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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신문 논단] 참을 수 없는 글의 가벼움

권영희 논설위원

아주 오래전 우리의 존재가 어떻게 하면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울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철학적 함축뿐만 아니라 거친 역사의 풍랑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가벼움과 그 와중에도 살아가려는 의지의 무거움이 중첩되어 나타나 ‘참을 수 없는 책의 무거움’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또한 나의 행복이 다른 이의 불행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그 객관적 불행이 과연 주관적 불행과 일치하는 것인지 우리 삶의 복합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훌륭한 책이었다. 오늘 이 책의 이야기를 꺼내게 된 이유는 이 책에 빗대어 “참을 수 없는 글의 가벼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 글을 쓰고 알리는 게 너무도 쉬워졌다. SNS가 발달하기 전 글을 쓰고 발표한다는 일은 종이 매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기회도 적고 그 글을 읽는 사람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글이 인쇄되면 더 이상 수정이 불가하기에 인쇄 전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은 더 신중하게 글을 쓰게 된다. 그러나 SNS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여러 매체를 통해 글을 쓰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으며, 쉽게 고쳐 쓰기가 가능하니 글을 쓸 때 진중함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글을 많은 사람이 다 함께 읽을 수 있으니 글에 대한 접근성도 아주 쉬워졌다.

 

글을 쓰고 읽고 비평하는 것이 예전에는 소수의 권한이고 권력이었다면 이제는 그 권한과 권력이 모두에게 나누어졌다는 점에서 SNS의 발달은  글쓰기의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셈이다. 더하여 무겁고 쓰기 어려웠던 글쓰기가 아주 가벼운 일이 된 것이다. 누구나 여러 매체를 통해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그 의견에 답글로 옹호와 반박을 하는 것이 일상화되다보니 글을 쓴다는 무게감에 무감해지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다시 글쓰기가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무심코 남긴 글과 멘트가 이제는 잊히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따라다니며 자신을 옭아맬 수도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한다. 외모도 생각도. 예전에는 절대적으로 옳았다고 믿었던 생각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틀렸다고 비난했던 생각이 납득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의 생각이 세월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할 것이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 연령에 따라 중요한 일이 다를 것이고 그 연령이기에 할 수 있는 고민과 생각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에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그 글을 쓰기 전에, 그 말을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상황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내 글이 명료하고 냉철하되 누군가를 필요 없이 찌르는 창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검증을 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어떤 면에서는 견딜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으로 다가오듯 글쓰기의 표면적 가벼움은 더할 나위 없는 시간적, 시대적 무거움을 내포하고 있다. 과거 누군가가 쓴 글이 현재의 그 사람을 공격하는 사태를 보며 글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는다. 나 또한 이 글을 쓰며 되묻는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자유로운가? 현재의 나의 글이 미래의 나를 규정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참을 수 없이 가볍고 쉬워진 글쓰기가 얼마나 무거울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하며 최소한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속박하지 않도록 더욱더 무거운 마음으로 글과 말을 하리라 다짐한다.

 

*논단은 논설위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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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신문 논단] 성명서의 힘, 최치원에서 서울지부까지
868년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신라 6두품 출신으로서 출세에 한계가 있었던 그는 18세에 외국인 과거시험인 빈공과에 장원급제한다. 이후 회남 절도사 고변의 추천으로 관역순관 지위에 올랐다. 이때 황소의 난이 일어났다. 소금세가 높아지자 밀매업이 성행하고 밀매업자의 두령인 황소가 산동성과 하남성을 점령하고 급기야 장안을 함락, 황제 희종은 쓰촨으로 도망쳤다. 때마침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이 빛을 발한다. 삼국사기는 이를 중국고사를 인용한 장중체 문장으로 전한다. “천하의 모든 사람이 너를 죽이려 의논할 뿐 아니라 땅속의 귀신들까지 너를 죽이려고 의논하였다” 대목에서 그 준엄한 꾸짖음에 놀란 황소가 의자에서 넘어졌다고 알려진다. 인류 역사는 말, 글, 행동의 자취다. 글의 정수인 성명서는 리더가 일정 사항에 대한 방침이나 견해를 공표하는 글이다. 크게 보면 모세 십계명,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한 모든 인류의 계율과 역사적 논쟁이 글로 이뤄져 왔다. 시의적절한 언어 구사력과 문장은 정치에서 필수다. 성명서의 위력과 파급효과는 지대하며 그 전파는 가히 빛의 속도다. 치과계도 예외가 아니며 그 이면에는 각 단체의 회장, 공보이사, 홍보이사 등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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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경영지원 10년차, 김부장이 전하는 치과생활 리얼 스토리 - 마지막회
가정이든 직장생활 속에서든 누구나 힘든 일은 있습니다. 특히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나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직장생활 잘하는 법은 누구에게나 고민일 것입니다. 2014년에 방영되었던 직장인의 교과서 ‘미생’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사람이 전부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사람이라고요. 일을 하는 사람, 일을 만들 줄 아는 사람.” ‘회사 간다’라는 건 내 ‘상사’를 만나러 가는 거죠. 상사가 곧 회사죠. 상사가 좋으면 회사가 천국. 상사가 좋지 않으면 회사가 지옥. 직장생활에서의 힘듦은 8할이 인간관계의 힘듦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는 좋아하는 찌개도, 좋아하는 음료도, 좋아하는 동물도, 좋아하는 최애(最愛)도 다른,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늘 즐겁게 지낼 수는 없겠죠. 직장생활의 인간관계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경험했던 인간관계와는 굉장히 다른 새로운 분위기의 인간관계입니다. 이해관계로 얽힌 인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 때문에 친해졌다면 술이 없으면 깨지는 인연, 돈 때문에 맺어졌다면 돈이 없으면 깨지는 인연. 이해관계로 맺어진 인연이라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