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다시 쿠데타가 발생해 아웅산 수지가 구금되었다는 뉴스가 들린다. 그녀는 민주투사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음에도 정권을 잡고 소수인종을 탄압하여 비난을 받던 인물이다. 그녀가 변할 것과 변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던 부분이 아쉽다.
영국 속담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있다. 모 개그맨은 ‘일찍 일어나는 새는 피곤하다’고 빗대어 말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저자 쉘 실버스타인은 「일찍 일어나는 새」라는 시에서 벌레의 입장을 말했다. “만일 당신이 새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하지만 만일 당신이 벌레라면, 아주 늦게 일어나야 하겠지” 이 시는 통찰을 이야기한다. 새와 벌레란 신분이 아닌 상황에 대한 통찰이다. 벌레를 먹는 새는 작은 새이다. 벌레를 먹지 않는 큰 새를 만나면 작은 새가 벌레 입장이 된다. 이 속담은 ‘그러나 큰 새에게 빨리 잡힐 수도 있다’는 다음 문구가 빠져 있다. 이 속담은 게으르지 말라는 교훈을 담았다. 우리나라 속담엔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고 하였다. 이 두 속담의 차이는 유효기간이 다르다. 우리 속담은 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면 효력을 상실한다. 통찰이다. 교훈 속에 통찰이 같이 접목되어 있다.
우리는 학교 교육이나 사회 속에서 다수가 옳다고 믿는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알게 모르게 이유도 모르고 무조건 옳다는 맹목적 믿음을 지닌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이상 환경이 변하면 상황도 변한다. 그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통찰의 눈이 필요하다. 그림이나 조각 등에 등장하는 눈은 대부분 이런 통찰에 대한 표현이다. 일찍 일어나는 행동에 따른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상대성을 인식하는 통찰이다. 학교 교육은 일본이 독도를 교과서에 담듯이 통찰보다 사회에 필요한 내용과 인식을 심어 놓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신념이 진짜 옳은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에 대해 전체를 볼 수 있어야 진실에 근접한다. 아마도 영국 속담을 만든 사람은 하인이나 농부가 아닌 지주나 자본가였을 것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사람은 생활이기 때문에 일찍 일어난다는 생각이 없다. 어쩌다 늦게 일어난 하인을 꾸짖기 위해 만든 속담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통찰의 눈으로 보면 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빠진 속담인 것은 분명하다.
다른 관점에서 계절이 여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새는 여름만 사는 것이 아니다. 실버스타인은 스스로가 새인지 벌레인지를 생각해보라는 통찰을 말하였지만, 자신이 새라 하더라도 벌레를 먹는 작은 새라는 것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스스로 벌레를 잡을 수 있다는 우월한 자만에 빠지는 순간에 허점을 노리는 일찍 일어난 매나 독수리에게 기쁨을 준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 순간이 생각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고전들은 가르쳐 주고 있다.
공자가 위편삼절(韋編三絶)을 한 책이 ‘주역(역경)’이다. ‘주역’은 지금은 점치는 책 정도로 생각하지만, 공자가 평생을 연구하고 해설한 책이다. ‘주역’은 바뀜(역:易)이 기본이다.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는 변화를 말한다. 찰 때 이미 기울 것이 포함되고, 꽉 찬 것은 기울어짐의 시작이다. 소음에서 시작하여, 소음은 노음이 되고(차는 것이고 숙성되는 것), 노음은 소양으로 바뀌고(다 차면 새로운 것으로 바뀜), 소양은 노양으로 되고, 노양은 다시 소음으로 변하는 순환을 한다. 자연계는 64가지의 패턴으로 순환한다. 진리가 아닌 생각과 신념은 환경이 변하면 옳고 그름이 변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모두 변한다’는 진리뿐이다. 옳다는 믿음과 신념이 강할 때가 진짜 옳은가에 대하여 스스로 통찰할 때이다. 항상 옳은 사상도 철학도 없다. 다만 속도가 느리면 변화가 안 보일 때도 있다. 요즘은 모든 것이 빠르기 때문에 속도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떨어지는 사과는 멈추기 전에 가장 빠르다. 계속 빨라질 수 없을 때 변한다. 떨어져 멈춘 사과는 더 이상 사과가 아니고 씨로서 다시 시작한다. 떨어지든 멈추든 사과가 씨를 지니고 있음을 아는 것이 통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