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역시나 세월호를 넘어 월드컵으로 왔다. 시간은 망각이라는 동반자와 같이 다닌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요즘은 TV를 켜면 온통 월드컵 이야기뿐이다. 필자 또한 시대에 편승하여 저녁과 아침에 월드컵을 시청하다보니 낮에는 졸기도 한다. 누군가가 세상사의 아픔이란 것이 단지 시간의 길이 차이라고 한 말이 현실로 다가온다. 월드컵 최고의 빅 매치인 독일과 포르투갈의 경기를 보기 위하여 졸음을 참으며 기다렸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기 드믄 장면이 연출되었다. 포르투갈의 공격수 페페가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넘어져 앉아 있는 독일 선수를 머리로 박치기를 하고는 퇴장을 당하였다. 이 후에 포르투갈은 급격히 무너지고 큰 점수 차이로 경기에 패배하였다. 더불어 세기의 최고 공격수인 호나우드의 기량도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었다.
페페의 과거 경력을 보면 그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고 생각된다. 31살인 남자가 20억의 인구가 지켜보는 그라운드에서 상대편에게 박치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심한 성격장애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출생이 브라질이고 국적이 포르투갈인 것을 보면 어려서 성장기에 내부적인 분노가 많이 잠재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 분노를 폭발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사회가 자신의 축구기술의 상업성에 분노도발을 덮어주는 것을 경험하고 학습되면서 지금의 상태까지 이르렀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물론 사람인 이상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에 따른 반성이 없다면 후회와 행동은 별개로 작용할 것이다. 대부분의 분노조절장애는 결국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든다. 성격에 따라서 자책하고 후회를 하는 형과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후회하지 않는 형으로 나눌 수 있다. 후회하는 형은 의지가 약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서 상담을 통하여 개선의 여지가 많다. 반면 책임전가형은 반사회적 행동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 주의가 요구된다. 권투선수로 세계 챔피언이었던 핵주먹 타이슨이 경기 중에 상대방의 귀를 물어뜯은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후회에 대해 얼마 전 흥미로운 발표가 있었다.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의 신경과학자들이 쥐를 대상으로 일정한 시간 동안 기다리고 나서 먹잇감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먹잇감이 있는 곳으로 옮길 것인가를 선택하도록 하는 실험을 하였다. 실험에서 좋은 먹잇감을 포기하고 다른 먹잇감을 찾아간 결과에서, 나쁜 선택을 하였다는 것을 인식한 쥐는 자주 동작을 멈추고 포기한 먹잇감이 있는 쪽을 되돌아보았다. 또한 나쁜 선택을 한 쥐는 인간이 후회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안와전두 피질’ 전기화학작용이 활발해졌다. 이에 연구팀은 “쥐의 안와전두 피질이 반응하도록 한 요인은 잃어버린 먹잇감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었다”고 말하며 인간 역시 얻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라고 설명하였다. 즉 결과보다는 선택에 대한 후회가 더욱 크다는 결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확대해석하면 지금 부자가 아닌 것보다 부자가 될 수 있던 선택의 기회를 놓친 것이 더 억울한 것이다. 결국 그것은 후회를 통하여 다음 행동에 변화를 주어 반복된 행동을 하지 않게 하려는 본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후회도 본능적인 host defence mechanism의 일환이며 중요한 생존 본능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존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페페의 조절되지 않은 분노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의 축구를 아주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했다. 위 실험에 의하면 포르투갈의 감독은 경기에 진 것보다 페페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클 것이다. 앞으로 페페는 스스로 반성하고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중요한 경기에서 감독들에게 선택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 예측된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이미 늦었고 사과는 아무리 늦어도 빠른 것이란 말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