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부 보톡스 시술에 이은 치과와 의과 사이의 진료영역 다툼이 또 다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는 치과에서의 독감예방접종이 도마에 올랐다.
관련보도에 따르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회장 임현택·이하 소청과의사회)는 지난달 30일 독감예방접종을 실시한 경기도 용인시의 치과 의료진을 수원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혐의는 무면허 의료행위. 독감예방접종을 치과의사 면허 밖의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해당 의료진을 고발한 것이다.
소청과의사회는 “현행 의료법 제27조 제1항은 의료인이라도 면허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해당 치과 의료진들은 치과에 내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독감예방접종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질병관리본부고시에 따르면 ‘예방접종은 예방접종에 대해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의료인’이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의료인은 예방접종을 실시하기 전 충분한 병력청취와 신체진찰을 통해 접종대상자가 접종이 가능한 상태인지를 판단해야 하며, 예방접종 금기사항이 있을 때는 접종을 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언급된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의료인’에 치과의사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소청과의사회의 입장이다.
예방접종 자체는 위법아냐…진료영역 다툼이 핵심
먼저 치과에서 행해지는 예방접종의 위법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치과에서의 예방접종 자체가 위법은 아니다. 인플루엔자를 비롯한 각종 감염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관계부처인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예방접종은 국가예방접종사업 의료기관(무료)과 이를 제외한 예방접종(본인부담)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으로 나눌 수 있다.
국가예방접종사업 참여 의료기관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0조’에 따라 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의사가 의료행위를 하는 곳만 해당) 또는 의원 중에서 시장·군수·구청장이 지정하는 곳만 해당된다. 즉 무료로 진행되는 국가예방접종에 치과병원과 치과의원은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예방접종(본인부담)은 의료기관 자체 결정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데, 여기에 치과병원과 치과의원이 포함된다. 예방접종 무료 대상자가 아닌 본인부담금 납부자를 대상으로 치과에서도 예방접종을 할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진료영역이다. 독감예방접종이 치과의사의 면허범위 내에 있는 의료행위인지 여부가 이번 사건의 핵심인데, 안면부 보톡스 시술 때와 마찬가지로 진료영역은 언제나 다툼의 여지가 있어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수년전 치과계 분과학회 “치과의사 면허에 해당” 공식입장
실제로 수년 전에도 치과에서 행해지는 예방접종이 합당한지에 대한 치과계 안팎의 논의가 있었다. 당시 동일한 사안에 대해 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회(이하 구강외과학회)와 대한안면통증구강내과학회(이하 구강내과학회)는 예방접종이 치과의사의 면허범위 내에 있는 의료행위라는 공식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구강외과학회와 구강내과학회는 2015년 당시 문건에서 아래와 같은 이유로 예방접종이 치과의사의 진료영역임을 주장했다. 첫 번째는 충분한 문진과 진찰, 그리고 이를 통해 위험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치과의사의 의학적 지식수준이다. 감염병 예방접종은 건강한 사람에게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는 의료행위다. 따라서 충분한 문진과 진찰을 통해 대상자의 현재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투여될 약제에 대한 이상반응 등을 파악하게 된다. 그 결과에 따라 예방접종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여기에 요구되는 의학적 지식은 이미 치과의사의 교육과정에 충분히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강외과 교과서 및 구강미생물학 교과서 등에 바이러스성 감염에 대한 진단 및 치료방법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두경부감염학’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도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예방접종 여부를 결정하는 의학적 지식은 치과진료를 위해 파악하게 되는 전신건강상태의 판단범위 수준보다 낮다는 것이 학회들의 입장이다.
또 다른 근거는 의료법 등 관련 법률에서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먼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5조 2항은 ‘의료법에 따른 의료인 및 의료기관의 장 등은 감염병 환자의 진단·관리·치료 등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행정명령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의료법에 따른 의료인이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및 간호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의사’로 한정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지난 2009년 미국 astho(association of state and territorial health officers)에서 발표한 H1N1 독감 대유행 시 따라야 할 수정지침에 치과의사가 포함돼 있다는 해외사례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김철수·이하 치협)도 이번 건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해당 치과가 소재한 분회 및 지부를 통해 내용을 파악한 상태로 추후 사법당국의 조사를 지켜보며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방침이다.
치협 조성욱 법제이사는 “수년 전 이번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예방접종이 치과의사의 업무범위에 포함된다는 내용을 복지부에 전달한 바 있고 충분한 근거자료도 확보하고 있는 상태”라며 “지부, 분회와 충분히 논의해 합리적으로 대처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치과신문 공동취재팀 dentnews@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