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치과계 신문을 읽다가 어떤 치과의사 포털사이트에서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회원 간에도 인신공격성 댓글이 난무한다는 우려의 글을 보았다. 더불어 그 글은 치과의사들이 기본적인 인성을 지니기를 당부하였다.
‘인성’이란 사람 人에 성품 性을 합하여 완성된 단어다. 즉 사람의 성품을 말한다. 性이란 마음 心에 날 生의 합성어다. 즉 마음이 시작되는 곳이란 의미다. 옛날 유교 교과서인 중용에서는 제일 처음을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 성(性)이고, 성에 따르는 것이 도(道)이며, 도를 수행하는 것이 교(敎)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이는 인성이 만들어진 이치이고 따라서 사람이 행하는 도리는 역순으로 교의 지침에 따라서 수행을 하여 도를 행하고 그러면 성을 알고 성을 알면 하늘의 뜻을 알아 하늘에 이른다는 의미다. 인간의 마음은 옛날부터 궁금증의 대상이었으며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였다. 따라서 동서고금을 통하여 성선설, 성악설 등 많은 주장들이 있었다.
그 중 공자는 인간의 마음을 성과 정으로 나누었다. 즉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性)과 성의 움직임에 따라서 발현되는 정(情)으로 나눈 것이다. 정은 간단히 이야기하면 감정이다. 그래서 7정이라 하여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싫음, 갈망)을 말한다. 이런 감정의 시작이 性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말로 표현하면 性은 하늘 본연의 가치기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정에서 희로애락은 기본적인 감정이고 애오욕은 욕망이다. 욕망에는 사랑, 미워함, 갈망이 있다. 욕망은 희로애락의 기본감정과 달리 부족함에서 생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채워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사랑과 증오와 갈망은 채울 수 없다. 이런 7정은 성이 어지러울 때 발현된다.
마음의 본체인 성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인 사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이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이 본성인 인의예지의 성에 도달하는 데 반하여 마음이 산란하고 복잡하면 7정이 요동치게 된다. 따라서 인성이 무너지면 욕망의 세계로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그 욕망의 시작은 부족한 것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끝이 없다. 반면 인성이 살아나면 7정이 고요해지면서 인의예지가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형이상학적인 기준의 性을 현대인들에게 물으면 오로지 sex(성욕)라는 단어로 인식하고 정의하고 있다. 물론 성욕 또한 종족 보존을 위한 생식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으로 性품의 한 부분이다. 이런 성품이 7정인 욕정에서 시작되면 그 끝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요즘은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인 욕정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된 것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프로이드의 오류이다. 하지만 프로이드는 종교에게 인성마저 빼앗긴 시대에서 인간을 종교로부터 탈출을 시키는데 성욕을 사용한 것이니 프로이드의 오류라고 하기보다는 해석하는 후학들의 오류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요즘 사회전반에 걸쳐서 인성이 무너진 것은 모두가 공감한다. 필자가 느끼는 것은 단순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끝을 지나쳐버린 느낌이다. 어른들이 층간소음으로 살인을 하고 주차시비로 불을 지른다. 아이들은 왕따를 하고, 80세 노인들이 삼각관계로 칼부림을 한다. 어느 계층 없이 모두가 욕망의 애오욕의 극단을 따르고 있다. 바른 길(道)을 가르쳐야 하는 교육(敎)은 무한 경쟁이라는 욕망을 부축이고 있다. 중용에서 제일 처음으로 이야기한 교육(敎)이 무너지면서 인성(性)으로 가는 길(道)을 잃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인의예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어짐, 옳음, 예절, 지혜가 없어졌다. 작게는 본인과 가정에서, 넓게는 회사와 국가에서 사라졌다. 그 결과가 지금보이는 바이며 사회적으로 가장 지성이여야 할 치과의사들도 인식을 못하여 발생한 일이다. 이제 지성인인 우리 스스로의 본성을 찾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작은 시작이 큰 변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