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전북대를 가기 위하여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KTX에 올라 잠시 신문을 뒤적거리는데 한 칸 앞좌석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70대 노인이 남자승무원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다. 내용인즉, 20분 전쯤에 여자 승무원에게 좌석이 뒤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는데 금방 조치하겠다고 말하고는 전혀 연락이 없었단다. 또 여자 승무원은 늦도록 조취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고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남자 팀장 승무원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남자 팀장 승무원이 재차 사과를 하여도 계속해서 여자 승무원이 직접 와서 사과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여자 승무원이 와서 사과를 하고서야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이제 막 회사에 취직하여 처음 출근한 듯한 그 승무원의 모습을 보고 있는 필자의 마음이 내내 편하지 않았고 사건이 끝났음에도 노인의 행동이 과하였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저 어르신은 속은 시원하시겠지만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이제 막 취직한 듯 한 어린 여자 승무원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건을 뒤로 돌려보면, 노인은 불편함을 호소하였고 우리 기차가 3호차였으니 불편사항을 해결할 수 없는 여자 승무원은 남자 승무원에게 무전기로 바로 보고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뒤쪽 칸으로 일정대로 갔을 것이다. 한편 보고받은 남자 승무원은 뒤에서부터 차례로 오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지난번 철도노조 파업 사태 이후로 승무원 수가 대폭 축소되어서 민원을 빨리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을 것이다. 좌석이 뒤로 넘어가지 않는 사안은 좌석이 회전되어 바로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좌석만 조금 더 돌려서 바로잡으면 해결되는 문제다. 기차를 조금만 타본 사람도 아는 내용인 것을 여승무원이 몰랐기에 그녀가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라 추축되었다. 결국 승무원은 사무적 순서에 따라 일처리를 하였고, 노인에게는 시간적인 지연이 있었다. 그런데 노인은 그 시간지연을 참을 만큼의 인내력이 없었다. 그리고 그 여승무원은 두고두고 그 일에 대하여 억울해 하며 분노할 것이다.
요즘 아파트 경비원의 감정노동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 사회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강남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의 폭언을 감당하지 못한 53세 경비원이 분신자살을 시도하였다. 동료 경비원에 의하면 평소 일부 입주민의 인격 무시와 모욕적인 언행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한 입주민은 5층에서 먹다 남은 빵이나 과일을 ‘경비, 이거 먹어’라며 아래로 던졌다고 한다. 이를 먹지 않으면 왜 안 먹느냐고 질타해서 경비실 안에서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떤 경비원은 “우리는 수천명의 사장님을 모시고 삽니다”라는 표현하기도 하였다. 요즘은 경비나 청소 담당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용역 업체에 의뢰하기 때문에 민원 한번 제기하면 옳고 그름 없이 그만두어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경비원들은 싫은 내색조차 할 수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것을 미끼로 비인격적으로 인권을 유린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개인적인 성향으로 몰기에는 사회적인 책임이 크다.
모 신문사설에 실린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하는 부끄러운 사회’라는 문구가 많은 것을 시사하듯이 우리 사회의 미성숙한 모습이며 심각한 문제이다.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과거 20~30년 전의 우리 사회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최소한의 양심과 양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에서 그것이 사라졌다. 노인이 대접을 받았던 것은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노인이었다면 손주뻘되는 여승무원에게 화를 내고 사과를 받기보다는 다른 승무원에게 다시 부탁하였을 것이다. 30년 전에는 아파트에 살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으며 소양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른이 아닌 노인이 많고 소양도 없고 여유도 없으면서 을에게 갑질이나 하는 불쌍한 영혼들이 많다. 과연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