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가에서 죽으면 다시 그날이 시작되며 반복되는 ‘Edge of Tomorrow’라는 영화가 흥행하였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죽으면 다시 시작되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이렇게 시간이 반복되는 영화가 설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러 개가 있었다. ‘사랑의 블랙홀’, ‘소스코드’, ‘어바웃타임’, ‘리피더스’, ‘혼령의 집’, ‘If only’ 등이 반복되는 시간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영화들이다. 그런데 영화들의 공통점이 있다. 일단 영화의 시작은 나름대로의 시간이 반복되는 이유를 합리화한다. 그 후에 반복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이루면 그 반복되는 시간에서 나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반복의 내용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한 행동을 숙련하는 것이 가장 많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상대방의 기억이 하루 동안만 유지됨으로 반복되는 행동을 해야 하는 ‘첫 키스만 50번째’라는 영화도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래된 90년대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이다. 유명한 기상 캐스터가 오지 마을에 취재를 갔다가 폭설로 발이 묶이고 그 곳에서 매일이 반복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무료하게 살던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을 위한 행동을 하는데 하루를 사용하며 행복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오늘이 뭔지 알아요? 오늘은 내일이에요”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겼다.
필자도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TV 뉴스를 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의 뉴스거리는 前 국회의장이 골프장에서 성추행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것과 비슷한 내용은 얼마 전 윤 대변인 사건으로 지겹게 들었던 것과 유사하다. 사람과 장소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그 다음 뉴스는 야당의 대표자가 탈당한다는 내용이다. 이 또한 몇 년을 주기로 듣는 이야기이다. 더불어 국회가 진행되지 않는단다. 이것은 항상 반복적으로 듣는 내용이다. 뉴스를 듣다가 문득 필자가 ‘사랑의 블랙홀’처럼 반복되는 시간에 빠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필자의 생활은 일주일을 주기로 반복된다. 하루를 보면 변함없이 출근하고 환자보고 다시 퇴근하는 반복이다. 그런데 세상도 반복한다. 다만 윤 대변인이 前 국회의장으로 바뀌고, 엉덩이에서 가슴으로 바뀐 것뿐이다. 제주도 某지검장 사건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이런 반복을 보면서 영화에서와 같은 패턴을 생각해본다. 권력에 올인한 사람들은 인성을 쌓을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 인성을 갖출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취득한 권력으로 무엇이던지 가능한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서 겨우 가슴을 한번 귀여워서 누른 것뿐인데 경찰서에 고발을 당하니 당사자는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가 있다. 시간이 반복되는 영화에도 반복되는 가운데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비록 반복은 되지만 같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변함없이 귀여우면 가슴을 눌렀지만 세상은 용납하지 않을 만큼 변한 것을 모르는 것이다. 동물이 진화하듯이 사회도 진화하여 간다. 前 국회의장이 어떻게 처리될지가 결국 우리 사회의 진화된 척도일 것이다. 물론 “오늘이 내일이에요”라는 대사처럼 내일은 또 제3의 누군가가 유사한 행위를 한 것이 뉴스에 뜰 것이다. 이것은 불행히도 반복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미성숙하고 불균형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스웨덴의 집권당이 좌익연합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당수가 배관공 출신이다. 직업이 배관공이고 노동자를 대변한다. 우리는 정치인의 직업이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다수가 변호사이다. 변호사는 직업이 아니고 정치인이 되기 위한 수단이란다. 성숙된 사회와 미성숙한 사회의 단적인 차이일 것이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 올인하고, 인성을 포기를 한 사람이 정치를 한 결과이다. 비록 내일이 오늘 같을지라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리가 말한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Tomorrow is another day”란 말에 희망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