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설 ‘임플란트전쟁’의 발표로 치과계를 넘어 일반의 관심을 끈 한 치과의사에 대한 기사와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작가가 소속된 그룹은 의료윤리를 외면하고 영리 추구의 모습을 보여 PD수첩과 같은 여러 언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었다. 그것을 막고자 시민사회와 치과계가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차적인 문제였던 ‘저가’가 문제의 핵심인양 본질을 왜곡했으며,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경제적 이득을 넘어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자신을 탄압하는 세력이 필요하다. 일부의 사실과 거짓을 오묘하게 섞거나, 부분의 모습을 전체인양 매도하여 치과계를 ‘악’으로 만들고, 그 주장이 직업이기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폄훼했다. 어쩌면 그래서 ‘소설’의 형식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전략은 성공적인 것 같다.
아전인수격의 주장에 대하여 논할 바는 많다. 그러나 치과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기에 여기서 논할 바는 아니다. 치과계가 일부 집단과 각을 세울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다. 그들의 행위가 방치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진정한 해결을 위한 숙고가 사라지고 무의미한 상호 비난만 남게 될 것이다. 점점 불확실해지고 불안정해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을 감시하여 불법 행위를 단속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계도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장기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그들이 활약(?)하게 된 배경에 집중하고 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그들의 성장은 치과계의 그늘에서 시작됐다. 지금껏 치과의료가 어떻게 공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의 고민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의 구강건강은 민간에게 맡겨졌으며, 포화된 민간은 과도하게 경쟁하게 됐다. 주체적으로 전문직업성을 획득한 경험이 없는 우리 치과계는 환자와 의사 관계를 변화된 시대에 맞게 적극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시장의 논리에 따라가게 됐다. 낮은 보장성과 의료수가는 비보험 영역의 확대와 연관되어 환자에게 큰 부담을 지우게 됐으며, 치과의사들에 대한 신뢰는 하락하게 됐다. 이 틈새를 그들이 파고든 것이며, 소규모이지만 유사한 행태를 보인 치과의사들이 그들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존재한다. 단순히 한 집단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공공의료 확보, 보장성 확대, 의료전달체계 확립 등 여러 분야와 관점에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노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지만, 본 사안과 관련해서 본다면 치과의사의 전문직업성을 향상하고, 환자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의 치과의사 규제기구 또는 면허관리국은 이미 그러한 목적 하에 운영되고 있다. 치과의사와 공공이 함께 운영하는 형태로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였으며, 치과의사가 갖추어야 할 전문직업성을 현실에 맞게 정립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이를 벗어나거나 환자 안전에 위해가 되는 경우 계도 및 처벌을 수행한다. 환자와 치과의사 양자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하도록 노력하며, 관련 민원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다양한 기관, 조직, 법률들이 우리를 규율하고 있지만, 통합적이지 않기에 실효성을 갖기 어렵고, 그들의 조치를 합당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먹튀 혹은 이벤트 치과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도, 신경치료가 대장암과 관련된다는 주장을 하여 국민들을 현혹시켜도, 불법 네트워크의 불법 행위가 도를 넘어도, 의료의 특수성과 환자 안전의 측면에서 계도나 처벌이 필요하더라도 현 체계에서는 어떠한 계도 방안도 없으며, 의료의 특수성이 배제된 체 일반 법률에 의거한 판단만이 이뤄지고 있다.
치과계가 알아서 하기는 힘들다. 치과의사 단체인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임원들이 이 문제를 모두 풀어나가기는 버겁기도 하거니와 올바르지도 않다. 상업주의를 극복하고 치과의사의 전문직업성과 환자안전을 높일 수 있는 조직이 이를 담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조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