좋다고 평한 그는 치과의사를 그만두고 한 달여 간 백수로 지낸 이후에 받은 첫 일감이라 기쁘기도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며 크게 웃었다.

 


언어의 마술사, 번역가
치과의사 출신이란 점은 번역가로 자리잡는데 큰 도움을 줬다. 자연스레 의학, 과학 관련 서적 번역일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다. 지금은 출판 번역에 집중하고 있지만 살아숨쉬는 구어체 번역에도 관심이 많아서 영상 번역도 공부를 하고 있다. 언젠가는 영화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의 번역서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책은 어떤 것일까?


“과학서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구름 읽는 책』(도요새)입니다. 구름에 대해 과학적이면서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서적으로 번역하면서 원저자의 유려한 글솜씨에 감탄을 거듭했어요. 어렵고 난해한 책이 좋은 게 아니구나를 느끼게 해준 책입니다. 『암연대기』라는 책도 기억에 남아요. 물리학을 전공한 저자 조지 존슨이 아내가 암에 걸린 일을 계기로 암의 본질을 파헤치기로 결심하고 써 내려간 책이죠. 암에 관한 과학적 사실과 가족에 대한 문학적 감성이 잘 어우러진 책이라 느꼈습니다. 소설 중에는 『도살자들』과 정말 즐겁게 일했어요. 스릴러 소설인데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저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찰진 대화체를 번역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번역가로 10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가족을 비롯해 주변인들의 수많은 시선과 질문을 견뎌야했던 그다. 치과의사를 그만두면서 부모님에게 바로 말씀드리지 못했던 이유도 ‘치과의사란 좋은 직업을 마다하고 번역일을 뛰어드는 괴짜’라는 시선 때문이었다. 결국 들켜버렸지만 그의 선택을 이해하고 인정해주셨다. 때문에 항상 감사함을 품고 일한다. 그의 노력은 실력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2018년 『늙어감의 기술』이라는 책을 번역해서 36회 한국과학기술도서상에서 번역 부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상을 수상하게 된다. 출판사에서 출품을 했는데 수상까지 이어져서 자신의 번역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번역가는 외로운 직업이에요. 치과의사로는 환자를 만나거나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여러 사람들과의 사회적 접촉이 필수죠. 반면 번역은 혼자만의 작업이다 보니 생활에 특별한 이슈가 없는 편이에요. 혼자서 일정 관리부터 작업까지 하고 에이전시와 연락하는 게 대부분이죠. 제 성격이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다 보니 어쩌면 번역가는 제 삶의 맞춤정장 같다고 할까요? 거기에 지금까지 70권 넘게 작업하면서 마감을 한 번도 어긴 적도 없었고, 편집자를 저의 첫 독자라고 생각하며 노력한 것이 이쪽 분야에서 신뢰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한듯합니다.”

 

그가 하는 일을 보며 번역가를 꿈꾸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그가 시작한 시기와 달리 지금은 치의학이나 일반의학 분야에 대한 국제교류도 많아지고 우리나라 위상도 높아진 만큼 치과의사 혹은 의사가 번역가로 일을 한다면 블루오션이 될 것 같다고. 의학 전문 번역가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문 용어나 지식에서 미흡한 번역들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번역가에 대한 처우나 인식이 개선된다면 실제 전문가들의 번역가 병행이 늘어나고, 이는 독자들이 좋은 번역서를 접하게 되는 순기능으로 이어질 것이다.

 

 

두 개의 삶, 균형의 추를 맞추려면…
그에게 있어 번역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가 없다. ‘낱말이라는 블록으로 이야기를 쌓아올리는 레고놀이’이기 때문이다. 원문을 해체하고 우리말로 다시 문장을 구축해가는 작업을 하다보면 마치 놀이를 하듯 쉽게 빠져드는 재미가 있다.


“영어와 우리말의 구조가 다르고, 언어 감각이 달라서 글로 옮기기가 막막할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돌파구를 발견하면서 느끼는 짜릿한 쾌감은 해보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지금의 제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치과의사로서의 삶과 번역가로서의 삶, 이 두 개의 추를 균형있게 맞춰 나가는 일은 늘 숙제거든요. 지루한 듯 창조적인 즐거움이 바로 번역에 있어요. 치과의사란 일도 마찬가지에요. 루틴하게 흘러가는 일상이지만 그 일을 통해 얻는 것들도 있거든요.”


현재 그의 삶의 추는 어느쪽으로 기울어져 있을까? 그는 매순간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에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 있다.


“원래 과학자가 꿈이었고 번역도 과학 분야가 주를 이루죠. 언젠가는 제 손으로 과학서적을 한 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일기 쓰듯이 과학적 의문점을 써놓은 게 있는데 그걸 토대로 가능성을 타진해보려고 해요. 이렇게 말씀드려놓으니 번역가로서의 이루고 싶은 꿈만 있는 것 같네요. 하하. 치과의사로서는 지금의 시간에 충실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해 비말 감염이 특히나 우려되는 동료 치과의사들이 안전하게 이 시기를 잘 이겨내시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같은 세계 속에서 두 개의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균형의 추를 물어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삶에 대한 고민은 늘 있는 법이니까.

 

 

사진

김성훈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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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신문 편집인 칼럼] 의료서비스 가격비교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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