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여자아나운서가 목숨을 던졌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자살 급증의 근본적 원인을 생각해본다.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바퀴벌레나 개미 등은 수천 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간도 적응력이 풍부한 동물이므로 부적합한 환경에 놓여도 그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적응함으로써 지구상에 생활권을 확대하다 못해 이젠 파괴를 하고 있다.
그리고 고도발달이 만들어낸 현대사회는 인간의 적응능력을 훨씬 초과한 스트레스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이런 환경은 신체적으로는 위궤양이나 고혈압, 두통 등의 신경증을 만들기도 하고 정신적으로는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증, 자살 등을 선택하게도 하며 가족관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이혼 급증, 청소년 비행, 노인 학대 등의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현대인을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겨우 바다에 떠있는 존재로 비유하며, 이를 극복할만한 기분전환이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지면 즉시 심리이상의 바다에 빠진다고 설명한다.
이미 선진공업화 사회가 만들어내는 스트레스로 인한 마약중독, 범죄증가, 자살 등의 사회병리현상은 잘 알고 있다. 우리사회도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수많은 병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살률 세계 1위, 이혼증가율 1위라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심한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신이상에 이환되기도 쉽다.
정신 이상은 크게 신경증과 정신병으로 나눌 수 있다. 정신병은 70%정도가 분열증이고, 30%정도가 조울증, 알코올 의존증 등의 중독정신병이 있다. 일생동안 어떤 병에 걸릴 가능성을 평생유병율이다. 정신분열병 경우에는 이 평생유병율이 총인구의 1%에 달한다.
즉 정신분열병은 100명 중에 1명꼴로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비교적 흔한 병이다. 강박증, 히스테리 등 각종 신경증, 편집증 등 각종 정신질환을 합하면 누구나 평생 한번은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있을 정도다. 또 1년 동안에 정신분열병에 처음 걸리는 환자 수는 대략 총 인구의 0.025~0.05% 정도다. 즉 매년 3천 명 중에 1명꼴로 새로 환자가 생겨난다.
신경증에는 아무리 검사해도 이상이 없는데 여러 가지 증상을 끈질기게 호소하는 신체화장애, 아무 이유 없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초조감과 불안발작을 일으키는 불안장애, 손을 몇 번씩 씻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공포의 강박증 등이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은 정신분열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도 많은 사람이 이 병을 대단히 드문 질환으로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환자나 가족이 병을 숨기기 때문이다. 정신분열병은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비교적 흔한 병이다. 다만 병을 숨기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더불어 치료가 이루어지기 힘들어 더욱 더 큰 문제를 안고 있고 자살이 급증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더불어 필자는 치과 진료실에서 두 가지의 문제를 생각한다. 첫째는 의사의 정신건강이다. 미국과 유럽의 의사 자살률을 조사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남성의사는 일반 남성에 비해 1.4배, 여성의사는 일반여성의 2.3배로 높았다.
외과의사 16명 중 1명이 과거 1년간 자살시도를 생각했다고 응답했지만 대부분은 정신과를 찾지 않았다. “의사가 받는 스트레스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심신(心身)의 에너지가 쇠진하는 탈진증후군(burnout syndrome)은 공중보건 문제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한 연구자금 지원기관이 없는 상황”이라고 보고된 바 있다. 결국 의사도 정신병에 이환되기 쉬운 직업이다.
둘째는 정신 문제가 파악되지 않는 환자이다. 내원하는 모든 환자를 보아야하며 치료하는 의사의 판단과 경험에 의존해야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20년 이상 환자를 보았는데 요즘 질환의 경중을 떠나서 치료를 한다는 것이 점점 조심스럽고 두려워진다. 철없던 시절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그 당시 환자들이 무던했던 것이 고마울 뿐이다. 옛날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바보가 되어가며 오늘도 마음을 추스르고 조심스럽게 진료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