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니 기억나는 것은 기차로 시작하여 배를 지나 비행기로 끝나는 느낌이다.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시작한 한해가, 아직 철들지 않은 아이들의 참변을 지나서, 철없는 어른의 추악한 만행으로 끝나간다. 그 사태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 저변에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같이 공존했다. 그런 일들이 비록 타인에게 발생하였지만 언제든지 우리에게 발생 가능한 일이고 매일매일 그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체감 지수가 올라갔었다. 더불어 뉴스를 보면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마치 한편의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하여 요즘은 어지간한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 와중에도 어려운 경제 상황이 더욱 모두를 힘들게 한다. 그렇게 한해를 힘들게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다.
지나온 갑오년이 그런 해이다. 사실 한해를 돌아볼 때 한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근한 해를 같이 묶어서 생각한다. 즉 갑오년을 단독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임진년부터 시작하여 을미년까지 4년을 같은 흐름으로 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단독적인 것이 아니라 기승전결을 지니고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갑오년이 속한 시기의 기간을 과거 우리 역사 속에서 찾아보면 삼국시대엔 백제가 무너졌었고, 고려시대엔 마지막 왕조시대로 흘렀다. 조선에서는 태종에서 세종으로 전환되었으며, 임진왜란이 반발하였고, 조선말에는 갑오경장과 을미사변이 반발하였다. 이렇듯이 임진, 계사, 갑오, 을미년의 시간적인 흐름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였다. 과거의 역사에서 새로운 변화에 먼저 빨리 변화하면 부흥하였고 늦으면 빠르게 변화된 이들에게 당하면서 피동적으로 힘들게 변화되어왔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변화라는 것은 현상이 아니라 마음이 변해야 최종적으로 변한 것이다. 마음이 시작해야 비로소 사건이 시작된다. 하지만 환경은 마음이나 사건과 다르기 때문에 환경이 바뀌면 마음이 환경에 맞추어 변해야한다. 마음의 변화가 늦으면 늦을수록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여야 한다. 이는 한겨울이 오면 옷을 빨리 꺼내 입는 사람이 춥지 않은 이치와 같은 것이다. 선조 임금이 일본의 변화를 감지하고 생각이 빨리 변하였다면 임진왜란은 없었을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국 지금의 시절은 마음이 세상이라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변해야하는 때이다. 지금 환경 변화는 선진국 형태로의 변화이다. 즉 투명해지는 변화, 부정부패가 사라지는 변화, 뒷돈· 눈먼 돈이 사라지는 변화이다. 세월호의 유병언이 사망하였고, 해경은 공중 분해되었고 조씨항공의 부사장이 법정에 서는 이유이다.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투명사회라는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다가 생긴 참변이다. 환경에 가장 둔감한 군대가 변화에 맞추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군대보다도 변화에 늦는 기업들이 도태될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늘은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좀처럼 이른 아침에 기상하는 것을 싫어하는 필자이지만 귀국하는 딸아이 공항픽업을 하기 위하여 겨우겨우 일찍 일어나면서 몇 가지 생각이 스친다. 일찍 기상하는 것이 싫어서 골프마저 끊었던 필자가 딸 마중을 위하여 일찍 기상한다. 선친 산소에 벌초하러 갈 때 이외에는 처음 있는 일이다. 포항에 계신 곽 원장은 고3 따님을 위하여 사모님을 제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손수 도시락을 싸준다. 사진을 찍어 카톡에 올린 것을 보면서 부러웠었는데 필자도 이제 조금은 닮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어두운 새벽 차안에서 한해를 돌아보니 수많은 사건사고가 떠올랐다. 하지만 딸아이를 픽업 가는 기쁜 마음이 복잡하고 헝클어진 머릿속을 카타르시스하기에 충분하였다. 고3 딸을 위하여 1년간 아침 도시락을 손수 준비하신 곽 원장의 즐거움은 싸늘한 경기를 녹였을 것이다.
이제 며칠이면 갑오년이 지나고 을미년이 시작된다. 비록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힘겹더라도 작은 행복이 긴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