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서 누군가 던진 “지금의 세상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춘추전국시대”라고 답하였다. 지금의 시대는 정치와 지리적인 국경은 있으나 문화예술, 정신에 있어서는 국경이 없다. 대표적인 사람이 ‘싸이’다. 게다가 모든 분야에서 무한 경쟁이다. 요즘 치과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도 이런 맥락에서 연유하고 있다. 수가 파괴, 네트워크치과, 사무장치과, 소송, 전문의제도 등 산재되어 있는 사건들이 무관하지 않다. 조금 넓게 사회나 정치를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부산에서 일가족 5명이 동반 자살했다. 그런데 그들은 송파모녀사건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송파모녀사건은 극빈층의 자살이라면 이번 사건은 부유층이 가난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또 아버지와 아들이 각각 유서를 작성하였다. 아들의 자살을 막아야할 아버지가 방조하고 같이 자살을 선택하였다는 것이 충격인 것이다. 아버지는 세파를 견디고 자식을 설득하여야 할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가 자식과 같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는 것은 이미 우리 사회가 정치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문화와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혼돈의 시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에서 정신을 담당해야할 종교의 기능이 종교인들의 자질 문제로 멈추어가고 있다. 승려가 자기 땅이라는 이유로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길을 막아버리고, 목사가 자식의 유학비를 벌겠다고 보이스 피싱의 대포통장을 만들고 배달꾼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한 두 사람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마리 제비를 보아도 여름이 올 것을 아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동물적인 본능이다.
춘추전국시대라는 말은 한마디로 혼돈을 의미한다. 그런 혼돈을 막기 위해서는 혼돈이 어떻게 시작되었나를 알 필요는 있다. 과거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면서 수확량이 증가하고 급격히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다. 전체적으로 잘살게 되었고 나라 간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였다. 잘사는 나라는 더 많은 토지를 얻고 싶은 욕심으로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것이 춘추전국시대의 시작이다. 결국 인간의 욕심이 풍요를 전쟁으로 대치하였다. 이런 전쟁과 혼란 속에서 백성들의 고통을 본 공자는 인간 본연의 성품으로 돌아가야만 전쟁을 멈추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피력하려고 주유천하를 하였다. 그래서 공자가 살아있던 시기를 공자시대라고 하며 이때에 공자가 춘추라는 책을 집필하여서 춘추시대라고 부른다.
공자는 주역의 계사편에서 사회 각자 구성원들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아들은 아들의 역할을, 정치인은 정치인의 역할을, 즉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잘할 때 바른 사회가 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런 사상은 유교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사회와 통치이념으로 자리를 잡은 지 600년이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시대는 부산 가족사건을 통하여 판단해보면 공자를 통하여 구하기에는 상당히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돈의 시작은 경제적인 풍요에 인간의 욕심이 더하여 시작되었다. 결국 풍요해지면 혼돈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극심한 가난을 지나 이제 풍요로워졌다. 그러니 욕심에 의한 혼돈의 시대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내면에는 돈에 대한 욕심이 출발점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황혼 재혼이 증가하는데 자식들이 극심한 반대를 한다. 재혼하여 몇 십 년을 살다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면 자식들은 새엄마를 상대로 혼인무효소송을 한다. 부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국악인은 재혼하기 전에 모든 유산을 자식들에게 나누어주고 재혼하였다. 이 시대를 한마디로 대변하는 아주 현명한 행동이지만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이 남는다. 공자가 이 시대를 산다면 춘추시대보다 몇 배는 더 가슴 아파하고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공자보다는 그 국악인과 같이 시대를 이해한 새로운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