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사를 보면 재미있게도 자신이 사는 곳을 ‘세상의 배꼽’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인들은 델포이를 ‘문명의 배꼽’이라고 불렀고, 페루의 쿠스코는 그 이름 자체가 ‘세상의 배꼽’이라는 뜻이다.
칠레의 이스트섬 역시 원주민들은 ‘세상의 배꼽(Te Pito Te Henua)’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중화사상 또한 세상의 중심이면서 가장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선민의식을 나타낸다. 과거의 유목민들의 경우도 거대한 기둥을 들고 다니면서 정착하는 곳마다 그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자신들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임을 나타내는 의식인 것이다. 꼭 배꼽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더라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가리켜 ‘옴팔로스 중후군’이라고 한다. 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특별하고,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느낀다. 이러한 생각은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최근 치과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소송들을 보면 옴팔로스 증후군을 생각나게 한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지난 집행부의 선관위가 보여주었던 안하무인식의 행태가 치협 선거의 파행과 소송을 일으켰고 이후 보여준 치협 집행부의 대처도 마땅치 않았다. 치협 선거뿐 아니라 전문의 제도 또한 자신의 이익과 주장만 관철하려고 한다. 지나치게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것도 문제이지만, 치협과 대의원총회 또한 결정사항에 대해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것도 소수의 의견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요소이다. 민주주의는 직접 혹은 대의제를 통해 전체 집단의 의사가 여러 과제와 문제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입법, 행정, 사법 등의 모든 국가 작용이 헌법과 법률에 기속된다는 뜻이다. 국가와 집단의 의사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결정되고 법치주의에 근거해서 집행되어야 한다.
국가나 집단에서 의사 결정을 해 나갈 때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합의나 절충이 불가능할 때 차선의 결정을 하게 된다. 이것이 다수결의 원칙이다. 다수결은 집단 의사를 신속하게 결정해야 하는데 합의나 절충이 불가능할 때 차선의 의사결정 수단일 뿐 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니다. 그것이 정당화되려면 인권 보호와 권력분립 등 헌법의 근본가치를 훼손하지 않아야 하고, 충분한 논의와 숙고 등 합리적 절차가 담보돼야 한다.
최근 치과계의 송사를 보면 충분한 논의도 소수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치협과 대의원총회는 치과계를 대표하고 최고의사결정기관이며 치과계 민심과 정서가 잘 반영되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 의견이나 기본권, 법률적 기본까지 무시하거나 지키지 않아도 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은 아닐 것이다. 이제 많은 희생을 치르며 다시 출발하는 집행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