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지만 태생적이고 근원적인 주제를 생각나게 한 기사가 있었다. 지난 4월 모 치과전문지에는 일본 오락프로그램과 관련된 내용이 실렸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의사가 “의사 호칭 범주에서 치과의사를 빼달라”는 내용이었다. 새삼스럽기는 하나 그냥 에피소드로 넘기기에는 묘하게 치과의사의 역린을 건드린다. 어떻게 생각하면 소견 좁은 의사의 해프닝일 수도 있는 이 발언은 의사가 생각하는 치과의사의 위상 속내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아마도 학부 시절에 ‘치의학 개론’이나 ‘의사학(醫史學)’을 통해 얻은 단견내지 선입견을 토로한 것이겠지만 일본인이 여간해서는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파격이다. 근세에 일본을 통해 치의학 면허와 교육, 문물이 유입된 것을 고려하면 이런 정서는 한국에서도 유사할 것이다.
치과의사든, 양의사든, 한의사든 TV 프로그램에서 ‘의사’통칭으로 사용가능할법한 일을 묵과할수 없다는 옹골찬 언사는 의사의 자존감이자 위기감의 표출이다. 이런 언사에 심기가 불편한 치과의사는 처지가 의사만큼 못하다는 전통적 자격지심이 있는 반면, 의사는 치과의사가 많이 추월해 와서 역전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아무래도 의사가 “치과의사는 의사가 아니다”함은 이기적 치졸함인 듯 하고 치과의사가 그리 말함은 지극히 당연해 언급 가치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일차적으로 이 지적은 법적으로, 역사적으로 옳은 것은 확실하다. 전 세계적으로 치과의사의 면허와 교육기관이 분리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치과의사는 치과의사이지 의사가 아니다. 의사 호칭은 무의식적이든 의도적이든 실수로 긴 발음을 피한 선심성 어휘다.
직명갈등은 역사적 숙명이다. 역사적으로 유럽에서 18세기 중반까지도 치과는 중세의 장인 길드에 근원을 두었던 외과의사들 중의 조그만 분파로서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개인 서비스분야를 담당했다. 당시의 기록은 “런던 왕립외과의사회 회장은 자기들 기술의 한 분야인 치과의료 부분을 보잘것없는 분야로 생각하여 관여하기를 거부하였다”고 전한다. 한편 미국은 청교도적 자유의지에 기반한 독립적 치과 전문직의 발전에 힘입어 1840년 세계 최초의 볼티모어 치과대학이 설립된다.
그러나 발전과정은 진통을 겪는다. 영국에선 치과의사들 사이에서도 왕립외과의사협회와의 유대를 유지, 강화해야 한다는 측(odotologist)과 미국에서처럼 독자적인 직업 영역으로 분화시켜야 한다는 측(dentist)으로 대립한다. 미국도 치의학이 의학의 한 전문분야로 귀속되어야 한다는 신념(구강학운동, stomatologic movement)과 독자적인 신분야로 정진해야 한다는 자치론자측이 팽팽이 맞서다가, 1927년 콜럼비아 대학의 Gies는 카네기 재단의 후원을 받아 자치론자만의 치과대학 교육개혁 승리를 이끌어낸다. 이후 미국은 치의학계의 리더가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47년 의사와 치과의사의 경계를 허물자는 ‘의치 일원화’를 위한 청원운동이 있었으며 1949년에는 ‘치과’라는 명칭을 ‘구강과’로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주장과 청원이 무위로 끝난 적이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외양과 호칭은 사람을 규정짓고, 그 사람답게 만든다. 범직명 호칭인 닥터는 마음껏 향유하되 우리말 의사와 치과의사는 다른 직명임을 일반인에게도 적극 알려야 할 것이다. 아울러 종속, 분과개념을 탈피하기 위해 언젠가는 ‘치과’에서 ‘과’를 뺀 ‘치의사’ 등 적절한 다른 직명을 창조해야 할 것이다. 네이밍은 당장은 불필요하고 성급하고 고된 과정이지만 전문의 표방문제가 대두된 이 시점에 허황된 착상만도 아니다. 아마도 일본의 한자어로부터 유래되었을 ‘치과의사’라는 직명이 구강악안면 영역을 전부 커버하는 직업치고는 너무 축소 지향적으로 잘못 한정되었다는 느낌을 지워 버릴 수가 없다.